[이슈점검]20주년 넘긴 연협 등 과학계 민간 모임 힘없는 이유
"과학계 방향·미션 정확히, 정부도 협상파트너로 인정해야"
"서로 연대하며 지속적인 연대 방안 스스로 모색해야"

한국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이 본 궤도에 오른지 반세기가 넘었다. 다양한 커뮤니티도 발족,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크게 반영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는 출범 20주년을 맞아 과기단체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이미지= 박옥경 디자이너>
한국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이 본 궤도에 오른지 반세기가 넘었다. 다양한 커뮤니티도 발족,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크게 반영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는 출범 20주년을 맞아 과기단체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이미지= 박옥경 디자이너>
한국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이 본 궤도에 오른지 반세기가 넘었다. 1966년 2월 KIST가 설립되고, 정부의 지원으로 공식적인 과학기술자 커뮤니티가 발족됐다. 1966년 5월 정부 산하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가 시작을 알렸다. 첫 전국과학기술자대회도 열렸다. 이듬해 과학기술진흥법이 제정되고 과학기술처도 출범했다.

1960~70년대에는 정부의 강한 육성 의지 속에서 시작된 과학기술 정책으로 연구자들은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됐다. KIST 설립 후 대통령이 수시로 방문했다는 일화와 산업발전 중심의 분명한 미션이 제시돼 과학기술인은 연구에 집중하면 됐다. 90년대에 들어서며 민간연구소의 역량이 높아졌고 과학기술인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다양해졌다. 암묵적 변화 요구였다.

그런 가운데 국가 R&D의 핵심축으로 성장한 정부출연연구기관에는 1996년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도입됐다. 선의의 경쟁으로 시작됐지만 연구자들은 과제 수주, 인건비 확보 등 부담이 커졌다. 평가는 성과주의 중심으로 변화됐다. 연구자들은 연구보다 과제 수주, 평가 등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맞으며 과학계 정년이 65세에서 61세로 단축됐다. 과학계 일부에서 목소리를 냈지만 대부분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면서 정년 61세는 그대로 굳어졌다.

과학계를 대변할 수 있는 구심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99년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이하 연협)가 출발했다. 연구원 지위향상과 권익신장에 이바지하며 국가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에서다. 작년 연협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20주년 축하 행사도 열렸다.

앞서 1993년에는 여성과학기술인 중심의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공공연구노동조합이 임원을 선출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2012년 과학기술인 은퇴자가 늘면서 은퇴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과학기술연우연합회(이하 연우연합회)도 창립했다. 11개 출연연 연우회가 참여했다.

2016년 젊은 연구자, 대학교수 등을 주축으로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태동했다. 기성세대와 달리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시민사회와 연대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설립 목적을 갖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인 개인이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인협회 모임(작년 12월 30일 설립모임) 조성 움직임도 활발하다. 협회 조성을 주도하고 있는 김우재 박사(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과학기술인이 스스로 주인이 돼 현장과 괴리된 과학기술정책을 좌시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이외에도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 전임출연연기관장협의회 등 다양한 과학 구성원의 단체들이 생기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많은 과학기술계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정작 연구현장에서 느끼는 연구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정부와 국민 입장에서 보는 과학기술계의 위상은 오히려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연구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도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과학시민 문화의 핵심 주체들인 과학기술계 단체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금과 같은 역할로 과학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 할 수 있을까.

◆ 과기계 단체 목소리, 왜 반영 안되나

"일본에서 포닥을 마치고 한국 온지 20년된 50대 중반의 연구자다. 다른 출연연으로 실험하러 가니 실험은 학생이나 별정을 시키라고 하더라. 그럼 성공못한다면서.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지만 기획에 참여한다. 안하면 무능한 연구자로 취급된다. 어느때는 잘 알지 못하는 기획에 참여해 예산을 따 내기도 했다. 기획일은 90% 이상이 행정이다."

한 출연연 연구자의 고백이다. 그는 연구자들이 더 이상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환경이 안타깝다고 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구소 지부의 연협 회장을 맡고 있지만 사실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출연연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과학기술계 2020년 R&D 예산은 17.3% 증가, 24조원에 이르렀다. 정부는 사람중심의 연구현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서 체감하는 환경은 예산 증가와 비례하지 않는 분위기다. 여전히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나 국회에서 적극 반영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단체들의 위상이 떨어지며 젊은 연구자 회원의 참여도 낮은 편이다.

과학기술계 단체들의 목소리가 정부에 적극 반영되지 못하는 이유로 연구현장에서는 3가지를 꼽는다.

첫번째 원인은 힘 부족이다. 구성원이 적극 참여하며 힘을 실어줘야 하지만 한국의 과기단체들은 대부분 그런 면에서 약하다. 참여가 저조한데는 기관별로 근무 여건이 다른 연구자들의 현실 문제도 작용한다. 탄력 근무제가 적용되지만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다. 법적 지위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법적 지위 등을 갖지 못해 정부나 국회에 적극 의견을 전달하고 싶지만 기회가 마련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나 국회에서 과학기술계 단체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는가의 문제도 제기됐다. 정부는 과학기술계 현장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인데도 이를 적극 수용하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근무 환경 등 단편적인 부분에 맞춰지며 내외부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유도 나왔다. 과학계 지식인, 리더로서 대한민국의 과학계가 지향할 비전, 과학자의 역할  등을 생각하며 국민의 공감을 얻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과학자의 복지, 연구환경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지향할 비전,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지를 고민할 때 힘도 생긴다는 의미다.

◆ 과학기술의 중요성 커지는 만큼 과기단체 목소리 중요

과학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 보자. 미국의 AAAS(미국과학진흥협회). BA(영국과학진흥협회)를 모델로 1848년 설립된 과학기술인 중심의 민간단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목소리를 내고 국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원한다.

AAAS는 연방정부, 의회 등 의사결정권자들을 만나 논의하고 토론한다. 이들의 과학문화 활동 중 '프로젝트 2061'은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과학을 주제로 국민들이 과학기술사회를 살아갈 소양을 준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일본 과학계는 '평연구자회의'가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리켄의 의사결정기구는 간부급이 참여하는 이사회, 주임연구원급의 과학자회의, 일반 연구원을 비롯한 주임연구원과 PI가 중심인 평연구원회의가 있다.

주목할 부분은 평연구원회의. 일반 연구자 중심으로 공식적인 권한은 없지만 의사결정에 큰 영향를 미친다. 김유수 리켄 박사에 의하면 연구소 분위기를 위해 현장 연구자들이 주도하는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기획한다. 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내부 풀뿌리 예산, 심사, 배분을 주도하거나 간담회를 통해 중요한 정부 시책, 연구소 방침 관련 의견을 듣고 설문을 실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단체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경중 바른노조위원장은 연구자의 참여를 주장했다. 그는 "어떤 조직이든 힘이 있어야 굳건하게 나가는데 연협은 그런 부분이 약하다. 힘은 결국 참여자에서 나온다"면서 "우리가 논리를 만들어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정부를 설득하는 성과를 이루면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연구자가 연구하면서 기획할 필요도 있다. 연구자가 기획하면 연구개발 과제의 질이 높아진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철화 전 연협 회장은 "연구개발 주체는 대학, 국공립연구소, 민간연 등 다양한데 유독 출연연에 쓴소리, 회초리를 들이대는 것은 출연연의 역할과 밀접하다"면서 "출연연이 공공 R&D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장은 "연구자의 주장이 관철되려면 다른 부류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캔할 필요도 있다"면서 "상대방의 반대 논리, 시선을 냉철하게 생각해 보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연협 등 과기단체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계와 출연연의 미션, 방향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은 "연구자는 노조와 결이 달라야 한다. 과학자다운 결이 필요하다"면서 "PBS 등 연구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나 그 부분이 전면에 나서면 진의가 왜곡될 수 있다. 우리가 과학 전반을 둘러보고 출연연 미션을 연구해 적극 건의하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역량이 커지면서 출연연이 아무리 잘해도 잘 안보이는게 사실이다. 정부에서 R&R을 재정립하는 것도 그런 이유지만 정확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현장은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면서 "대화가 부족해서다. 듣고 부딪히면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중간에 연구회가 있다. 소통 역할을 하도록 잘 세워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년 리켄 평연구원회의 의장이었던 김유수 리켄 박사는 "리켄의 과학자들도 조직간의 연대로 살아간다. 과학자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서로 연대해야 하고 과학자들이 연대 방안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학기술계 대표 단체인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이하 연협)는 지난해 20주년을 맞았다. 연협은 20주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역할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과학기술계 대표 단체인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이하 연협)는 지난해 20주년을 맞았다. 연협은 20주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역할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