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인순 前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연구소기업, 전례·규정보다 긍정마인드로 검토·지원"

장인순 前 원자력연 소장.
장인순 前 원자력연 소장.
연구소기업 900개 돌파 뉴스를 접했다. 연구소기업 1호를 시작했던 사람으로 시간을 거슬러 20년 전 과거를 생각해 보게 된다.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서 건강보조식품인 헤모힘과 화장품 개발을 이끌었던 조성기 박사와 변명우 박사의 노력과 열정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이미 고인이 된 변명우 박사의 명복을 빈다.

199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부임 후 연구소 전체 업무보고를 자세히 받았다. 느낀 것은 위 두 연구과제가 당장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작은 자금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창업자금 5억원을 만들었다. 윤동한 콜마 회장을 만나 기술은 연구소가 책임지고 각각 5억원씩 출자해 창업하는 것을 결정했다.

출연연의 특성상 이런 새로운 안을 실행하고 자금을 쓰려면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민간이사들은 모두 찬성했다. 하지만 정부의 두 이사는 반대했다. 이유인즉, 연구소가  열심히 연구나 할 것이지 무슨 돈을 벌겠다고 하느냐는 것과 또 하나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니 전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평소에 연구하는 사람도 기업 마인드가 있어야 연구 과제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고 생각해 왔다. 원자력 기술자립을 하면서 느꼈던 바다. 연구를 위한 연구만 할 때와 상용화를 목표로 두고 할 때, 연구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부 이사들의 반대도 힘들었지만 몇몇 연구소 간부들의 반대는 더욱 힘들게 했다. 반대 이유는 정부 이사들이 반대하는 것을 했다가는 정부의 미움을 받아 앞으로 예산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나아가 창업 성공 여부도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창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고민과 궁리를 했다. 그러던 차에 '기술가치평가투자'라는 해법으로 두 기술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2004년 2월 선바이오텍(현재는 Colmar BNH-beauty and health-로 개명)은 반대와 우려 속에 별다른 축복없이 창업에 나섰다. 이후 2006년 정부로부터 '연구소기업 1호' 승인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꼭 한마디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 당시 필자가 소장을 연임하지 않았다면 무수한 반대 속에 '연구소 1호 기업' 탄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관장들의 임기를 4년으로 늘리고 더 나아가 잘하면 연임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바뀌면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관장을 중도 하차시키는 것은 국가 과학계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 후 정부의 독촉(?)과 장려에 힘입어 14년 만에 '연구소보유기술출자'를 통한 '연구소기업 900개' 돌파를 달성했다. 앞으로도 많은 연구소기업 탄생이 기대된다. 창업이 대한민국 과학계의 또 하나의 새로운 도약기반이 되길 바란다.

2019년 말 현재 해외에 수출한 헤모힘은 1800억원이고 화장품이 2400억원으로 해마다 빠르게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재미교포라는 사람이 이메일로 일 년 동안 나에게 협박을 하면서 공개 사과를 하라고 괴롭혔던 일이 있었다. 내용은 헤모힘이 미국 FDA로부터 무독성 승인을 받았는데, 기관장인 내가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과장 아닌 거짓말을 했다며 기관장이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고 협박했다.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협박하면 돈이라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장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이 존재한다. 아무리 기능이 탁월하고 품질이 우수하다 해도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초기에 판매 부진으로 자본금이 바닥나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소는 제조와 판매(콜마비엔에이치 와 애터미) 이원화다. 완벽한 QA, QC를 통해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기업에 부탁했던 것은 모든 연구가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돌려주는 것이 '연구소 기업의 창업' 이유임을 강조했다.

끝으로 공무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어떤 좋은 안이 있으면 감사나 규정이나 전례를 따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도와주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연구원 입장에서는 연구소기업 창업이 과학계가 갖고 있는 보유기술을 훨씬 빨리 상용화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연구소기업 1호도 정작 개발자들은 벤처 창업을 망설였다. 자칫 그 기술들이 영원히 사장 될뻔 했던 것이다.

앞으로 연구소기업이 1000개를 넘어 지속적인 탄생을 통해 많은 양질의 일자리와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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