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코로나19]과학자의 시선과 국민의 눈높이

바이러스가 제기한 과학 철학···'왜 연구하는가?'
과학자, 자신의 전공에 중점···국민, 위기 대응력 강조
한국화학연구원 앞에 게시된 연구진 응원 현수막. 국민들은 연구비도 지원하고 응원도 하며 과학계에 기대하고 있다. 비상상황에 과학계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기를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바라고 있다. <사진=이석봉 기자>한국화학연구원 앞에 게시된 연구진 응원 현수막. 국민들은 연구비도 지원하고 응원도 하며 과학계에 기대하고 있다. 비상상황에 과학계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기를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바라고 있다. <사진=이석봉 기자>

"절망적이다. 우린 무기력했다. 과학기술계의 무능함이 드러났다."
"국민들의 안전을 정치권에서 소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도력을 탓하기 전에 과학기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재난 종류에 따라 해당 전문가를 선별 배치해 신속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안정적 연구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 만큼이나 국가 재난에 책임감 갖고 함께 참여하고 나눠야 한다."

세월호가 끝나고 가진 과학자 좌담회와 설문조사에서 나온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2014년 이후 우리는 얼마나 변했는가? 코로나19가 끝나고 난 한국 사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과학계는 어떤 모습일까? 과학자 사회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상가들이 문을 닫고 대형 차량들은 운행을 멈추고 모임들은 사라졌다. 마스크를 사러 몇 시간의 줄을 서야 한다. 기업들은 업무가 줄어 단축 근무하고 임금을 낮춘 곳도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이 핵전쟁 미사일보다 무서운 것이 미생물이라고 한 말이 실감 나는 상황이다. 재난의 종류는 다르지만 강도는 세월호 이상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보도하는 과정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이 있어 내게 된 기사가 하나 있다. KAIST에 대한 것이다. 누구보다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고, 잘 닦여진 실력을 이런 위기 시에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군인이 전쟁을 위해서 존재한다면 과학자들은 감염병에 의한 국난이란 비상 상황을 맞아 해결에 일조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지난해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 같은 이상 상황에서 활약한 것처럼.

그런데 기사에 대한 반응을 보며 재난 해결사로서의 과학계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과학자가 바라보는 현 상황에 대한 시선과 국민들의 눈높이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실감했다. 왜일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됐다.

올해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연차 총회에서 본 장면 하나가 있다. 그동안 백인이 앉아있던 자리에 유색인종들이 앉아 있었던 것. AAAS는 총회 첫째날 꼭 있는 행사가 AAAS 신임 회장과 과학잡지인 사이언스 사장 두 사람과 기자들의 조찬이다. 이 자리에서 올해 총회의 주제와 특징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일문일답한다.

올해는 예년과 다른 모습이었다. 몇 년 동안 지켜볼 때 기자회견 자리는 백인들의 몫이었다. 올해는 유색인종 두 사람이 차지했다. AAAS 회장은 매년 바뀐다. 올해는 스티븐 추(Steven Chu) 前 미국 에너지성(DOE) 장관으로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이고 현재 스탠퍼드대 교수이다. 이 자리는 임기 1년의 자리이기 때문에 유색인종이 드물게라도 온다.

사이언스 사장은 좀 다르다. 5년 임기이고, 대개 연임해서 10년이다. 이 자리는 어지간해서는 유색인종이 앉기 어렵다. 올해 새롭게 사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수딥 파리크(Sudip Parikh). 인도계 미국인이다. 구조생물학 박사이면서 연구보다는 미 상원에서 경력을 쌓아 정책 전문가로 여겨진다. 그가 회원 수 감소로 고민하는 AAAS의 해결사로 선정돼 부임했다.

지난 2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총회 첫날 조찬 기자회견을 하는 회장단. 사진 왼쪽이 올해 AAAS 회장인 스티븐 추(Steven Chu), 오른쪽이 새로 취임한 사이언스誌 수딥 파리크(Sudip Parikh) 대표. 유색인종 두 사람이 동시에 집행부에 취임한 것은 180년 AAAS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저 자리에 한국계 미국인이 앉아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만큼 우리 과학계가 성숙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진=이석봉 기자>지난 2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총회 첫날 조찬 기자회견을 하는 회장단. 사진 왼쪽이 올해 AAAS 회장인 스티븐 추(Steven Chu), 오른쪽이 새로 취임한 사이언스誌 수딥 파리크(Sudip Parikh) 대표. 유색인종 두 사람이 동시에 집행부에 취임한 것은 180년 AAAS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저 자리에 한국계 미국인이 앉아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만큼 우리 과학계가 성숙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진=이석봉 기자>

두 사람을 보며 미국 사회의 다양성과 동시에 우리 과학계의 리더십을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은 백인이 더 많은 기회를 얻지만 일을 더 잘 할 사람이 있으면 유색인종에게도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미국 과학계와 기업들을 보면 중국계와 인도계가 대표나 임원 등 고위직에 등용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과학계만 보아도 세투라만 판차나탄(Sethuraman Panchanathan) 미과학재단(NSF) 사무총장은 인도계이고, 빅터 챠우(Victor Dzau) 미의학원(NAM) 회장은 중국계이다. 중국과 인도는 미국에서도 리더가 되는데 한국계는?

한국계는 美 이공계 유학생 중 중국, 인도, 유럽에 이어 4위 정도이다. 인구 비례로 보면 가장 많은 셈이다. 그런데 최고위직을 차지한 경우는 듣기 어렵다. 왜일까? 우리나라의 어떤 점이 리더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리더들의 공통점은 전문적 식견은 물론이거니와 호기심이 뛰어나고 공감력도 높다는 것이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한다. 품격이 있고, 배려심도 깊으며 이해력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책임감도 더해진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기반으로 세상을 더 이롭게 하려는 박애정신도 투철하다. 존경할만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의 이공계 환경을 돌아보면 어떨까?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 박애정신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기에 봉사도 잘한다. 존경할만한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재난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이공계인들이 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 전문성이 없는데 어설프게 나서서는 방해만 되므로 잠자코 내 일만 할 뿐이다, 공과대학이지 의과대학이 아니기에 우리보고 나서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KAIST만이 아니다. 생명연과 표준연 등등을 비롯한 다른 출연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상황과 관련해 엄치용 코넬대 의생명공학과 연구원(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 언론 기고를 통해 현 체제 아래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단언한다. [국가연구기관·출연연구원, 이래선 희망 없다] 엄 교수의 진단은 이 글의 논지와는 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이대로는 아니라는 것.

한국의 이공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환경을 스스로 못 만든다는 점이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의 답을 구하는 재능은 있으나 스스로 판을 만들지는 못한다.

세월호 때의 경험이다. 팽목항을 취재갔다. 수중 탐사 장치를 갖고 있는 해양과기원 소속 연구선(船)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이다. 연구선은 멀티빔, 지중탐사기 등 침몰된 해역의 조류와 침몰선의 위치 등등을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는 능동적으로 조사를 못 했다. 대책본부에서 움직이라면 움직일 뿐 주도적으로 탐사를 못 했다. 이유를 물으니 수색 작업 등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 지시받는 한도 내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책본부 명단을 찾아보았다. 이공계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해경과 공무원 등으로만 구성돼 있을 따름이었다. 과학의 유용성을 역설하고 활용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시한 내용에 따라 과학자들은 움직일 따름이었다. 아마 인문계였다면 대책본부에 가서 탐사선의 유용성을 설파하고, 적극적으로 탐사에 활용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상상에 그칠 수 있지만 아쉬움을 느꼈던 대목이다.

그때를 반성하며 많은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과학계가 국민 안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민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임을 공감하며 국가 재난에 책임감을 갖고 함께 참여하며 해결에 일조해야 한다고 설문조사에 답했다. 재난 유형에 따라 각각의 기술을 가진 출연연과의 연계를 통한 대응과 장기적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100명의 과학자들 '세월호' 해법 제시하다] 좌담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반성과 각오가 있었다. ["과학기술계도 책임 져야…더이상 無能은 없다"]

세월호로부터 6년 뒤 다시금 국가적 재난이 닥쳤다. 그럼에도 과학계, 대덕단지는 조용하다. 의료인들의 발걸음과 바이오 기업들의 움직임만 분주할 뿐 응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만능이냐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학자의 시선과 국민들의 눈높이 차이가 크다는 것을 절감하는 대목이다. 이럴 때 다시금 묻게 된다. 연구는 왜 하는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자는 어떤 존재인가?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 맞다. 거기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생기면 과감히 뛰어드는 덕목을 지닌 사람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자신은 그 문제의 담당자가 아니라고 책임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해결사를 자임하는 사람이 아닐까?

세월호를 보내며 과학자가 한 말 가운데 하나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비관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그러한 시점이 아닐까?

KAIST 관련 댓글의 하나는 "병원이 없는 KAIST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우리도 병원이 있었으면 했다." 지금이 KAIST가 그토록 원하던 병원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병원이 없는데도 우리는 이렇게 했다. 만약 병원이 있었으면 훨씬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을 설득하면 병원이 허용되지 않을까?

출연연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 내 전문이 아니라며 숨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을 드러낼 때 필요성을 더 크게 인정받으며 원하는 자율성과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야기이다. 외환위기로 국가 살림이 부도나고, 이에 따라 공무원 조직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부처별로 조직 축소안을 내라고 했다. 당시 소방서는 내무부(현재 행안부) 관할이었고, 힘없는 부서에 속했다. 내무부에서 소방서 감축안을 냈다. 그런데 소방서는 그 직전 업무를 재정의했다. 불이 나야 움직이는 부서에서 국민의 모든 재난에 대응하는 부서로 업무를 확대했다. 홍수가 나도, 자동차 사고가 나도, 응급환자가 생겨도 119에 전화하도록 했고, 소방대원은 출동했다. 그러자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소방서는 우리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요한 곳이다. 내무부의 소방서 축소안은 국민들로부터 반발을 받았고, 뒤에 소방서는 소방청으로 승격, 조직이 확대됐다.

전공이 다르다고, 그 일은 다른 전문가가 잘한다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비상시국 아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혼자보다는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서 해결책을 찾아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로부터 박수받지 않을까? 그런 과학자들이 많을 때 과학자에 대한 평가도 높아지고, 다음 세대의 장래 직업 선호도도 높아지고, 연구 자유도도 높아지고, 원하는 제도 개선도 이뤄지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되지 않을까? 

국민들은 지금 해결책을 과학계에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같이한다는 공감을 당부하는 것이라는 것도 과학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과 각 과학계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일본은 전문가 그룹들이 TF를 짜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는 과학 총력전에 의해 해결이 가능하다. 과학계가 내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하고 싶은 연구가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연구도 해야 한다.

과학자들의 경직성에 가장 책임이 큰 집단은 과기부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과기부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결국 과학자들의 몫이다. 그 출발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학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부응하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몸과 마음이 힘든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과학이란 전문성을 갖고 현 상황을 설명해주고, 탈출로를 같이 찾으며, 끝내 위기 극복을 하고 함께 껴안고 눈물 흘릴 과학 구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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