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호민 IBS 바이오분자·세포구조 연구단 CI
향후 바이러스 대응 위해선 생체 내 면역반응 이해 필요

IBS(기초과학연구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와 코로나19의 원인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 또는 2019-nCoV)에 대한 과학 지식과 최신연구 동향을 담은 <코로나19 과학 리포트>를 발행합니다. IBS 과학자들이 국내외 최신 연구동향과 과학적 이슈, 신종 바이러스 예방·진단·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진행 상황과 아이디어 등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 과학 리포트 바로가기>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하였다는 소식으로 지난 2월초 전 국민이 함께 열광하였다. 아쉽게도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면서 기쁨을 오랫동안 누리지는 못하였다. 영화에서 기태(송강호扮)는 박사장 집에 기생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진다. 최근 속속 규명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생활사, 그리고 치료제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며 이 명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바이러스의 계획 : 숙주세포의 자원을 활용해 증식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세포 내 증식 메커니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RNA가 세포 내로 유입되면, 가장 먼저 pp1a(polypeptide 1a)와 pp1ab(polypeptide 1ab)라고 불리는 단백질 덩어리를 만든다. 이들 덩어리는 3CLPRO(3C-like protease, MPRO 또는 Nsp5)와 PLPRO(Papain-like proteinase, Nsp3) 단백질가위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잘리고, RNA 중합효소인 RdRp(RNA-dependent RNA polymerase, Nsp12)에 의해 복제와 전사가 시작된다. <사진=IBS 제공>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세포 내 증식 메커니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RNA가 세포 내로 유입되면, 가장 먼저 pp1a(polypeptide 1a)와 pp1ab(polypeptide 1ab)라고 불리는 단백질 덩어리를 만든다. 이들 덩어리는 3CLPRO(3C-like protease, MPRO 또는 Nsp5)와 PLPRO(Papain-like proteinase, Nsp3) 단백질가위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잘리고, RNA 중합효소인 RdRp(RNA-dependent RNA polymerase, Nsp12)에 의해 복제와 전사가 시작된다. <사진=IBS 제공>

코로나-19의 원인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생명체는 아니지만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 다른 바이러스나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영화 속 기태네 가족들처럼 부유한(?) 숙주의 온갖 자원들을 제 것 마냥 활용한다.

홀로 증식이 불가능한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침입하여 숙주의 여러 시스템과 재료를 빌려 사용한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단백질로 숙주세포에 달라붙은 후, 세포가 가진 단백질가위를 활용해 자신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일부 잘라낸다. 이로써 바이러스막과 세포막이 융합된다[코로나19 과학 리포트 Vol.2 참고]. 이 때 바이러스 막 속에 보관하고 있던 RNA 게놈(positive-sense single-stranded RNA)이 숙주세포 안으로 침투하여 본격적인 증식활동을 벌인다. 이때부터 침입자가 주인노릇을 하고 자원을 강탈당한 주인(세포)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바이러스는 우선 RNA게놈 정보와 숙주세포의 단백질 합성경로를 활용하여 바이러스 증식을 위해 필수적인 단백질을 생산한다. 가장 먼저 pp1a, pp1ab 라고 불리는 단백질 덩어리를 만든다. 이 덩어리들은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단백질가위(3CLPRO 그리고 PLPRO)에 의해 여러 개의 조각(Nsp1~Nsp16)으로 잘게 쪼개짐으로써 비로소 기능을 갖는다(de Wit et al., 2016; Perlman and Netland, 2009; Wu et al., 2020). 마치 프라모델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서 부품 하나하나를 가위로 잘라낸 후 조립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조각난 Nsp(Non structural protein·비구조단백질)들은 서로 협동하여 바이러스 RNA 게놈의 복제(Replication)와 전사(Transcription)가 일어나도록 한다. 특히 비구조단백질 중 하나인 RNA 중합효소 RdRp(Nsp12)는 Nsp7, Nsp8 등과 함께 많은 수의 바이러스 RNA(유전체 RNA)를 복제한다. 유전체가 되는 RNA만 있다고 바이러스 입자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복제된 RNA를 보호할 피막과 스파이크 등 각종 구성품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RNA 중합효소는 여러 구성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RNA 전사체(유전체 RNA와 구분하기 위해 하위유전체RNA라고 부른다)를 생산한다. 이제 RNA 전사체들은 숙주세포의 단백질 합성경로를 활용하여 스파이크단백질을 비롯하여 외피단백질(E), 막단백질(M), 뉴클리오캡시드 단백질(N)들을 만들어낸다. 복제된 유전체 RNA들은 이러한 단백질과 합체하여 비로소 완성체인 바이러스 입자가 되고, 이후 세포 밖으로 나간다. 증식된 바이러스들은 세포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숙주세포의 막성분과 물질 분비시스템을 빌려 쓴다. 방출된 바이러스들은 다른 세포들에 침투하여 다시 왕성한 증식활동을 벌인다.

연구자들의 계획 : 바이러스 증식 기능을 차단하는 치료전략

바이러스만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복잡한 바이러스의 증식원리를 연구하는 이유는 이를 바탕으로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만을 콕 집어 증식을 억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긴급 상황이다.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이를 최대한으로 단축하기 위해 기존에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던 다른 바이러스 치료약물이나 개발하고 있던 신약 후보물질 중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치료효과가 있는 것을 빠르게 찾는 시도(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들이 이뤄지고 있다(Harrison C, 2020).

특히 기존 RNA 바이러스(에이즈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 독감바이러스 등) 치료제들 중 바이러스 단백질가위 또는 RNA 중합효소의 작용을 억제하여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약물을 중심으로 약물 재창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중 몇 가지는 코로나19 환자에서 치료효과와 독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Li and De Clercq, 2020; Zumla et al., 2016).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치료제인 애브비사의 칼레트라(Kaletra)와 에볼라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길리어드사의 렘데시비르(Remdesivir)이다.

칼레트라(Kaletra)는 경구투여가 가능한 약물로 리토나비르(Ritonavir)와 로피나비르(Lopinavir)의 혼합물이다. 에이즈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에 결합하여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로 단백질구조 기반 약물 개발의 초기 성공사례 중 하나다. 에이즈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와 최초 개발된 저해제 리토나비르의 결합구조가 밝혀진 뒤, 그 분자구조를 바탕으로 효능을 더 개선시킨 로피나비르가 개발됐다. 하지만 약물대사가 빨라 로피나비르 단독으로 쓰기보다는 리토나비르/로피나비르 혼합물로 임상 승인을 받았고, 이것이 현재 대표적인 에이즈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칼레트라이다(Kempf et al., 1995; Sham et al., 1998).

에이즈치료제인 칼레트라는 리토나비르와 로피나비르의 혼합물로 바이러스 단백질가위와 결합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차단한다. 다루나비르 역시 단백질가위의 기능을 차단하는 에이즈 치료제다. <사진=IBS 제공(위키피디아 발췌)>
에이즈치료제인 칼레트라는 리토나비르와 로피나비르의 혼합물로 바이러스 단백질가위와 결합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차단한다. 다루나비르 역시 단백질가위의 기능을 차단하는 에이즈 치료제다. <사진=IBS 제공(위키피디아 발췌)>
최근 발표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단백질가위의 모양을 살펴보면 사스바이러스(SARS-CoV)의 단백질가위와는 모양이 매우 흡사하지만, 에이즈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임을 알 수 있다(Jin et al., 2020). 이 때문에 칼레트라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코로나19 환자에서 확실한 치료 효능이 나타나는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임상실험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에이즈바이러스 단백질가위와 치료제 로피나비르 결합구조(PDB 1D 1MUI, 왼쪽), 사스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 3CLPRO와 신약후보물질의 결합구조(PDB 1D 2GX4,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 3CLPRO의 구조(PDB ID 6LU7, 오른쪽). 파란색 화살표는 결합하고 있는 치료약물을, 빨간색 화살표는 치료약물이 결합해야 하는 곳을 의미한다. <사진=IBS 제공>
에이즈바이러스 단백질가위와 치료제 로피나비르 결합구조(PDB 1D 1MUI, 왼쪽), 사스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 3CLPRO와 신약후보물질의 결합구조(PDB 1D 2GX4,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의 단백질가위 3CLPRO의 구조(PDB ID 6LU7, 오른쪽). 파란색 화살표는 결합하고 있는 치료약물을, 빨간색 화살표는 치료약물이 결합해야 하는 곳을 의미한다. <사진=IBS 제공>
길리어드사가 에볼라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렘데시비르(Remdesivir, GS-5734)는 ATP 핵산과 모양이 비슷하여 RNA 중합효소에 의한 바이러스 RNA 합성을 봉쇄한다. 미국 연구진이 시판된 항바이러스 약물 7종을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감염된 세포에서 테스트 해 본 결과 렘데시비르의 바이러스 증식억제효과가 가장 우수한 것이 확인됐다. 특히 급성 폐렴이 진행되고 있던 미국의 첫 번째 코로나-19 환자에 약물 투여 후 하루 만에 증세가 급격히 호전되고, 며칠 후 최종 완치되며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Holshue et al., 2020; Wang et al., 2020). 현재 렘데시비르는 경증에서 중증까지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3상 실험이 진행 중이다.

그밖에도 단백질가위의 기능을 차단하는 에이즈 치료제 다루나비르(Darunavir), RNA 중합효소의 기능을 차단하는 신종플루 치료제 파비피라비르(Favipiravir, 제품명 아비간), C형 간염치료제 리바비린(Ribavirin) 등의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에 밝혀진 바이러스 핵심단백질의 3차원 구조와 인공지능 딥러닝 기반 분자화합물 설계기술을 통해 바이러스 침투와 증식을 억제하는 코로나19 치료후보물질들 또한 새롭게 발굴되고 있다 (Alex et al., 2020; Gao et al., 2020; Jin et al., 2020).

바이러스 RNA 중합효소를 저해하는 약물(A)들은 구조가 핵산 ATP와 유사하여 바이러스 RNA 중합효소에 의한 RNA 합성을 봉쇄한다. B는 수족구 바이러스 RNA 중합효소와 치료제 리바비린 복합체의 구조(PUB 1D 2E9R, 왼쪽)와 단면(오른쪽)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IBS 제공>
바이러스 RNA 중합효소를 저해하는 약물(A)들은 구조가 핵산 ATP와 유사하여 바이러스 RNA 중합효소에 의한 RNA 합성을 봉쇄한다. B는 수족구 바이러스 RNA 중합효소와 치료제 리바비린 복합체의 구조(PUB 1D 2E9R, 왼쪽)와 단면(오른쪽)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IBS 제공>
◆ 암과의 전쟁에서 배울 점과 환자기반 의과학연구의 필요성

과거에는 암세포만을 집중적으로 죽이는 항암제를 사용했지만, 암세포가 변이와 진화를 거듭하며 암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활성화시켜서 면역세포 스스로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면역항암제가 개발(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됐고, 크게 각광을 받으며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회피하기 위하여 또 다른 ‘계획’을 세운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 침투 및 복제를 억제하는 치료전략과 더불어 인터페론과 같이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적절히 조절하여 바이러스 감염을 극복하는 전략 역시 많이 시도되고 있다.

3월 19일 현재 8,000명을 넘어선 국내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의 혈액 및 면역세포를 활용하여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인체 면역반응 분석, 치료항체 발굴, 경증환자와 중증환자 질병진행 양상과 면역과의 상관관계 분석, 여러 약물에 따른 치료 예후, 바이러스감염에 의한 폐렴과 기저질환과의 연관성 등을 분석하는 융합 의‧과학연구를 통해 생체 내 복잡한 면역반응을 조금 더 이해한다면, 향후 또 다시 출현할 수 있는 신종 바이러스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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