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상의 科技 기반 둔 의사결정으로 올바른 일 제대로 해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해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불붙어 확산하고 있다.
 
4월 2일 09시 월드오미터(Worldometer) 자료 기준으로 확진자 수가 93만 명, 사망자 수가 4만7천 명에 달한다. 무려 13개국에서 확진자 수가 1만 명 이상이며, 추가로 37개국에서 1000명 이상이다. 사망자 수는 1만3155명의 이탈리아와 9387명의 스페인을 비롯해 8개국에서 1000명 이상이다. 세계적으로 매일 확진자 수는 7만여 명, 사망자 수는 4000여 명씩 증가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을 연구하는 필자는 코로나19 확산과 대응과정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떠올린다. 재난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지만, 대응과정에 유사성이 많기 때문이다.
 
대구 경북에서 한 명의 환자라도 살리려고 애쓰는 의료진들을 보면서 사고 확산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후쿠시마 제1원전의 운전원들을 떠올렸다. 쓰나미 설계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도쿄전력 경영진과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전문가 경고를 무시한 백악관의 모습도 흡사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대형 원전사고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발생해 확대되었다. 아니,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 사람은 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제대로 대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비가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면서 실효성 있게 대응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적합한 대응책을 신속하게 찾아낸다면 최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사태의 진전을 늦추어 시간을 벌면서 현실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판단 착오나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최상의 과학기술 지식에 기반을 둔 합리적 의사결정이다. 최상의 과학기술지식은 최상의 전문가들에게 있으므로 이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종류의 재해가 발생하면 제도권 내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재야의 자칭 고수들도 다수 등장하는데, 누가 실력 있는 진짜 전문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도 그랬고, 경주와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제도권 전문가 중에는 당연히 실력 있는 분들이 많지만,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그릇된 의견을 내는 분들도 있다. 재야에도 실력 있는 전문가가 있지만, 균형 있게 판단하지 못하고 한쪽 면만을 보는 분들이 많다. 여기서 진짜 전문가, 진짜 고수를 식별하는 것은 의사결정자의 역할이다. 물론 중요한 의사결정자가 전문성을 갖추고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도 사심 없이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중요한 직책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적절한 수준으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나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의 역할만 보더라도 분명하다.
 
중국, 한국, 유럽, 미국 등 대부분 정부가 처음에 사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중국은 처음에는 사태 자체를 감추다가 우한에서 크게 악화한 다음에야 권위주의 정권의 힘으로 수습했다.
 
한국은 사태를 낙관적으로 대하다가 대구 신천지 교회의 집단 감염으로 정신을 차리고 총력 대응해 일단 수습했다. 대부분 유럽국가는 이탈리아에서 지역사회 확산이 일어날 때까지도 자국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국과 스웨덴은 코로나바이러스 봉쇄전략을 일찍 포기하고 면역확산을 통한 완화전략을 택했는데, 영국은 너무 큰 피해를 우려해 포기했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는 강력한 봉쇄전략을 취하는 오스트리아가 확산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하는 것 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2주 전까지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10만명 이상의 사망을 각오하란다. 뉴욕시장도 코로나19 확산의 위험성을 무시했었다고 한다.
 
브라질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별 것 아니니 일상생활을 유지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올림픽 문제로 코로나바이러스 문제 대응에 소극적이던 일본에서 도쿄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 모르겠다. 특히, 이번에 오판과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지금도 아프거나 아픈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면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데 아무래도 잘못하는 것 같다.
 
물론 전문가들의 오판도 많았다. 치사율이 신종플루 수준이거나 그 이하라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한 전문가들이 꽤 있었다. 감염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과정에서 확진자 수에 대한 사망자 수를 치사율로 제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대로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으면 환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행히 의료진의 영웅적인 노력과 대구시민의 자발적 협조, 국민의 성원,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맞물려 일단 한숨을 돌리고 있다.
 
두 달 전, 한 달 전에도 틀린 말을 한 전문가가 지금도 여전히 TV에 나와서 확신에 찬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우습다. 판단력이 부족해 보이는 이도 있고, 정치적 고려가 앞서는 것 같은 이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도 미디어의 구미에 맞는 말만 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자칭 전문가들도 있었다. 전문가도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틀린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모르면서 잘 아는 척하거나 개인적 이득을 위해 아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한다.
 
정부와 여야, 각종 전문가 단체와 개별 전문가, 다양한 미디어 중에서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는 사태가 완전히 종결되어야 평가할 수 있다. 완벽하게 바른 판단만 한 그룹이나 사람도 없고 반대인 경우도 없을 것이므로, 잘잘못도 상대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을 불과 2주 앞둔 상황이라 자기편의 잘못은 감추고 상대편의 잘못은 두드러지게 하려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상대편의 작은 잘못은 침소봉대해 비난하면서 자신이 조금 잘한 일은 자화자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아직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의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은 정치보다 과학에 의존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 편, 네 편 가르지 말고, 최상의 과학기술 지식에 기반해 '올바른' 일을 잘 찾아서 '제대로' 이행해야만 한다. 여러 의학 단체들은 명예를 걸고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최상의 대책을 신중하게 선택해 일관성 있게 추진하길 희망한다. 특히, 서울 등 거대도시 확산 대비, 초중등학교 개학에 따른 문제, 마스크 사용 문제 등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이 시급하다고 본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도록 전문가를 억압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사족) 재난 대응 관점에서 원전사고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비교하기는 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는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가 없었고,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선 피폭 사망자도 코로나19 사망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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