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재호 대학지성 In&Out 과학전문기자
인간 접촉 시도하는 경향, 혐오 거부 메커니즘 압도

코로나19 자가격리 위반자들에 대한 형사 고소가 수십 건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형사 처벌의 수위 역시 벌금 천만 원 혹은 1년 이하의 징역으로 그 수위가 높아졌다. 미국의 한 버스 운전자는 한 무책임한 승객이 자신의 차에 올라타 기침을 한 결과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죽기 전 분노를 담은 영상을 올려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버스를 운전했지만, 부주의한 감염자로 인해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버스 운전자였던 이 남성은 감염병 예방에 대해 부주의한 승객으로 인해 결국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분노를 영상에 담았고 CNN이 보도했다. <사진=브릭 제공(CNN 발췌)>)
디트로이트의 버스 운전자였던 이 남성은 감염병 예방에 대해 부주의한 승객으로 인해 결국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분노를 영상에 담았고 CNN이 보도했다. <사진=브릭 제공(CNN 발췌)>)
정부는 손목밴드 착용을 검토 중이다. 자가격리자 관리 강화를 위한 조치인데,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반대의 입장 역시 존재한다. 만약 제대로만 자가격리 권고를 지키기만 해도 감염의 수위가 줄어들 것인데, 강제적인 이탈 방지 수단까지 도입되어야 하는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상황까지 온 마당에 과연 개인의 권리와 감염병 억제는 어디에 무게 중심이 실려야 하는 것일까. 

최근 Cell은 전 세계 유행병에 대처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 논문을 공개했다. 팬데믹들과 심각한 진화적 불일치(Pandemics and the great evolutionary mismatch) 제목의 논문은 '위협에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게끔 할 수 있을까? 인지된 위험에 처했을 때 공포에 휩싸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더 잘 뭉치고 사회적 접촉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진화적 전략은 인간의 생존에 유리했을지 모르나, 현재 코로나19를 맞이한 측면에서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하는가? 현재 사회과학, 심리학, 미디어를 지배하는 가정은 인간 사회 속에서 공포, 반사회적 행동, 물자 확보를 위한 격렬한 경쟁 등이 우리 안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도덕을 무시하고, 사회 규범이 해체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걱정이 심한 셈이다. 하지만 논문의 공저자들은 그런 일은 발생하기 쉽지 않고, 기존 연구를 보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은 사람들은 대부분 침착하고, 협조적이 된다. 즉, 이기적인 회피보다는 협력과 접촉을 추구하는 게 주요 반응이다. 

생물학 전문 과학저널 Cell은 코로나19 특집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 중 '팬데믹들과 심각한 진화적 불일치(Pandemics and the great evolutionary mismatch)'도 실렸다. <사진=브릭 제공(Cell 발췌)>
생물학 전문 과학저널 Cell은 코로나19 특집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 중 '팬데믹들과 심각한 진화적 불일치(Pandemics and the great evolutionary mismatch)'도 실렸다. <사진=브릭 제공(Cell 발췌)>
◆  집단적 위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불안과 위협에 처했을 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자신을 돕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도우려는 경향이 늘어난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을 코로나19에 대입하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취약한 사람들과의 사회적 접촉을 늘이려고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반영해야만 자기 지향적인 합리적 결정에 닿을 수 있다. 즉, 자가격리가 언제까지 될지 모르니 생필품 사재기를 하고 손 세척제를 가능한 많이 확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직관적인 반응은 협조적이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사회 규범을 재창조해가며 서로를 도우려고 이타적이 된다. 

논문의 공저자들이 테러 공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 결과, 비상구로 나가기 위해 줄을 서고, 안전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투표를 거치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해 가는 가운데, 사람들의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프랑스에선 여전히 사람들이 테라스에 모이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칙을 깬 것이다. 독일 바이에른주는 지난달 31일, 엄격한 자가격리 조치를 취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했다. 사람들의 관성(inertia)과 평온함(placidity)이라는 경향이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사망자가 8만 여명에 육박해 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정말 심각한지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이다. 

논문 공저자들은 사람들이 비이성적이라거나 무책임하거나, 위협에 무지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위협에 처하면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려고 하고, 이런 경향이 늘어나는 게 심리학적으로 자연스럽다. 위협이 없다고 해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자연스럽지 않다. 논문에 따르면, 정상적인 상황에선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거리는 1미터이다. 접촉하려는 건 영장류의 자연스런 본성이다. 사회적 접촉은 극심한 스트레스 요인들에 대한 신체 반응의 생리적 조절에 기여한다. 사회적 접촉은 어떤 보상을 얻으려는 별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기저 반응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사회적 접촉이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접촉이 사라지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어떤 상황이든지 사회적 접촉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진=브릭 제공(아이오와 주립대 발췌)>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어떤 상황이든지 사회적 접촉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진=브릭 제공(아이오와 주립대 발췌)>
◆  1미터 거리의 사회적 접촉은 인간의 본성

재난에 대한 연구 사례를 보면,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게 더 안전하더라도 접촉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다는 걸 알아도 사람은 사람을 찾는다. 스트레스를 분산시키고 책임감을 감소시키기 위함이다. 친화 욕구와 접촉 시도는 당연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추구한다. 만약 가까운 이들이 없으면, 사람들은 가까운 곳의 친숙한 장소를 찾는다. 이게 바로 자가격리 조치가 일어나기 전 대규모 이동이 일어난 이유일 것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는 더 많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지인들의 얘기를 더 잘 믿고, 위협을 과소평가 한다.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고 있지만, 자신들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코로나19는 잠복기가 있고,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감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단적 위협으로 인식되는 게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혐오에서 발현되는 방어회피 기제가 작동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되고 있어도 설마 내가 감염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인식하는 건 인간 자신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아서 위험에 대한 거부와 자가격리 위반 등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위협이 보이지 않는 한 특정 개인들에게만 감염된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적군이나 포식자, 허리케인하고 확연히 다르다. 아울러,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한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과소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불행하게도 스페인 독감(1918-1920), 아시아 독감(1957-1958), 홍콩 독감(1968-1969), 러시아 독감(1977-1978), 신종 인플루엔자 A(2009-2010),조류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2013)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에 맞서는 문화적 규범이 확립되지 못했다. 

많은 유기체들은 오염 물질과 감염된 개체를 피하며, 감염된 개체는 스스로를 격리하면서 바이러스의 번식을 막는다.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감각부터 추상적인 혐오 사례들에 대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그런 메커니즘은 매우 보수적이다. 식중독을 예로 들면, 같은 음식뿐만 아니라 비슷한 음식에 대해서도 혐오 반응이 오래 지속된다. 완전히 소독된 바퀴벌레가 만약 물잔에 빠졌었다고 하면 그 누구도 그 물잔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번 코로나19에선 인간의 혐오 거부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왜냐하면 유대하고 접촉을 시도하는 경향이 혐오 거부 메커니즘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문의 공저자들은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접촉에 무게를 두자고 한다. 물론 기술 격차를 정치적으로 우선 줄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폭력성을 연구한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내면에 네 가지 선한 천사가 있다고 적은 바 있다. 그건 바로 ▲감정 이입 ▲자기 통제 ▲도덕 감각 ▲이성의 능력이다. 아마도 사회적 접촉을 시도하려는 이유가 이러한 본성이지 않을까 한다. 희망적으로 보자면 말이다. 어쨌든 이번 코로나19는 더 확산되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절실한 방법이다. 

◆ 김재호 대학지성 In&Out 과학전문기자는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 정보출처 :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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