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과학축제는 '과학 스토리텔링' 축제
베를린 장벽 무너지던 해 시작···올해 축제는 코로나 사태로 취소
과학축제 개최 이유 "합리적 사회 만드는 데 일조"

4월 21일은 우리나라 과학의 날이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도 매년 4월이면 과학이 평범한 일상으로 파고든다. 

유럽 최대 규모 과학축제로 성장한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현장은 과학이 특별한 게 아니라 삶이고 일상이다. 거창한 개막식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 소소하게 과학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즐기고, 삶에 끌어들인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매년 부활절 연휴 기간으로 축제 시기를 정한다. 영하의 체감온도, 우박과 눈·비가 거의 매일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과학소통 현장은 열기로 훈훈하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부터 시작됐다. 1989년 과학자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의지를 모아 시작됐다. 축제가 처음 열렸던 당시는 최초의 인터넷 상용 접속이 이뤄졌고, 인간의 유전자 변형이 처음 시도됐던 시기다. 아울러 백 투 더 퓨처, 고스트 버스터즈,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영화가 흥행한 때였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흥미로운 과학소통의 중심지로 성장해 오면서 매년 1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축제 중 하나가 됐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를 비롯해 '경이로운 우주'의 저자 브라이언 콕스(Brian Cox)와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 피터 힉스 경(Sir Peter Higgs) 등 수없이 많은 유명 과학자들이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참여해 축제의 품격을 높였다.

◆ 남녀노소 즐기는 270개 프로그램···한 프로그램 기획에 수개월 풍부한 논의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아이들과 가족은 물론이고 성인을 위한 다양한 과학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사진=김요셉 기자>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아이들과 가족은 물론이고 성인을 위한 다양한 과학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사진=김요셉 기자>
월터 스콧의 역사 소설,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홈즈', 조앤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등 전 지구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번영해 온 에든버러는 스토리텔링이 강한 도시다.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명성을 누려왔던 이곳에 또 다른 일상의 과학스토리가 펼쳐진다. 과학체험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스토리 라인이 강하다. 과학축제라고 하지만, 굳이 과학을 강조하지 않는다. 과학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일상의 삶과 얽혀 있다. 영화나 소설처럼 허구적이거나 이상적이지도 않으면서 현실감도 있게 자연스러운 정보와 감정으로 과학을 대중들에게 흐르게 한다.

에든버러 과학축제에서는 약 270개의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실습 활동과 대화 및 토론, 연극, 쇼 등 이벤트가 가지각색이다. 아이들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다. 성인들도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과학을 즐긴다. 절반은 가족 대상, 절반은 성인 대상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프로그램도 있지만, 대부분 유료 예약제로 운영된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는데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간 준비한다. 과학이 대중들에게 흥미있고 인기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작가, 예술가, 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통하며 과학적 지식 배경이 풍부한 다양한 네트워크가 가동된다. 또한 하나의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위해 사전 평가와 피드백을 받고 완성도를 높인다.

에든버러 도시 전경. <사진=김요셉 기자>
에든버러 도시 전경. <사진=김요셉 기자>
올해 축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전격 취소됐지만, 본래 환경에 중점을 두고 '지구의 날'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지구, 공기, 불, 물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창공의 순수한 빛과 공기가 있는 공간 아이테르(aether)를 포함해 창의적 사고, 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을 탐구하는 것으로 컨셉이 짜여졌다. 우리에게 직면한 지구환경의 가장 큰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역할을 수행해 보자는 취지가 담겼다.

매년 이처럼 광범위한 주제가 선정되는 이유는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회에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먼저 이야기해 나갈 수 있고, 보다 알찬 전시와 워크숍·토론·특별한 행사 프로그램들에 주제가 녹아들어 스토리텔링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제 현장에서 산업혁명을 일으켜 본 영국의 과학문화 저변이 얼마나 깊고 강한지 몸소 체험하게 된다.

◆ 도시 곳곳이 과학축제 현장···길거리, 동물원에서도 과학이 흐른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정취 덕분에 '영국 북부의 파리'라는 별칭을 얻은 에든버러는 걷는 즐거움을 주는 도시다. 도보로 2시간이면 도시를 관통할 수 있다. 수백 년 넘은 성과 탑, 건물 등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원형 그대로 삐죽삐죽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낸다. 도심 중심부 133m 높이의 화산 꼭대기에 세워진 에든버러 성의 웅장한 자태도 인상 깊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는 도시 곳곳이 축제 현장이다. 걸어 다니며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로 이동해 과학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은 에든버러 과학축제의 본거지이며. 과학축제의 과학예술융합 메인 이벤트가 전시된다. 박물관 중심의 그랜드 갤러리에는 2만 6,000개 풍선이 블랙홀 모양으로 매달리기도 하고, 상어 모양의 컴퓨터 자판기 재활용 작품도 전시되기도 한다. 매년 주제에 따라 여러 예술 작가들이 참여해 작
품을 만들어 낸다.

스코틀랜드 박물관 블랙홀 테마 전시. <사진=김요셉 기자>
스코틀랜드 박물관 블랙홀 테마 전시. <사진=김요셉 기자>
에든버러 시티아트센터(City Art Center)는 평소는 예술품이 진열되지만, 과학축제 기간에는 감각적인 과학 운동장으로 변모하여 주로 아이들의 과학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에든버러대학교 건물 중 하나인 플리전스(Pleasance) 극장과 前 왕립수의과학교 서머홀(Summerhall) 등 주요 공간에서는 성인들을 위한 토론과 워크숍, 강연이 펼쳐진다.

에든버러 지구과학 박물관 다이나믹 어스(Dynamic Earth)에서는 수십억 년의 우주와 지구의 역사 탐험을 위해 타임머신을 탄다. 4D 지구 체험관을 비롯해 빙하기 체험, 화산·지진 체험 등 말 그대로 다이나믹한 지구의 역동성을 체험할 수 있다. 에든버러 왕립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과 동물원도 과학축제 현장이다. 라이브 뮤직 파티 등과 같은 예술·음악과 연계된 이벤트도 진행된다. 평소 보지 못하는 다채로운 식물과 동물들을 접하는 것은 덤이다. 스토리텔링센터 극장에서는 기후변화 생태계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공연과 예술가와 로봇 사이의 관계를 다룬 단막극이 펼쳐지기도 한다. 과학버블쇼와 친환경 테마 과학전시 등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앞 거리에도 여러 과학 프로그램이 전개된다.

◆ 한국 과학축제와 에든버러 과학축제의 가장 큰 차이 '지속가능한 맨파워'

한국의 과학축제와 에든버러 과학축제의 가장 큰 차이를 꼽는다면 과학축제를 이끄는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부나 관 주도이고, 에든버러는 완전한 민간 주도다.

40여 명의 축제 사무국 전담 직원들은 축제를 위해 1년을 준비한다. 축제 기간에는 수백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별도로 동원된다. 자원봉사자들은 대학생 중심이고, 축제를 위해 사전교육도 받는다.

아만다 틴달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김요셉 기자>
아만다 틴달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김요셉 기자>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 총괄책임자 아만다 틴달(Amanda Tyndall) 크레이티브 디렉터는 지난 9년간 책임을 맡아 오며 축제의 주제·집중할 영역·핵심 요소 등에 대한 전반적인 비전을 수립하고, 외부 팀들과 협력해 왔다. 아만다 틴달과 함께 교육팀, 마케팅팀, 프로젝트팀, 글로벌팀 등 각 분야의 핵심 직원들이 축제와 교육 및 국제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고 있다.

에든버러 과학축제 사무국은 매년 4월 열리는 연례 축제와 함께 교육에 중점을 두고 일 년 내내 스코틀랜드 전역의 학교를 방문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기적으로 해외 이벤트를 주최하며, 현재 아부다비 사이언스 페스티벌(Abu Dhabi Science Festival)의 주요 프로그램 파트너로 지원하고 있다. 

30년이 넘는 과학축제 경험으로 사무국은 전 세계 과학커뮤니케이터들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기 위해 접근한다. 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중국·이탈리아 등에 파견돼 에든버러 과학축제 사무국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사를 운영하는지를 알리면서 지원 요청도 받고 있다.

에든버러 과학축제를 위해 총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기부금이 45%를 차지한다. 여기에 공공기관 자금과 기업투자가 각각 19%, 축제 유료프로그램 11%, 학교 세일즈 6% 등의 비율로 예산이 확보된다. 한국의 과학축제는 거의 100% 정부자금이 투입되며, 매년 대행사를 선정해 2중 3중 하청체제로 상당 금액의 중간 수수료가 투입되는 구조와 대비된다.

아만다 틴달 크레이티브 디렉터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 직면하고 있는 많은 도전적 과제들의 중심에 과학이 있다"며 "우리가 과학축제를 여는 궁극적 목표는 사회가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과학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해당 기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발행하는 '과학과기술' 4월호 특집섹션에도 동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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