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연구도 미스터트롯처럼···세계적 연구실 10개 목표

[인터뷰]김명준 ETRI 원장 임기 1년, 고객 재정의·시스템 개편
치열한 내부 경쟁, 동료·전문가 평가 통해 새로운 연구문화 구축
"연구경쟁은 필요···PBS가 낳은 비정상 상황이 문제, 3가지 제안"
진행=김요셉 취재부장, 정리=김인한 기자 inhan.kim@HelloDD.com 입력 : 2020.05.07|수정 : 2020.05.11
김명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이 지난달 임기 1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1년 임기 동안 가장 큰 수확으로 연구개발 체질 개선을 꼽았다. <사진=김인한 기자>김명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이 지난달 임기 1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1년 임기 동안 가장 큰 수확으로 연구개발 체질 개선을 꼽았다. <사진=김인한 기자>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이전에 없던 연구문화 조성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5억 미만 연구개발(R&D) 과제 280개 중 150개가량을 3년간 단계 폐지하고, 내부 구성원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미스터트롯 방식처럼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아이디어를 기관 내외부 전문가가 검토해 경쟁력 있는 연구 과제를 선별한다는 취지다. 이같은 R&D 체질 개선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오랫동안 준비된 ETRI 출신 기관장의 작품이다. 

지난달 김명준 ETRI 원장이 임기 1주년을 맞았다. 그는 작년 4월 취임해 ETRI 고객부터 재정의하고, 이에 필요한 조직·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과거 20년 동안 이어지던 연구소 체계를 허물었다. 직할 부서장 교체는 물론 본부장·단장 인사 25명 중 20명을 바꿨다. 연구실은 82개 신설했다. 파격 행보다. 김명준 원장은 "기관을 30%, 50% 바꾼 정도가 아니고 다시 허물고 지은 것"이라며 "지난 1년 새로운 체계로 운영되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R&D 체질 개선"이라고 언급했다. 

R&D 체질 개선 배경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ETRI 의지가 담겼다. 김 원장이 가장 공들이는 시스템이 바로 '전주기 통합사업관리체계'다.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치고, 동료 검토와 기관 내외부 전문가 검토를 거쳐 연구 과제를 선별하고, 공개성과발표회 사업화까지의 전체 트랙을 체계화한다는 제도다. 미스터트롯 방식처럼 연구무대를 만들어 경쟁력 있는 연구자를 만들겠다는 목적이다. 이 시스템은 코로나 극복을 위해서도 적용됐다. 

ETRI는 내부 자원 10억원을 풀어 코로나 극복 정보통신기술(ICT) 아이디어 39개를 모았고, 그중 2개를 채택했다. 연구 과제는 모기가 싫어하는 주파수를 가동해 모기를 퇴치하듯 코로나 바이러스도 고유 공명주파수를 찾아내 퇴치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선정됐다. 또 코로나 환자의 산소포화도를 자동 모니터링하는 기술도 채택됐다. 김 원장은 "실현 안 될 확률이 높지만 가능성이 조금만 있어도 해보려고 한다"면서 "전자통신 전문가들이 접근할 수 있는 독특한 접근 방법을 통해 국난 극복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내부 경쟁 피어 리뷰 통해 과학기술 발전···피어 리뷰 시스템 기관에 적용"

김 원장은 "전주기 통합사업관리체계의 철학은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나온 아이디어는 우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시스템인 것 같지만 핵심은 전통적인 피어 리뷰(peer review·동료 평가방식)이다. 과학기술은 동료 검토에 의해 발전해왔고, 그 시스템을 단지 기관에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연구를 위한 연구'를 지양하기 위해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기관이 미래에 나아가야 할 기술 로드맵, 인공지능(AI) 실행 전략을 구축했다. 김 원장은 "2035년 특이점(질적 도약이 발생하는 시점)이 온다고 가정하고, 미래에서 현재 ETRI가 개발해야 할 '2035 기술로드맵'을 그렸다"면서 "이와 함께 국가지능화 연구소로서 AI 실행 전략도 최종 검토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30년 동안 연구 현장에 있으면서 내부 시스템을 잘 알고, 정책결정권자·관료 등과도 유연한 관계를 맺어왔다. 새로운 기관 운영 방향을 내외부에 잘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그는 연구 과제 체계를 개편해 연구 체질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김 원장은 "2008년 기획본부장 당시 과제가 300여 개였는데, 10년 만에 580개로 두 배 늘어났다"면서 "연구비는 동일한데 과제 평균 크기가 줄어들고 파편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ETRI 역할에 맞지 않고 중소기업과 경쟁하는 5억 미만 소액 과제가 150개가 넘는데, 이를 임기 동안 단계적으로 90% 정도 줄일 예정"이라고 피력했다. 

임기를 2년 남긴 김명준 ETRI 원장은 "ETRI 입사 당시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기술' 창피한 수준만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30년 왔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있다"면서 "ETRI가 국제적인 연구소로 거듭나도록 징검다리 몇 개를 놓아 후배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피력했다. <사진=김인한 기자>임기를 2년 남긴 김명준 ETRI 원장은 "ETRI 입사 당시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기술' 창피한 수준만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30년 왔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있다"면서 "ETRI가 국제적인 연구소로 거듭나도록 징검다리 몇 개를 놓아 후배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피력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 "연구 경쟁은 필요···PBS는 운영이 낳은 비정상, 3가지 대안 제시"

김 원장은 연구 경쟁을 유도하는 PBS(과제중심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과학기술계가 PBS를 운영하면서 비정상적인 문제들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연구 과제들이 연결되지 않으면서 하향 평준화되고 파편화됐다"면서 "PBS 자체를 개선하기보다도 연구 규모를 과거처럼 키우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원장은 "연구원에게 경쟁은 필수적"이라며 "PBS 자체의 문제보다도 운영상 문제가 컸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그는 PBS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연구과제 규모 확대 ▲인건비 확대 ▲연구개발 정책지정제 등 3가지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김 원장은 "ETRI 사례처럼 인건비만 올라가면 연구자들이 인건비 확보를 위해 PBS 과제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면서 "기획재정부에 ETRI 인건비를 7년간 80억씩 올려주면 1000억원 규모의 PBS 과제에 들어가지 않는 효과가 있다고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국가가 해야 할 연구를 정책으로 지정하는 정책지정제를 통해 제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35 기술 로드맵과 AI 강국을 만들기 위해 ICT 개발에 힘쓰겠다"면서 "10년 내 10여 개의 세계적 연구실과 연구그룹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ETRI 처음 들어올 때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기술' 창피한 수준만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30년 왔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있다"면서 "ETRI가 국제적인 연구소로 거듭나도록 징검다리 몇 개를 놓아 후배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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