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원준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IBS(기초과학연구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와 코로나19의 원인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 또는 2019-nCoV)에 대한 과학 지식과 최신연구 동향을 담은 <코로나19 과학 리포트>를 발행합니다. IBS 과학자들이 국내외 최신 연구동향과 과학적 이슈, 신종 바이러스 예방·진단·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진행 상황과 아이디어 등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 과학 리포트 바로 가기> |
◆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본 코로나19 확산의 원인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에 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관점에서는 바이러스 발병 초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중국의 정치경제시스템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본다.
2020년 현재 중국 정부는 미중무역전쟁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 지방정부 부채의 급격한 확대 등 사회경제적 상황에 직면했다. 게다가 과거 사스(SARS) 사태 때의 '과오'를 반복하기도 했다. 2003년 중국 정부는 사스가 이미 광범위하게 발생한 2개월 뒤에 발병을 통보하고 대처를 시작했다.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춘절 특수를 이용한 내수진작과 사회분위기 안정을 위해서였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의 미흡한 초기대처와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치적인 환경에 맞물린 부족한 초기 대응으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의 사회정치경제적인 원인은 인재(人災)이며, 앞으로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 경제위기 지속되지만, 비약학적 개입으로 극복 가능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 코로나19의 사회경제적인 영향은 이 사태가 얼마나 빨리 종결되느냐에 달려있다. 즉, 백신과 치료제 개발 시기에 따라 사회경제적인 영향의 크기가 결정될 것이다.
백신 개발에는 임상시험과 같은 안정성 검증 기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간에 개발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2003년 발병한 같은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인 사스에 대한 백신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을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치료제 또한 신약재창출(Drug repositioning)로 보다 빠른 성과를 본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며 경제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비약학적 개입(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NPIs)인 적극적인 초기 진단과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경제적 위기 상황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1918년 스페인 독감 발병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를 분석한 연구결과2에서도 알 수 있다.
◆ 거시적 관점: 탈세계화 가속
인류 역사는 '분열에서 협력'의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이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경우 모두가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모두 낮은 이득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공산주의라는 정치실험으로 인해 오랫동안 자본주의에서 제외되었던 러시아와 중국이 1980년대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히 편입된 것이다. 이와 함께 오랜 기간 동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제외되었던 러시아와 중국의 저임금 노동인력이 급격하게 글로벌 시장에 참여했다. 세계 경제는 대규모 저임금 노동인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토대로 성장을 누렸고, 중국은 빠르게 자본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은 축적한 대규모 자본을 활용하여 고부가가치 중심의 기술 혁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그간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온 신뢰와 협력이 아닌, 중국만의 규범과 방식으로 도약을 도모했고, 그 동안 유지해오던 국제사회의 협력과 균형을 교란하게 됐다. 미국과 중국의 균열로 대표되는 현 시대는 다시금 '분열' 또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 방향으로 그 역사적 흐름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는 불행하게도 탈세계화로 향하는 국제사회의 변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사태 초기의 미흡한 정보 공유와 투명하지 못한 대응, WHO와의 정치적 연관성에 대한 논란,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대규모 감염자와 사망자의 발생 그리고 대공황에 가까운 전 세계 국가들의 막대한 경제적 피해는 이러한 분열을 가속화하는 추가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보다 독립적이고, 분열되고, 경쟁적인 사회정치경제 환경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부정적 흐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협력을 통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면서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미시적 관점: 밸류체인 분열, 4차 산업혁명 가속, 혁신의 기회 창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탈세계화는 국제사회경제를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탈중국화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의 분열이다. 글로벌 밸류체인은 최종재가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되는 것을 넘어, 상품 생산 단계별로 국제적 분업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말한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성장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마이클 크리에머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정리한 '오링 이론(O-ring theory)3'으로 설명된다. 오링 이론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도중 폭발한 사건을 사례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발사 당일 추운 날씨로 인해 챌린저호의 밸브에 사용되는 고무 패킹인 오링이 뻣뻣해졌고, 이로 인해 가스가 새어나와 연결부위가 파손되며 결국 챌린저호가 폭발했다. 즉, 오링 이론은 첨단기술일수록 작은 공정 하나의 결함이 전체가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현대 산업사회에서 제품과 서비스 요소요소의 최적화가 중요함을 설명한다.
한국 경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위기이자 기회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탈중국화로 인해 발생하는 중국 경제의 변화가 위기가 될 수 있는 반면, 탈중국이 가져오는 글로벌 밸류체인의 공동화 부분을 한국 산업이 새롭게 차지함으로써 밸류체인 상에서 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던 혁신의 사회경제적 수용을 가속화하여, 혁신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비접촉 중심의 새로운 산업적 변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어쩔 수 없는 혁신의 수용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온라인 교육, 생필품으로 확산된 전자상거래, 디지털 헬스, 원격 사무, 제조 및 서비스 로봇 등의 새로운 혁신이 코로나19라는 외부적인 충격에 의해서 사회적 수용이 급격하게 확대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안정된 경제 상황에서는 기존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혁신의 수용이 어렵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이러한 혁신의 모멘텀을 정부가 규제 및 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얼마나 호응해 나가느냐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해당 국가의 산업경제적 발전 정도가 결정될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의 과학기술 분야의 변화와 대응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 사회경제적 변화에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예상되는 거시적 변화는 과학기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경험으로 인해 과학기술은 보다 지역화 될 것이며, 사회는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높은 과학기술분야의 국가적 리더십과 신속한 과학기술분야의 보건, 의료를 포함한 과학기술적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다양한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다원화된 지원 및 육성정책 그리고 빠르게 전개되는 산업의 스마트화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유연한 인력양성 체계의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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