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학생 7명, '대전 어은동' 상권 살리려 프로젝트 구성
섭외된 65곳 중 원하는 식당에 선결제···가을학기 사용 가능
참여 식당 '마쯔미라멘' "세상 참 살만하구나 느껴"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 추진단'이 자체 제작한 홍보 영상 '한가한 어은동 이야기'. <영상=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 추진단>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 구성원 이혜림 KAIST 전산학부생)
"프로젝트 추진 소식을 듣고 단어로 울컥이 아닌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습니다. 학생들을 통해 마음적 여유를 얻었습니다. 세상은 참 살만 합니다. 마음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경험을 선물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 참여 식당 '마쯔미 라멘' 장재봉 대표)
KAIST 대학생들이 코로나 인해 잃어버린 지역상권의 봄을 되찾아주려 '다릿돌' 역할을 자진하고 나서 화제다.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KAIST 학생 7명이 뭉쳤다. 대전 유성구 어은동 일대 식당들의 활력을 되찾아주고자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의 시작은 일상에서 비롯됐다. 이혜림 KAIST 전산학부생은 코로나 사태로 이전보다 한산해진 어은동 일대가 계속 마음에 거슬렸다. 이혜림 학생은 "혹여나 앞으로도 사람이 없어 어은동 골목상권이 무너지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에 해결 방법 모색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혜림 학생이 처음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할인 쿠폰'이다. 말 그대로 학생들이 식당에 선결제하면 할인 쿠폰을 지급해주는 방식이다.
그는 이러한 방안이 상상 속에만 이뤄지는 일인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인지 궁금해 페이스북 카대전(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 게시글을 올렸다.
글을 접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교수들의 응원 댓글도 달렸다. 이혜림 학생은 자신감을 얻어 일을 추진하게 됐다. 카대전에 프로젝트 참여를 희망하는 7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구성원들의 전공은 다양했다. 물리학·생명과학·건설환경공학과 대학원생부터 산업디자인·전자·전산학부·생명과학과 학부생들로 구성됐다.
7명의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어은동 일대 상권 회복을 위한 방안을 구상했다. 이혜림 학생은 "처음 고안해 낸 할인 쿠폰은 업주 분들께 코로나를 빌미로 할인을 요구하는 의도로 보일까 봐 할인율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유신혁 KAIST 생명과학과 학생은 "할인 쿠폰은 학생들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좀 더 상권을 위한 방향이 낫겠다는 판단하에 업주분들과 상의 결과 지금의 '선결제' 시스템이 착안됐다"고 말했다.
◆ 1만원 단위로 선결제···64곳 중 원하는 식당 골라 '가을 학기'때 사용
선결제 금액은 1만원 단위로 진행되며 추진단이 만든 구글 폼 설문지에 들어가 개인정보(학번, 이름)와 원하는 식당, 선결제 금액을 제출하면 된다. 선결제 기간은 이달 15일까지다.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재학생·교직원·졸업생은 1만원 단위로 일련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예를 들어 같은 식당에 김모 군이 3만원, 나모 양이 1만원 선결제를 했다면 김모 군은 1~3번까지, 나모 양은 4번을 받게 되는 시스템이다.
그 뒤 선결제 리스트는 각 해당 식당으로 전달되며 재학생·교직원들은 가을학기 내 자신이 선결제 한 식당에 가서 학생증(또는 교직원증)과 부여받은 일련번호를 제시, 가게는 선결제 명단을 확인하고 학생·교직원 측이 명단에 서명함으로써 사용 완료된다. 개인적 사유로 인한 선결제 금액은 환불되지 않는다.
추진단은 해당 프로젝트 진행 중 법률적 고려사항 등에 대해 자문을 얻기도 했다. 이혜림 학생은 "선결제 이후 식당 폐업 등 문제가 생길 시 피해보상과 식당 업주분들과의 합의 시 어떤 형태로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와 관련해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하신 김병필 기술경영학부 교수님께 합의서 작성 등 진행 방향에 대해 조언을 받고 윤태성 교수님께선 전체적 진행 상황 틀을 잡아주셨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현재 최종 참여가 확정된 업체는 65곳이다. 이혜림 학생은 처음 프로젝트 진행 당시 혹여나 수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업주분들께 말문 터는 것이 어려웠다. 바쁘다고 회피하는 식당도 있었지만 '다음 주에도 영업하나요?'와 같이 캐쥬얼한 질문으로 인사를 나누며 접촉하기 시작했다.
추진단은 약 100곳의 식당을 2주 동안 각 두 번씩 방문했다. 첫 방문 시 프로젝트 방향을 설명, 일주일간의 생각할 시간을 준 뒤 다시 합의서 작성을 위해 재방문했다. 방문할때마다 식당 주인들은 학생들이 기특하다고 음료수나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했다.
이혜림 학생은 "어은동 일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KAIST 학생들이 어은동이라 칭하는 한정적인 구역 내의 식당들을 모집한 것"이라며 "이렇게까지 식당이 많을 줄 몰랐는데 알아보니 100곳이 넘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해당 프로젝트엔 추진단 구성원분들의 다양한 전공과 동아리 경험이 접목됐다. 산업 디자인 전공과 기술경영을 부전공하고 있는 한 학생은 영상과 포스터 작업, 전체적 생산·소비 방향에 도움을 줬다.
유신혁 학생은 "KAIST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글을 쓰고 언론사와 접촉하는 부분에 이점이 많았다"며 "추진단 구성원 중 교내 컨퍼런스 주최 동아리 '아이시스츠'와 복지 관련 위원회, 교내 방송사 'VOK' 등 다양한 구성원의 동아리 활동이 도움됐다"고 설명했다.
◆ "대단한 일 아닌 '일상의 문제'···상인-학생 친해졌으면"
유신혁 학생 또한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개인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처음 프로젝트 참여 당시, 이 프로젝트가 저 개인한테 중요하단 생각은 덜 했었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이 프로젝트 자체가 중요하게 다가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상인분들과 학생들이 친하게 지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끝으로 "카이스트 출신이 아닌 일반인 분들도 개인적인 선결제 등을 통해 상생에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 프로젝트 참여 업체 '마쯔미라멘'···"마음적 여유 얻게 해줘서 감사"
일본식 라면 전문점 '마쯔미라멘' 장재봉 대표는 2주 전 KAIST 대학원생이라 칭하는 한 여학생이 찾아온 당시를 생각하며 "울컥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말을 듣고 단어로 울컥이 아닌 심장 깊숙한 곳이 뜨거웠다"며 "'난 대학생 때 뭐했나'라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국민 대다수가 '마음적 여유'가 많이 없다는 느낌을 받고, 삶을 살아오며 마음적 여유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물질적인 부분은 적게 쓰고 하면 되지만 마음적 보상은 얻기가 쉽지 않다"며 "몇 년 간 고민했던 마음적 여유를 이번 학생들을 만나면서 한 번에 얻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장 대표는 수기로 선결제 명단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기존 단골손님 대상으로 한 선결제 장부도 똑같이 수기로 했었다"며 "다른 가게들도 대부분 선결제 장부가 존재하기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가게가 망하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생길 수도 있어 오히려 학생분들이 불안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을 듣고 그날 밤에 잠을 아예 못 잤다"며 "아내와 '세상 참 살만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그는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밀물과 썰물이 왔다 갔다 하듯, 물질적인 부분이 힘들더라도 마음이 든든하면 다 이겨낼 수 있으니 정신적인 부분으로 무장했으면 좋겠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선결제 금액을 떠나서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변할 것 같다. 마음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경험을 선물해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 총 65곳의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 참여 업체 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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