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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관의 아·사·과 20]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정말 멸치 머리에 블랙박스가 있을까?' 

필자는 2019년 '과학자의 글쓰기'를 출간한 후 많은 글쓰기 강연을 했다. 강연때마다 글쓰기를 강조하면서 예로 든 책가운데 하나가 황선도 박사의'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이다.

황 박사는 내가 근무하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 모박사와 친구인데 책이 나오면 SNS 등을 통해 엄청난 자랑질(?)을 한다고 한다. 솔직히 이 박사는 배가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책을 쓰면 주변사람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게 된다. 때문에 오해를 일으킬 여지는 충분하다.

책이나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강의할 때 사례로 이 책을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단행본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긴 호흡이 필요하고 때론 인내력을 시험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건이 될 때마다 조금씩 글을 쓰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그런 측면에서 좋은 사례다. 황 박사는 우연히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웹진 '물바람숲'에 글을 연재하면서 책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먼저 제철 물고기를 고르고, 그와 관련된 연구논문을 찾고, 연구 조사 중에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담아 글을 써나갔다. 

이처럼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열두달 제철에 맞춰 우리가 자주 접하고 즐겨 먹는 생선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에 황 박사가 현장에서 겪은 재미난 일, 먹어 보고 기억하는 맛, 우리 생활에 녹아 있는 역사와 속담 등을 얼버무려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물고기 박사의 지식과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선을 보였다.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물고기 16종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저자가 30년 이상 우리 바다에 사는 어류를 연구한 결과물이자 집대성이다. 

물고기 박사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바닷가에서 바닷가로 옮겨다니는 게 일이었던 저자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잔을 놓고 '물고기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안주로 올라온 생선회를 놓고 풀어낸 물고기 이야기를 묶어낸 것이 이 책이다.

책은 월별로 밥상에 올라오는 물고기에 대해 적었다. 우선 1월의 물고기는 명태.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직장 동료와 퇴근길에 소주 한잔 기울이려 주점가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후죽순 생겨난 동태 전문점으로부터 어머니를 따라 들어간 시장에서 본 동태, 술먹고 들어온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북어를 두둘기던 추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명태는 이름만 해도 갖가지로 불린다. 안주인 노가리는 1년 정도 자란 작은 명태를 말한다. 노가리는 농짓거리라고도 하는데 농담의 '농'자에 우리말의 접미사 '가리'가 붙은 말이다. 서민들은 맥주집에서 '노가리' 안주를 씹으며, 상사를 안주삼기도 한다. 가까운 친구들과는 노가리를 먹으며 '노가리'를 풀기도 한다.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협받는 어종과 어획량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단일 어종으로 세계에서 어획량이 가장 많은 어류인 명태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근해에서 15만톤이 잡혔다. 하지만 2000년대는 1000톤으로 줄고, 2008년에는 공식 어획량 '0'을 기록했다. 명태가 사라진 것이다. 황 박사는 여기서 '사라진 명태를 현상수배합니다'라고 울부짓고 있다.

5월의 물고기 멸치는 이 책 제목과 연관이 있다. 몸길이가 1.5~7㎝에 불과한 멸치는 나름대로 영특한 구석이 있다. 그 작은 머리에 블랙박스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멸치의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이석(耳石)은 경골어류인 멸치 귓속에 든 단단한 뼈를 말한다. 이 단단한 이석을 쪼개거나 갈아서 단면을 보면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무늬가 나온다. 이 곳에 그 물고기가 살아온 모든 어류 정보가 고스란히 기록된다.

9월에 만날 수 있는 제철 물고기로 갈치와 전어가 소개된다. 특히 가을 전어로 불리는 전어는 "가을 전어 대가리에는 깨가 서 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맛좋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말이 뜬금없는 말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 전어의 성분은 계절마다 별 차이가 없지만 가을이면 지방 성분이 최고 3배 정도 높아진다.

전어에 전(錢)자를 쓰는 이유도 그 맛때문이라고 한다.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에서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아"붙은 이름이라는 유래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11월의 물고기 홍어다. 작가는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홍어의 '누명'을 벗겨주려 시도한다. 정약전은 홍어를 '음탕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는 "홍어의 양 날개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있는데, 교미할 때 암컷의 몸을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암컷이 낚싯바늘을 물면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하다가 다 같이 낚시줄에 끌려 올라오는 예가 있다. 암컷은 먹이 때문에 수컷은 색을 밝히다 죽는 셈이니, 이는 음을 탐하는 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고 적고 있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홍어의 입장을 항변한다. 작가는 홍어를 아름답고 처절한 섹스의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유교가 지배하던 그 당시, 정약전 선생이 참홍어가 삼강오륜을 지키는 일부일처주의자임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낙에 걸려 죽어 가는 암놈을 덮치는 수놈. 그것은 교미후 기꺼이 암컷에게 잡어먹히는 수사마귀처럼 짝에 대한 마지막 작별의 애절함은 아닐까. 참홍어는 정녕 아름답고 처절한 섹스의 미학을 보여 주는 물고기일 것이다.(p 218)

황선도 박사는 '과학계의 대표 구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털보 이정모 관장도 황 박사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는 뒷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과학계 최고 구라가 들려주는 많은 이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재미있는 물고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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