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진단장비 수출과 교육 인력 파견으로 LNG선 100척을 수주하겠다는 나비효과가 벌어진 무대는 카타르.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나라다. 카타르에 어김없이 코로나19가 급습했다.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모색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이오 강국인 미국, 유럽 등 코로나19 진단 장비는 자체 수요도 소화할 수 없을 뿐더러 생산 자체도 어려웠다.

한국이 방역 모범국으로 떠오르자 카타르는 지난 3월 24일 한국에 SOS를 보냈다. 발신인은 사드 셰리다 알카비(Saad Sherida Al-Kaabi)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QP) 회장 겸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에너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카타르의 실세라 할 수 있다.

"한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구해달라."

수신자는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이었다. 채 사장은 연락을 받자마자 움직였다. 수소문 끝에 진단키트뿐만 아닌 진단 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련의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는 기업은 대전의 바이오니아 하나뿐이었다.

채 사장은 바로 다음 날 바이오니아 본사를 찾아 박한오 대표를 만났다. 채 사장은 박 대표에게 "카타르는 한국이 액화천연가스의 30% 이상을 수입하는 중요 파트너"라며 "코로나19 장비와 키트를 공급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기술 축적 30년, 바이오니아 공헌

당시 바이오니아는 50개국과 공급계약을 확정한 상황이었으나, 카타르를 우선순위로 삼았다. 박 대표는 각 부서장을 불러 모으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며 "다른 곳보다 우선순위를 가지고 공급을 서두르자"고 독려했다.

이후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열흘도 안돼 계약 체결, 곧바로 물품 공급과 교육까지 이뤄졌다. 코로나19 진단장비 18대를 포함해 분자진단키트, 핵산추출시약 등을 공수했다. PCR 장비 특성상 전문 인력이 필요, 현지로 인력까지 파견했다. 이들은 카타르 도하에 일주일가량 머무르며 병원 관계자들에게 진단 장비와 키트 사용법을 교육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도하 지사는 커뮤니케이션을 도우며 한국의 우수함을 알리는데 일조했다고 한다.

바이오니아는 코로나19 표준 진단법인 실시간 RT-PCR(유전자증폭) 방식에 필요한 모든 시스템을 국산화했다. 코로나19 환자 진단은 검체에서 RNA(리보핵산)를 추출한 뒤 바이러스 유전자를 증폭하는 과정을 거친다. 바이오니아는 이 과정에 필요한 핵산 추출키트·장비, 유전자 증폭키트, 진단장비를 국산화해 의료 장비·인력이 부족한 국가들에 진단시스템을 통째로 보낼 수 있다.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연구개발한 결과물이다.
 

카타르는 5월 말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5만5262명에 다다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지속 증가했지만, 의료 현장에선 한국산 진단 장비와 키트를 공급받으면서 방역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급한 불이 꺼지자 카타르 측에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국에 SOS를 친 사드 셰리다 알카비 QP 회장 겸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은 카타르가 대규모로 추진하는 LNG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현지 언론에 "한국 조선사에 LNG 선박 100척을 6월 중 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카타르는 오는 2027년까지 LNG 총생산량을 연간 7700만톤에서 1억2600만톤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카타르가 운용하는 LNG선은 70여척. 그보다 많은 숫자를 발주하고 이를 한국 측에서 받겠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카타르 간 비즈니스 웨비나에서 밝힌 사안으로 계약서 사인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침체에 빠진 국내 조선업계엔 낭보다.

◆바이오 기술 50억으로 23조 규모 LNG 선박 100척 수주 '나비효과' 

LNG선 100척 수주는 전례 없는 일이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해 수주한 'LNG운반선'은 48척이다. 이번에 수주가 임박한 LNG선박은 그 두배에 이르는 수치다.

바이오니아가 카타르에 수출한 진단키트·장비 액수는 50억원 정도. LNG 유조선 100척 가격은 23조원이다. 바이오 기술은 50억원 규모였지만,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관점에선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상징적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카타르는 한국이 선박 건조 능력도 있고 어려운 때 도와준 만큼 호혜의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학계 중동 전문가는 "카타르는 의리를 중시하는 나라"라며 "앞으로 카타르와의 협력 과정에서 우리도 이 부분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조선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주변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지난 4월 중국이 카타르로부터 LNG 선박 16척 수주를 따내면서 업계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선박 수주 부진이 지속되면서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5조2000억원 긴급자금 공급을 약속받을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업계는 현재의 낭보가 수주로 확정된다면, 중국 조선업계의 맹추격을 따돌릴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