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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에 과학계 미래도 안보인다

AI 인력 뽑는데 코딩시험 無···"현 제도면 기업 실력자 서류 탈락"
20:1 경쟁률 뚫은 지원자가 역량 미달···연구실선 "기막힌 상황"
과기부·연구회 제도 개선 말로만···수월성 뒷전, 공정이 空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출연연에 따르면 3개월에 걸쳐 서류-필기-면접을 진행한 결과 역량이 떨어지는 후순위 지원자를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블라인드 채용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출연연에 따르면 3개월에 걸쳐 서류-필기-면접을 진행한 결과 역량이 떨어지는 후순위 지원자를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블라인드 채용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일괄 적용되면서 인공지능(AI) 관련 연구실에 역량이 떨어지는 후순위 지원자가 뽑혀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관련 연구 모집 경쟁률은 20:1에 육박했다. 2017년부터 시행된 블라인드 채용 원칙에 따라 AI 인력을 뽑는데 코딩 테스트는 커녕 논문 개수로 정량 평가해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결과다. 과학계에선 "평가 기준이 연구 수월성이 아닌 심사 공정성에 맞춰진 폐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출연연에 따르면 3개월에 걸쳐 서류-필기-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연구 역량이 떨어지는 후순위 지원자를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성이 중요한 연구 인력 채용 절차에도 블라인드 채용이 일괄 적용되면서 논문 개수가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되고 있다. 이 제도로 연구 수월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공정성은 공(空)정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A 출연연은 총 14개 분야에서 연구 인력 18명 채용에 들어갔다. 각 연구 분야에 석·박사급 1~2명이 채용되는 수치다. 각 연구실 인원이 10명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채용 인원 한 명이 소중하다. 특히 AI 연구 분야는 개척이 필요한 분야라 논문보다도 당장 코딩이나 AI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해본 연구자가 시급한 상황. 각 연구실은 즉각 호흡할 수 있는 인력 채용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는 절망으로 변했다. AI 연구를 총괄하는 K 부서장은 "AI 실력자가 대거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서류와 필기를 뚫고 면접에 올라온 지원자들은 역량이 떨어지는 지원자였다"면서 "지원자들이 뽑아주면 열심히 연구하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I를 아주 잘하지는 않더라도 문제를 해결해본 사람이거나, 논문 한 편을 썼더라도 임팩트 있는 AI 논문을 쓴 지원자가 올라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출연연 채용 과정은 각 연구실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에 대한 '직무기술서'를 인사 부서에 넘기면 검토를 거쳐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보고하거나 자체적으로 인력을 채용한다. 이 과정에서 서류-필기-면접 전형 절차는 3개월가량 걸린다. 서류에 인적, 학력 사항을 기재할 수 없으니 논문을 통해 출신이나 연구 활동을 유추하기도 한다. 이마저도 채용 심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다수 부서장은 논문조차 못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부서장은 면접 전형에서 참관하는 정도가 최대 참여다.

K 부서장은 "채용 절차가 완전히 깜깜이"라면서 "부서장이 전혀 정보를 알 수 없고, 원하는 인력이 있어도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출연연 채용 기준 자체가 연구 논문 실적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면서 "현 제도에선 기업에 다니는 AI 실력자가 와도 뽑기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B 출연연 로봇 연구실 사례도 마찬가지다. 로봇 연구를 하는 연구실에서 인력을 채용하려고 했으나 직무와 연관 없는 인물이 선발돼 타 연구실에서 데려갔다. 인력이 당장 급했으나 호흡을 함께 못하니 보낼 수밖에 없었다. P 부서장은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서 논문을 다 찾아보는데,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면서 "인력을 뽑게 되면 오랜기간 함께 일해야 하는데 관련 전문가가 들어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출연연 들어가려는 석·박사, 논문 숫자 늘리기도

KAIST 박사과정생 C씨는 블라인드 채용을 "눈 가리고 아웅"이라면서 "논문을 질적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논문 양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사람은 필요하고 좋은 연구를 하면서 임팩트 있는 논문 1~2편을 쓰는 경우도 있다"면서 "블라인드 채용으로 논문이나 특허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상황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KAIST나 서울대 학생들의 경우 논문을 쓰기도 하지만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해 논문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연구 실무 경험을 쌓는 경우가 더 많다.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무 경험한 이력은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C씨는 "이 제도는 결국 정량적인 수치만 남는다"면서 "박사급 인력은 정말 소수의 인재만을 뽑는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 사람과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평가하려면 심층적인 면접을 통해 채용하는 절차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과기부와 연구회는 블라인드 채용 일괄 적용 폐해를 극복하고자 연구자 채용 시 출신 학교와 추천서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블라인드 채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현장 간담회는 여려 차례 했지만 진전은 없다. 과기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와도 지난 5월이 되어서야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했다.  

이성우 연구회 인재개발부장은 "지난해 말부터 현장 간담회를 통해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연구직에 대한 채용 특수성을 고려해 고용부를 포함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형한 과기부 사무관도 "연구회와 논의해서 필요한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고용부와 기재부 등 해당 부처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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