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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님말고?' 과학계가 그리 만만한가

KAIST 수장 무혐의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부처
"정권 교체때마다 과학계 흔들기 관행 근절돼야"
KAIST 총장 고발건이 혐의없음으로 종료됐다. 횡령혐의로 고발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항고를 포기했다. 감사도 곧 마무리하기로 했다. 신 총장은 1년 10개월만에 연구비 횡령 혐의를 벗게 됐다. KAIST는 이 사안을 조용히 덮는다고 했다. 잘 마무리된듯한 이번 일에 씁쓸함이 남는건 왜일까.

과학계도 언젠가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장 물갈이가 수순이 됐다. 긴 호흡의 연구철학 필요성을 고려하는 정권은 없었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은 존중되지 못했고 현장은 그때마다 술렁였다. 기관의 수장 자리와 요직은 정권의 전리품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인사들도 등장했다. 

촛불민심으로 세워진 이번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정권이 들어서고 캠코더(당시 캠프출신, 코드인사,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이뤄졌다. 과기부처 장관, 차관 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권 인사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외부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며 더 잘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임명된 사람이 잘한 사례도 별로 없다.

정권 시작과 함께 과기계 기관장 10여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들 대부분은 지속적인 사퇴압력과 감사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별 반응이 없어서일까. 이번 정권은 국내 연구중심대학의 중심축인 KAIST 수장자리도 넘봤다. 직무정지에 사퇴압력까지 서슴지 않았고 급기야 검찰 고발이란 초강수까지 두었다.

과학자 챙피주기에 외압이란 초유의 사태였다. 이에 먼저 언론이 나섰다. 과학자 흔들기는 안된다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신 총장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KAIST 이사회에서도 신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국제 학술지, 해당 기관이었던 국립해외연구소에서도 신 총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다. 이사회는 신 총장의 대외행사 자제를 권고했다. 과기부는 KAIST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국내 최고 연구중심 대학으로 국내외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해야 할 KAIST는 위상이 추락했다. 총장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내부는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의 KAIST 활동도 위축됐다. 그러는사이 16대 KAIST 수장의 임기는 절반이 지나갔다. 이번 정권도 반환점을 돌았다. 사람이 영원하지 않듯 정권도 무한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신 총장을 횡령혐의로 고발했던 시기의 과기부 유영민 장관(2017.7~2019.9)과 문미옥 차관(2018.12~2019.12)은 이미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 4월에 열린 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이유로 정치권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휘젓고 간 과학계의 상처는 고스란히 과학계의 몫으로 남았다. 가장 큰 문제는 '과학강국 코리아'라는 이름이 무색한 국제적 망신이다. 국제적 학술지에서는 한국의 과학계 기관장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과기부 감사관 측은 신 총장 고발 건에 대해 혐의가 있어 관련법에 따라 조치했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감사관실에서야 윗선(?)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테니 그들을 나무할 수도 없겠다. 결국 신 총장은 혐의 없음이 확인됐지만 과기부의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과학계 전체에 대한 명예훼손인데도 누구도 말이 없다.

KAIST는 조용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과학 현장에서는 정권의 과학계 흔들기를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 하느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더기로 기관장이 떠나고 '아님 말고 식'의 감사로 뒤숭숭해진 분위기는 연구자, 연구성과 피해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다.

일부 원로들은 과학자는 정권으로 탄생하는게 아니라고 간곡히 당부하기도 한다. 4대 과기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부처가 갑질만 하고 있다는 질책도 쏟아낸다.

 4차 산업혁명, 일본의 수출규제, 코로나19 등 과학계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또 한국은 패스트 팔로우에서 퍼스트 무버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부처와 연구중심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머리를 맞대며 해결점을 찾아가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이다.

 정부는 과학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증액했다. 정부 R&D 예산 27조원 시대다. 정부는 과학기술 기반의 디지털뉴딜, 감염병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서는 예산 이전에 과학자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과학계를 더 이상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한다. KAIST 수장 흔들기로 과학계가 입은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정권교체시기마다 자행되는 과학계 흔들기가 근절되길 바란다. 또 무책임하게 과학계를 흔든 인사는 결과에 따라 국민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해야할 것이다. 과학계도 연구환경의 '자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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