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죽음과 주검을 통해 본 삶의 통찰

이번 책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1500여건의 부검을 해온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다. 법의학자가 매주 주검을 마주하며 쌓아올린 '죽음론'이자 죽음을 통해서 본 삶의 통찰을 기록한 책이다.

책은 법의학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과 죽음에 관한 수많은 논제, 죽음의 정의에 대해 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는  이 책을 두고 '죽음 지침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가명상(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차원이 다른 명품 강의'라며 은근히 치켜 세우는 것이 약간 거슬린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법의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다. 2부 '우리는 왜 죽는가'에서는 생명과 죽음의 정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화해온 죽음관을 살펴보고,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죽음을 예측하고 남겼던 유언을 통해 삶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유 교수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삶에는 명료한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거나 일상생활에서 불만이 가득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삶의 가치와 방향을 찾아가는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오늘'과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제목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여서 다소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책은 흥미진진하다. 죽음을 다루지만 생생한 사례 때문인지 독자들의 흥미를 돋군다. 법의학과 관련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법의학자란 무엇인가? 법의학자는 법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법의학자가 얼마나 될까? 책이 출판된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법의학자는 정확히 40명이다. 한마디로 법의학자는 희귀종이다. 천연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40명의 법의학자는 현재 전국에 골고루 흩어져 있다고 한다.

40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학회에 참석할 때도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라도 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법의학자들은 함께 이동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모인다. 농담같은 진담이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아이러니 집단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생생한 사례가 나온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룬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도 그냥 툭치니 죽은 것이 아니라 가혹한 폭행에 의해 사망했다.

최요삼이라는 유명 권투선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2008년 뇌출혈로 링에서 쓰러졌다. 상대 선수의 강력한 오른쪽 스트레이트에 턱을 맞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다. 유족은 뇌사판정 후 새 생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 숭고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죽으면서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큰 사랑이 아닐 수 없다.

특별한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특별하다. 뽀글뽀글 파마머리가 대세이던 1970년대에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미용계의 대모로 활약했던 그레이스 리에 얽힌 이야기다.

그는 50대 때부터 특별한 장례식을 꿈꿨다. 그레이스 리는 생전에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는 국화를 싫어했으며, 곡(哭)이라는 것에도 거부감을 보였다. 국화와 곡 대신 그의 장례식장에는 탱고 음악이 깔리고, 붉은 장미와 와인이 준비됐다. 고인에 뜻에 따른 것이다.

추모객들은 장례식장에서 장미꽃을 한송이 놓아주고, 탱고 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 모금을 음미했다. 문상객은 "그레이스 리는 정말 멋진 여성이었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지"라고 회고했다.

이밖에도 심장마비로 묻힐 뻔했던 남편에게 맞아 숨진 아내의 이야기,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보험금을 받게 하려고 함께 죽음을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 등에는 분노가 일기도 하고, 가슴이 저려오기도 한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앨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유명한 죽음학자의 얘기를 통해서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죽음학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학이라는 학문을 각인시켰다. 실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심리학적 반응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른바 ‘퀴블러 로스 사망단계’라는 것이다. 사망단계는 부정→분노→타협(협상)→침체(절망)→수용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사망을 5단계로 정리했다.

유 교수는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통해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기 꺼리는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으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미리미리 죽음을 공부하고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명확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신이 추구하려는 가치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람이다. 죽음을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