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싸우는 벤처㉔] 23년 한 길 걸어온 진켐
모유 성분 '시알릴락토스' 활용해 코로나19 대응 모색
코로나19 진단키트 소재 dNTP도 국산화해 방역 일조

진켐은 당 부착 기술(Glycosylation) 분야에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진켐에서 코로나19 대응에 나섰다. <사진=김인한 기자>
진켐은 당 부착 기술(Glycosylation) 분야에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진켐에서 코로나19 대응에 나섰다. <사진=김인한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4월 국내에서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다. 생후 27일 된 신생아가 모유 수유만으로 코로나19를 완치한 사례가 보고되면서다. 국제학술지 '임상감염병'(Clinical Infectious Diseases)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이 신생아는 코로나19에 걸린 엄마보다 바이러스가 약 100배 많았다. 모유만 먹은 신생아 몸속에선 어떤 면역체계가 가동된 것일까. 

모유 속에 존재하는 모유올리고당(HMO), 시알릴락토스(Sialyllactose)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대덕 바이오벤처 '진켐'은 답을 알고 있다. 진켐은 당 부착 기술(Glycosylation) 분야에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다. 이 기술로 모유의 초유(初乳) 속에 가장 많이 함유된 시알릴락토스를 유기합성 방식이 아닌 효소 반응으로 생산해 2018년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안전원료인증(GRAS)을 받았다. 먹어도 안전하다는 의미로 시알릴락토스에 대한 최초 인증이었다. 

국제학술지 셀, 네이처 리뷰 미생물학(Microbiology) 등에는 시알릴락토스가 면역 조절과 자가 면역질환 억제 효능을 보인다고 나와 있다. 진켐은 그동안 시알릴락토스를 활용해 관절염 개선과 근육발달, 두뇌·인지력 발달 등을 돕는 메디컬 푸드(건강기능식품)로 임상을 진행해왔다. 진켐은 이 물질을 활용해 코로나19 극복에 나섰고,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2년간 연구비 6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우진석 진켐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가 수천 개에 다다르고 신종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상황에서 시알릴락토스를 활용하면 어떤 바이러스든 대처 가능하다"며 "신생아가 완치된 배경도 모유 속에 존재하는 시알릴락토스가 바이러스와 들러붙어 코로나19를 몸 밖으로 배출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했다. 

학술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도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대 퉁이강 교수 연구진이 코로나19 유행 전 채집한 모유를 세포에 접촉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모유가 바이러스 세포 침입과 흡착을 막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 바이러스가 복제되는 걸 막았다고 발표했다. 

◆ 체내 침투한 바이러스, 모유 성분이 체포 

바이러스는 특정 수용체에 들러붙어 세포에 침투한다(좌). 그런데 모유 성분 '시알릴락토스'가 있으면 바이러스가 시알릴락토스와 결합한다. 이렇게 되면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에 붙을 스파이크 단백질이 없어진다. <사진=진켐 제공>
바이러스는 특정 수용체에 들러붙어 세포에 침투한다(좌). 그런데 모유 성분 '시알릴락토스'가 있으면 바이러스가 시알릴락토스와 결합한다. 이렇게 되면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에 붙을 스파이크 단백질이 없어진다. <사진=진켐 제공>

 

시알산이 붙어있는 당사슬에 바이러스가 결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알릴락토스가 바이러스와 결합해 세포 침투를 막는 것이다. <사진=진켐 제공>
시알산이 붙어있는 당사슬에 바이러스가 결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알릴락토스가 바이러스와 결합해 세포 침투를 막는 것이다. <사진=진켐 제공>
바이러스가 몸속 세포에 침입하려면 특정 수용체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세포 표면에 있는 ACE2(안지오텐신 전환효소2) 수용체에 들러붙어 세포에 침투한다. 코로나19 표면에 가시처럼 뾰족 돋아난 스파이크(Spike) 단백질과 세포 표면에 있는 ACE2라는 수용체가 붙어 몸에 바이러스가 생기고 증식한다. 그렇다면 스파이크 단백질이 ACE2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하면 어떨까.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몸 밖으로 배출된다.

예컨대 모유 성분인 시알릴락토스가 체내에 들어와 바이러스를 만나 결합하면,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세포와 붙을 곳이 없어진다.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에 붙기 전 갈 길을 잃어 몸밖으로 떠밀려 나간다는 의미다. 우 대표는 "시알릴락토스가 코로나19가 ACE2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해 세포 침입을 막아 초기 치료 효과를 기대한다"며 "중증 환자에게 일어나는 과도한 면역을 억제해 면역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세포는 핵,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지방, 당사슬 등으로 이뤄져 있다. 당사슬은 세포 바깥에 사슬 모양으로 있다. 자연계에는 200여 개의 단당류가 있지만 인체에는 8가지 필수당이 당사슬 형태로 있고, 그중 사람의 당사슬 끝은 시알산으로 마무리돼 있다. 진켐이 개발한 시알릴락토스는 몸속 시알산이 붙은 당사슬 구조를 몸 밖에서 구현한 것이다. 

시알릴락토스는 그동안 대량 생산할 방법이 없어 세계적 바이오 기업도 만들지 못한 물질이다.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대사물질을 만들려면 물질 안전성에 리스크를 지니는 유기 화학 용매를 사용해야 하는 한계가 큰 이유에서다. 진켐은 500개가 넘는 효소 라이브러리를 통해 시알릴락토스를 유기 용매가 아닌 생합성 과정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 반도체 불화수소처럼···진켐, 코로나19 분자진단 핵심소재 공급

우진석 진켐 대표는 "효소 공정을 이용한 시알릴락토스, dNTP 물질을 만드는 건 외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술"이라고 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우진석 진켐 대표는 "효소 공정을 이용한 시알릴락토스, dNTP 물질을 만드는 건 외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술"이라고 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진켐이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들어가는 dNTP를 국산화한 공정. <사진=김인한 기자>
진켐이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들어가는 dNTP를 국산화한 공정. <사진=김인한 기자>
진켐은 23년 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진단키트 핵심소재인 dNTP를 대량생산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3월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Roche)와 써모피셔(Thermo Fisher) 등에서 물량 공급이 막혔던 그 소재다. 

dNTP(Nucleoside TriPhosphate)는 인이라는 물질이 세 개 붙은 물질이다. 이 물질을 만들려면 dN에서 인이 한 개만 붙은 물질 dNMP(Nucleoside MonoPhosphate)를 만들고, 이를 다시 세 개로 붙여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 진켐은 효소 반응을 통해 dN에서 dNTP로 곧장 가는 공정을 만들었다. 공정이 줄어드니 비용도 10배 이상 줄었다. 우 대표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진단키트 소재를 전략 물자화하는 조짐이 있어 dNTP를 국산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대표는 "dNTP라는 물질은 반도체 분야 불화수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면서 "매출이 크진 않지만, 소재가 없으면 사업을 못 하는 것처럼 코로나19 유전자증폭 분자진단 방식도 dNTP라는 물질 없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효소 공정을 이용한 시알릴락토스, dNTP 물질을 만드는 건 외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술"이라면서 "핵심 기술로 기존 연구개발은 물론 코로나19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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