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빌딩.21세기 첫 과학의날 행사가 김대중 대통령 등 3부 요인과 김영환 과기부장관 등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화려한 기념식에서는 80여명의 과학자들이 대한민국과학기술자상 등 각종 상을 수상했다. 김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과학기술인 사기 진작책과 첨단 서울과학관 착공 등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념식을 바라본 대덕밸리 과학기술자들은 이러한 비전제시에 그다지 큰 기대감을 표시하지 않는 눈치이다. IMF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몸고생, 마음고생을 겪어온 대덕밸리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언급은 올해 역시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았고, 당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구비 지급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울에서의 푸대접 분위기에 항의라도 하는 듯 이날 오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앞 갑천 둔치에서는 과기노조 주최의 과학기술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내리쬐는 초여름의 뙤약빛 아래서 머리에 빨간 두건을 둘러쓴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위원장 장순식) 노조원과 가족 등 5백여명은 3시간여 동안 분쇄, 총투쟁, 구속자 석방, 박살내자 등 원색적 용어가 수두룩한 구호를 외치며 현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혹은 전자 회로도를 들여다보며 연구활동에 매진해야 할 과학기술인들이 자신들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의 날에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것이다. 대덕밸리는 우리나라 과기예산 4조원 가운데 25%인 1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곳이다. 대한민국 연구기관의 최대 집결지이다. 1만6천여명의 과학기술자가 둥지를 튼 곳이다.한국 과학기술에 관한 한 대덕밸리는 메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덕밸리 푸대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과학자들의 최고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스트 졸업식에 한국과학기술의 수장인 과기부장관이 두해 연속 불참했다. 청와대 등에서 치러진 다른 행사에 참석하느라 카이스트 졸업식은 후순위로 밀렸다.

그런가하면 과학의 날 기념식은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전이 아니라 매번 대통령이 있는 서울에서 치러지고 있다. 과학기술 정책들의 현실성도 의문시되고 있다.중요의사결정이 현장이 아닌 관료들이 모인 과천에서 이뤄지고 있다.과학자들이 애로를 느끼는 부분을 해결해주기 보다는 거꾸로 사기를 꺽는 정책결정이 비일비재하다.최근의 현안인 연구비 지급 동결 문제만 해도 과학자들을 "내가 왜 과학자가 됐나"하고 신세를 한탄하게 만들고 있다.

대덕밸리 출연연의 한 과학자는 "최근 김대통령이 과기위원회 회의에서 대덕이 부르면 오겠다고 알고 있다"며 "현장에서 과학자들의 현실을 밑바닥에서 바라보지 않고 대덕밸리를 이렇게 방치하는 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비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의견주기>>

<대덕넷 구남평기자>flint70@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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