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30⑤]이택민 기계연 박사
공정·장비 만들고 학회·협회·표준 제정 힘써
"출연연은 국가대표, 선도한다는 마음으로"

이택민 박사는 MIT 포닥 후 2003년 5월 기계연에 입사했다. 당시 인쇄기술을 이용한 멤스 소자와 인쇄전자 부품 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이택민 박사는 MIT 포닥 후 2003년 5월 기계연에 입사했다. 당시 인쇄기술을 이용한 멤스 소자와 인쇄전자 부품 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KAIST 학석박사 졸업 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포닥을 끝낸 한 전도유망한 청년은 첫 직장으로 기계연을 택한다. 분야는 인쇄전자. 당시만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술이었다. '예산 따기도 어려운 걸 왜 하느냐'는 주변 시선이 수두룩했다. 국외 학회엔 기껏해야 100여명이 모일까 말까. 한국인은 1~2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인쇄전자 기술을 고집했다. 심지어 기계 가공, 정밀기계 제어로 학위를 딴 '비전공자'가 말이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학회에 거의 유일하게 있던 한국인, 이택민 박사는 인쇄전자 분야 한 획을 그었다. 예컨대 지금의 인쇄전자 기술은 디스플레이, 자동차 배터리, 태양전지, 전자부품 등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현대 산업을 이끄는 기술 중 하나가 인쇄전자 기술인 셈이다. 

이 박사는 국내 인쇄전자 전문가들과 함께 관련 협회와 학회를 만들고 국제표준화기구(IEC)에 인쇄전자 분과를 제안, 발족시켰다. 대한민국 제안으로 만들어진 첫 표준위원회로, 전 세계 과학자들과 함께 인쇄전자 분야 국제표준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특히 그는 장비 분과의 분과장을 지금까지 약 10년째 맡고 있다. 인쇄전자 기술 분야에선 한국이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해있다. 

◆ 황무지에서 선두주자로
 

당시 이택민 박사와 연구를 함께 하던 팀원들. (왼쪽 아래부터 오른쪽으로)이택민 박사, 임규진 책임연구원, 윤소남 박사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최병오 본부장, 김동수 팀장, 김충환 박사, 류병순 연구원. 지금은 이택민 박사만이 현직에 남아있다. [사진=대덕넷DB]
당시 이택민 박사와 연구를 함께 하던 팀원들. (왼쪽 아래부터 오른쪽으로)이택민 박사, 임규진 책임연구원, 윤소남 박사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최병오 본부장, 김동수 팀장, 김충환 박사, 류병순 연구원. 지금은 이택민 박사만이 현직에 남아있다. [사진=대덕넷DB]
롤러에 전자소자가 인쇄돼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이택민 박사 연구팀의 인쇄전자 기술. 롤러에 전자소자가 인쇄돼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2003년 연구원 입사할 땐 연구실 막내였는데. 이젠 실장과 함께 최고참이에요. 아래 후배들이 13명 남짓 있죠. 그땐 32살이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꼰대처럼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살고 있어요(웃음)."

이 박사가 입사하던 당시, 연구실은 이제 막 인쇄전자 기술을 실제 적용해보려 시도 중이었다. 그는 미세하고 정교한 인쇄 패터닝 기술과 공정 메커니즘 연구에 집중했다. 그 결과 롤투롤 인쇄전자장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두루마리 휴지와 같은 롤러에 전자소자를 인쇄하는 기술이다. 이 롤투롤 인쇄 공정·장비가 현재 대부분 산업의 핵심 기술이 됐다.

총 3어억원의 정액기술료, 300건의 국내외 특허 출원, 70여편의 SCI급 논문 등 한눈에 봐도 상당한 숫자가 그의 지난 연구생활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으로 그는 수상경력을 꼽았다. 한국유연인쇄전자학회 학회장상과 한국플렉시블일렉트로닉스산업협회 협회장상이다. 

"이 상들은 각 학회와 협회가 생길 때 처음으로 받은 초대 상들이에요. 발족에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은 거죠. 실제로 정관 수립부터 제가 참여했었어요. 그 정도로 국내는 이 분야에 있어서 황무지였죠. 연구뿐만 아니라 관련 학계와 산업계에 이바지하는 것도 제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이 박사는 인쇄전자가 미래산업에 꼭 필요한 기술이 되리라 확신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플렉시블일렉트로닉스산업협회의 역대 협회장 중엔 김기남 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도 있다. 당시 김 회장도 이 박사와 같이 인쇄전자기술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진다. 이제까지 이 박사가 직간접적으로 한 시험검사만 400건 이상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박사는 3년여 전부터 인쇄전자기술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트윈, 나아가 양자를 접목하는데 도전하고 있다. 이미 공정현장을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개척하길 망설이지 않는 모습은 "MIT의 도전적인 연구문화에 흠뻑 젖었었다"던 20년 전과 다름이 없었다. 

"인쇄전자 분야가 소재, 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는 분야예요. 계속 공부하고 도전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 저랑 잘 맞아요. 지난 20년간 새로운 걸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게 저로선 재밌었죠. AI, 양자를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해보려고요. 앞으로가 더 재밌을 거 같아요. 물론 후배들은 이런 저를 살짝 귀찮아하는 거 같긴 하지만요(웃음)."   

◆ "출연연이라면···국가대표급 사명감으로"
 

이택민 박사는 "출연연 연구자라면 국가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이택민 박사는 "출연연 연구자라면 국가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20년 전 연구생산성을 논했던 이 박사. 그의 고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떻게 하면 연구원도 기업처럼 매일 혁신을 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연구과정을 1년 반, 1년으로 단축하면 아웃풋이 많아질 텐데 왜 안될까 생각해봤어요. 아이디어를 끝까지 못 가져가기 때문이더라고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어요. 용기가 부족해서, 과감하지 못해서,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아서 등이죠. 어떻게든 끌고 가려면 강인한 정신력이 있어야 해요. 여기엔 물적·인적 자원을 빼놓을 수 없죠."

물적 자원의 경우 이 박사는 극복했다. 20년간 인쇄전자 분야의 필요성을 부각하며 다양한 연구과제를 수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적 자원이다. 아이디어를 함께 구현해 줄 연구원은 물론, 과제가 많아지며 생긴 행정 업무를 소화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기 위해 주말, 밤에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웃픈 현실을 이 박사도 피할 수 없었다.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려 해도 여유가 없고, 결국은 이런 상황들이 정신력을 약하게 만들죠. 의지도 꺾이고 심지어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게 하기도 해요. 연구 생산성이 저하되는 가장 큰 문제죠."

이 박사가 20년째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출연연 연구자는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이다. 연구실장 직을 맡았던 시절, 연구원이 10명 안팎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직을 4명이나 채용한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출연연 연구자라면 그 분야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하는 국가대표급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게 당연해요. 무슨무슨 연구실이라고 하면, 그 산업은 우리들이 선도한다는 마음으로 연구해야 하죠. 정부에서 어떠한 분야를 육성한다고 하면 당연스럽게 그 연구실을 찾아와야 할 정도로요. 저도 저희 연구실이 이 분야에선 최고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길도 잘 닦고 후배들의 연구를 보장해줘야죠.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이택민 박사 연구팀의 롤투롤 인쇄전자장비. [사진-=이유진 기자]
이택민 박사 연구팀의 롤투롤 인쇄전자장비. [사진-=이유진 기자]

이택민 박사 연구팀이 디지털트윈 기술로 구현한 롤투롤 인쇄전자장비. [영상=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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