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 애프터 20년 2-①]공공기관 족쇄, 추락한 출연연
공운법·과기법 시행령 개정만 각 25번, 60번 "허공의 메아리"
운영위, 과기계無 "문턱조차 진입 불가···현장 누가 알아주나"

출연연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분류, 지정된지 올해로 17년 째다. 연구현장에서 '자율성' '독립성'과 같은 키워드는 사라진지 오래다. [사진=심성훈 대덕넷 디자이너]
출연연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분류, 지정된지 올해로 17년 째다. 연구현장에서 '자율성' '독립성'과 같은 키워드는 사라진지 오래다. [사진=심성훈 대덕넷 디자이너]
# '모 대학, 연봉 10억원 세계적 석학 유치.' 출연연 소속 책임연구원 A 씨는 오늘도 한숨으로 신문을 덮었다. 부러움과 씁쓸함이 공존했다. 최근 후배 연구자 3명이 타 대학으로 이직한 것도 한 몫했다. 존경하던 선배마저 대학으로 발을 옮겼다. 인구소멸과 맞물려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출연연만 인재 유치 경쟁에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연봉 10억원은 물론, TO 자체도 나지 않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나. 정년 축소에 임금피크제까지 적용되는 곳이 여기다. "내 자식이 커서 출연연에 간다 하면 말릴 거 같다"며 씁쓸히 웃는다. 오늘도 저녁 6시가 되자 꺼진 연구실 불을 다시 킨다.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 이직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과제 하나에 책임급 연구원 5명, 선임급 연구원 1명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일을 못하는 이들, 경험이 없는 이들, 일을 안 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뒤엉켜 3인 4각으로 걷는다. 뒤뚱뒤뚱,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마침내 조직은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수식어를 얻는다. 나름의 사명감으로 남아있던 선배마저 '오퍼없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낙인된다.

연구현장의 실체다. 이 모든 게 출연연이 공공기관으로 분류되며 벌어지는 상황이다.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임피제, TO·총액인건비·경상비 제한 등에 갇힌 지 올해로 17년째다.  연구현장의 경쟁력은 사실상 바닥을 쳤다는 게 중론이다. 

◆ '아무도 모르는' 외침
 

공공기관과 출연연의 차이점. 현재 출연연은 강원랜드, 국립대병원 등 수익사업을 하는 곳들과 동일하게 공공기관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자료=이석훈 연총 명예회장 제공]
공공기관과 출연연의 차이점. 현재 출연연은 강원랜드, 국립대병원 등 수익사업을 하는 곳들과 동일하게 공공기관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자료=이석훈 연총 명예회장 제공]
2007년 경제·인문, 과학기술 분야를 포함한 모든 출연연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분류, 지정됐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기관은 전력·에너지 공사, 철도·공항 공사 등 수익형 공기업과 국민연금·근로복지공단 등의 행정형 기관이다. 강원랜드, 국립대병원 등 수익사업을 하는 곳도 포함된다. 공익성 속성이 큰 출연연을 시장성 중심인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시하겠단 의미다.

17년이 지났다. 출연연의 기관 운영, 예산집행 등은 이들과 같이 획일적으로 관리됐다. 관리주체는 기획재정부. 인건비, TO 등 모두 기재부의 심의, 결정을 거쳐야 한다. 국가 유일 연구기관의 상위부처가 사실상 과기부가 아닌 기재부가 된 것이다. 최근 실시한 본지 설문조사에서 "과학의 과자도 모르는 기재부가 예산을 휘두르고 있음" 등의 지적이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변화도 있었다. 2018년 출연연, 4대 과학기술원 등 75개 기관이 연구개발목적 기관(공운법 제5조 5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껍데기만 있을 뿐, 실제 지침인 시행령은 개정되지 않았다. 이후 블라인드 채용과 고객만족도 조사가 폐지되긴 했지만, 과기계가 아닌 '대통령 한마디'에 완화된 것이란 의견도 분분하다. 

그간 국회, 연구현장 등에선 공공기관 지정 제외 또는 별도 분류하는 공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속 발의했다. 18대 국회부터 21대까지 관련 법률안만 11개에 달한다. 하지만 '기타공공기관 내에 연구목적기관 분류'를 제외한 나머지 안건은 대부분 임기만료 폐기 처분됐다. 

이와 달리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의하면 공운법은 개정 후 가장 최근(2022.8.4)까지 22번 (일부) 개정됐다. 이에 따른 공운법 시행령은 지난 1월 1일까지 개정 횟수만 25번이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선 실효성을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연구자 B 씨는 이를 두고 "연구현장을 모르는 공무원들이 덧대는 누더기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애초 연구개발목적기관에 직할기관, 재단 등도 뭉텅이로 포함한 게 생각이 없다는 증거"라며 "이렇게 되니 지금 와서 이런 재단들까지 공공기관 해제해줘야 하느냐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과기법 60번 개정됐지만···"공운법 우선 적용"

지난 십수년간 과기계는 지속해서 목소리를 냈다. 매 정치계 후보들도 '과기계 자율성' 키워드와 함께 해당 사안의 문제점을 짚었으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PBS와 함께 공운법을 손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현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지난 1월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이 공공기관 지정 해제되며 과기계 기대도 한껏 올라갔지만, 별다른 여파는 없었던 게 사실이다. 

과학기술 발전을 목적으로 재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이 있다. 이에 따른 시행령은 지난해 12월까지 60번이나 개정됐다. 

하지만 무용지물이다. 공운법 제2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대하여 다른 법률에 이 법과 다른 규정이 있을 경우 이 법에서 그 법률을 따르도록 한 때를 제외하고는 이 법(공운법)을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과기기본법에 나와있는 '과학기술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받도록 하고' '도전적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촉진·지원하여야 하고' '연구기관은 연구와 경영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조항은 모두 허공의 메아리인 격이다. 

문제는 또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사항 심의, 의결은 모두 기재부 장관 소속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진행한다. 이 위원회에 연구현장 관련자는 전무하다.

공운법 제9조(운영위원회의 구성)에 따르면 위원회는 ①국무총리실의 차관급 공무원으로서 국무조정실장이 지명하는 공무원 1인 ②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관계 행정기관의 차관·차장 또는 이에 상당하는 공무원 ③제2호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주무기관의 차관·차장 또는 이에 상당하는 공무원 ④공공기관의 운영과 경영관리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중립적인 사람으로서 법조계·경제계·언론계·학계 및 노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재부 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위촉하는 11인 이내의 사람으로 구성된다.

공운법 시행령 제11조엔 위 ④번에 해당하는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대학 또는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부교수 또는 이에 상당하는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판·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등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구기관 경력직'으론 대부분 대학 교수들이 앉아있는 상황이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가 관련 법률에 반영될 확률이 극히 낮은 이유다. 

한 과기계 관계자는 "최소 운영위에 과기부나 산자부 차관급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나마 운영위에 있는 연구기관 관련자도 대학교수들 뿐이다. 문턱조차 진입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현장의 애로사항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 업사 애프터 20년 다음 편은 공운법下 '정책기조에 휘둘리는 과기계'가 보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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