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죽음을 앞둔 의사가 써내려간 삶의 기록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나는 [최병관의 아·사·과] 중 '어떻게 죽을 것인가'편에서 의사가 쓴 책을 과학책으로 분류했다. 이번에도 의사가 쓴 책을 골랐다. 의사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가 바로 그것이다.

폴 칼라니티는 1977년생으로 스탠퍼드대학에서 영문학, 생물학을 공부하고 영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하고 예일대 의대 대학원에 진학해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졸업후 모교인 스탠퍼드대학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6년 일했다. 그리고 폐암 발병후 죽기 전 이 책을 썼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 칼라니티의 비교적 짧은 36년을 담은 기록이다. 36살에 폐암에 걸린 확률은 0.0012%라고 하니 안타깝다. 그는 CT 촬영 결과가 나오고 2년 뒤 숨을 거뒀다. 이 책은 발병 사실을 알고 쓰기 시작했다. 책은 1부가 의사로서의 소명을 적었고, 2부에서는 처지가 바뀐 환자 폴칼라니티의 고백이다. 다만 에필로그는 그의 아내, 루시가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왜 폴 칼라니티는 죽음을 앞두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까? 그 이유는 책 속에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에는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의사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담겨 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확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p 193)

폴 칼라니티는 전도유망한 신경외과 의사이다. 두개골을 드릴로 열며 주 100시간 넘게 일하는 '혹독한' 수련의 생활을 이겨냈다. 재능에 품성과 노력까지 곁들여 그는 모교인 스탠퍼드대 교수직까지 제안받았다. 위스콘신 대학에서는 신경과학연구소를 이끌어달라며 수백만 달러 예산과 함께 의사인 아내를 위한 일자리까지 추가로 보장 받았다. 하지만 그런 호의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물거품이 돼버렸다. 너무나 잘 나가던 그는 시한부 삶을 살게 됐기 때문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다 보면 눈물겹다. 가슴이 저리다. 아주 슬픈 노래를 듣는 듯하다. 폴 칼라니티의 심정은 어떨까? 

그는 가슴 뒤의 통증이 느껴졌고, 79㎏이던 체중이 66㎏으로 줄어들고,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었다. 남아 있는 생의 시간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밀려온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사뮈엘 베케트의 글,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그는 수술실로 돌아간다. 6개월간 운동 요법으로 체력을 보충한 다음, 다시 메스를 들고 환자의 척추에서 퇴행성 디스크를 능숙하게 제거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 움큼의 약을 먹고, 쓰러져 잠이 든다. 

폴 칼라니티는 문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몰라도 발병 후 대학 시절에 읽었던 문학 작품을 다시 꺼내든다. 솔제니친의 '암병동', B S 존슨의 '운없는 사람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네이글의 '정신과 우주', 울프, 카프카, 몽테뉴, 프로스트 등을 다시 찾아 읽었다. 특히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무엇이든 찾아읽는다.

이와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사후에 출간된 '숨결이 바람 될 때'를 한 문장씩 써내려갔다.

폴 칼라니티의 글에서는 곳곳에서 문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그가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인 몇 개의 문장을 음미하면서 그의 마음을 읽어보자.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서 한때 문학도였던 그의 글에 탐닉했다.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p 66)

나는 신으로부터 기쁨에 넘치는 새 약속을 받고 산꼭대기에서 돌아온 예언자가 된 기분이었다.(p 88)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p 101)

커다른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p 120)

폴 칼라니티는 딸 케이디가 태어나고 8개월 뒤, 소생치료를 거부하고 숨을 거둔다. 사력을 다해 써내려갔지만 미처 완성되지 못한 에필로그는 아내 루시가 이어 받아 마무리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부부가 함께 완성한 합작품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폴 칼라니티와 아내 루시가 색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죽음이 임박했지만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마도 부부에게 아이는 사랑하기 때문에 낳아 기르고 싶은 사랑의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후에 홀로 남아 아이를 키우게 될 아내 루시가 인공수정에 대한 최종 결정을 했다. 폴 칼라니티가 "아기는 멋진 선물 아니겠어?"라는 말에 루시가 동의한 셈이다. 이들 부부의 특별한 선택, 비범한 선택은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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