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구자홍 VINNO 대표, 클래식·스트링·보테가 운영
장애인들에 악기제작 전수 "책임감·자립심 키워주고 싶어"
왼팔 장애 딛고 음악가의 길 "나로 인해 인생 전환점 맞길"

대전 엑스포 다리 건너 보이는 골프존 조이마루 건물. 2층에 들어서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수많은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 등 현악기가 입구를 밝힌다. 은은한 커피 향도 빼놓을 수 없다. 악기 제작·수리와 교육, 연주회 기획까지 맡고 있는 브랜드 'VINNO(비노, Violin+Innovation)'다.

비노는 3가지 브랜드로 분류된다. 비노 클래식(VINNO CLASSIC)과 보테가 비노(BOTTEGA VINNO), 비노 스트링(VINNO STRING)이다. 비노 클래식과 스트링은 둘 다 악기 제작·수리를 담당하지만, 비노 클래식은 2003년 설립한 온전히 구 대표와 그의 제자들만의 브랜드다. 연주회·음악회 기획도 한다. 비노를 처음 시작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보테가 비노는 작년 8월에 개업한 카페다. 직접 개발한 디저트와 음료로 구성돼 있다.
 

골프존 조이마루 건물 2층에 있는 비노 클래식과 스트링. 악기 제작·수리를 담당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빼곡하다. [사진=VINNO 제공]
골프존 조이마루 건물 2층에 있는 비노 클래식과 스트링. 악기 제작·수리를 담당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빼곡하다. [사진=VINNO 제공]
비노 스트링은 2018년도부터 시작한 법인 사업장이다. 장인들에게 악기 제작 기술을 교육한다. 최근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장애인들이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자립심을 가졌으면 하는 이유에서다. 책임감을 주기 위해 수익의 일정 부분도 지급하고 있다. 

구자홍 VINNO 대표는 "장애인분들이 국가 또는 개인이 도와줘서가 아닌, 스스로 자립하고 일어설 수 있게끔 누군가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 '자립심과 용기 주기 위해' VINNO STRING
 

마에스트로인 구자홍 VINNO 대표. [사진=VINNO 제공]
마에스트로인 구자홍 VINNO 대표. [사진=VINNO 제공]
비노 스트링 내부에 있는 장애인 전용 작업대.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게끔 책상을 높이 설계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비노 스트링 내부에 있는 장애인 전용 작업대.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게끔 책상을 높이 설계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배려, 기부라는 명분 하에 익숙함으로 바뀌는 게 과연 이 사람들한테 좋은 의미일까 고민했어요. 내가 가진 게 악기 만드는 기술이니, 기술 교육으로 이분들을 일으켜 세워주자 생각했죠. 일차는 기본적인 수당이었어요.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온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죠."

구 대표가 밝힌 비노 스트링 설립 이유다. 교육비용은 백 프로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오로지 장애인들이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잠시 교육을 멈춘 상황이다. 구 대표는 "추후엔 보테가 비노도 장애인 분들이 운영할 수 있게끔 음료 제조법을 가르칠 예정"이라며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돼, 장애인분들을 더 고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진 않지만,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라면서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게 몸이 불편하고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단점은 아니라고 본다. 이같은 생각을 장애인분들한테 심어줘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 왼팔 장애를 딛다
 

구자홍 VINNO 대표. [사진=VINNO 제공]
구 대표가 지닌 장애인들에 대한 애정은 그의 유년 시절에서 비롯됐다. 그가 5살이 되던 해, 사고로 왼팔에 3도 화상을 입어 왼손이 오그라들고 손가락 사이 힘줄이 엉켰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한 차례씩 수술을 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장애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곡을 하던 둘째 누나의 심부름으로 레슨실을 가게 되고 비올라를 처음 접하게 된다. 구 대표는 "비올라 소리를 들었을 때 나 자신의 심적인 쓸쓸함과 상처가 소리에 녹아있는 것 같았다"며 "바이올린처럼 돋보이지도, 첼로처럼 무겁지도 않은 비올라의 매력에 그때 빠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기력했던 나의 관심사를 누님이 의도적으로 돌려준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그렇게 그는 비올라 전공으로 대전 목원대 관현악과를 진학했다. 왼손은 현악기 연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활과 음 떨림을 잡고 음과 음 사이 포지션 이동도 해야 한다. 때문에 구 대표는 남들보다 두 세배씩 연습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도 장애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라면서 "여름에도 긴팔을 입어야 했다. 힘들고 어렵고 외로웠다. 청소년기에 끝난 줄 알았던 상처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커졌다"라고 말했다.

결국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음악을 관두기로 결심한 그는 이별 여행으로 현악기의 본고장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를 가게 된다. 거기서 구 대표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손가락 4개 만으로 악기를 만드는 장인(현재 구 대표의 선생)을 만난 이후다. 구 대표는 선생으로부터 삶의 이유와 함께 악기 제작 권유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그는 이탈리아서 마에스트로(Maestro, 장인 또는 거장에 대한 칭호) 자격을 취득한 뒤 2003년 입국, 비노 클래식을 차리게 된다.

구 대표는 "장애인 분들은 스스로 장애인 걸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내가 그랬다. 내 과거가 있었기에 이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그는 "내가 선생님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듯이 장애인 분들도 나를 밟고 한 단계 한 단계 본인들이 목표했던 곳으로 갔으면 한다. 디딤돌이 돼주고 싶다"라며 "단어 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함께 더불어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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