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故 최형섭 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개최
"영웅의 탄생? 과학자 스스로 변해야"
"과거와 달라진 R&D판···최 박사 철학 바탕으로 진정한 자율성 구현 시급"

최형섭 박사의 탄신 100년을 맞아 KIST가 공적과 정신을 공유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사진=대덕넷 DB]
최형섭 박사의 탄신 100년을 맞아 KIST가 공적과 정신을 공유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사진=대덕넷 DB]

"최형섭 박사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기의 이익이 아닌 국가 전체를 위한 에코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어떤가. 과학기술계 사정은 나아졌지만 에코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없다. 과학기술계가 나서야 한다. 과학기술계 스스로 연구하면서 프라이드를 가질 방안, 에코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한국 과학기술계의 아버지이자 대부'라는 최형섭 박사 수식어는 어느 것 하나 과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최형섭 박사 모델을 그대로 재생산하는게 옳을까. 그가 가진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 경험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문만용 전북대 교수)

1920년 11월 2일 대한민국의 과학자이자 과학기술계 대부 최형섭 박사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지 딱 100년이 되는 날, 후배들이 모여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최 박사 공적과 그 정신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2일 KIST 본원 존슨강당에서다.

과학기술계는 뉴턴 등 업적을 남긴 과학자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왔다. 일본은 원자핵의 인공 파괴에 쓰는 사이클로트론을 완성한 니시나 요시오 박사 기념 심포지엄을 2박 3일간 개최한 바 있다. 

후배 과학자들은 과학기술계 백년대계를 위해 오늘날 한국 과학기술의 기틀을 세운 故 최형섭 박사의 철학이 이어져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최 박사는 연구자들에게는 부귀영화나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반성하라면서도, 정부에는 연구자 자율성을 보장하는 연구문화 등을 강조한 바 있다.

◆ 영웅의 탄생 기다린다? 과학자 스스로 변해야

'최형섭 박사의 지도력과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발제한 염재호 전 총장.[사진=김지영 기자]
'최형섭 박사의 지도력과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발제한 염재호 전 총장.[사진=김지영 기자]

'최형섭 박사의 지도력과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발제한 염재호 전 총장은 "최 장관이 살아계신다면 과기계의 관료화부터 없앴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관계기관 위원으로 활동하며 예산분배에도 관여한 바 있는 그는 "과학기술 태동기 리더의 역할로 우리나라 R&D투자가 늘었지만 정말 제대로 잘 쓰이는지 의문"이라며 "국회의원은 비판만 하고 정부도 서로 예산확보에만 중심을 둘 뿐이다. 앞으로 10~20년을 내다본 에코시스템에 대한 리더들의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그는 연구 부정을 잡겠다고 비효율적 행정 낭비를 질타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 서울대에서 교수들이 약 3000만원의 연구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해 국감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서울대 연구비 규모는 3000억. 0.001%의 연구 부정으로 영수증만 검사하는 직원 15명을 뽑았고 연구해야 할 학생들은 영수증 풀 붙이는데 시간을 낭비한다. 

이 외에도 순수자연과학을 전공하겠다며 들어오는 학생은 한 학교당 200명이지만 이들을 키우기 위한 투자는 거의 없다. 기초과학예산은 늘었지만 대학의 기초과학연구 지원은 많이 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기술계가 대형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연구비 주는 정치인을 뽑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예산은 늘었지만, 관료화된 행정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최 박사가 살아계셨다면 이것부터 해결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 박사 같은 사람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과학기술계 스스로 변화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계가 사기진작을 위해 나서야 한다. 간섭하지 말라고 대선 때 이야기하고 연구비 확대나 정규직화 강조를 넘어 연구하면서 프라이드를 가질 방안을 피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과학기술정책 패러다임은 많이 바뀌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가져왔던 국가혁신체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체제를 이루기위해 변혁적인 리더가 나와야 한다. 100년 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과학기술계를 바꿀 또 다른 영웅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과기계, 최 박사 철학 바탕으로 진정한 자율성 구현해야

최형섭 박사는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원자력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연연구소장,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 대덕연구단지건설 등을 추진했고 은퇴 후에도 개발도상국에 한국모델을 전수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사진=빌표자료]
최형섭 박사는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원자력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연연구소장,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 대덕연구단지건설 등을 추진했고 은퇴 후에도 개발도상국에 한국모델을 전수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사진=빌표자료]

한국의 근현대 과학기술 전문가로 최형섭 장관을 연구한 문만용 전북대 교수는 최 박사를 금속공학 공학자이자 연구관리자며 과학행정가면서도 과학정책가라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같은 곳을 세계적인 나라로 만든 것은 사회적 요구를 잘 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양한 요구를 했고 실현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며 "과학기술과 더불어 살아온 최 박사의 역할이 잘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최 박사는 와세다 대학에서 채광야금과를 졸업 후 노트르담 대학에서 금속의 소성변형을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으나 실제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미네소타대학에서 부유선광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연구보다 당시 한국 상황에 맞게 필요한 연구를 했다는 것이 최 박사의 철칙"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최 박사는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원자력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연연구소장,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 대덕연구단지건설 등을 추진했고 은퇴 후에도 개발도상국에 한국모델을 전수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문 교수는 "한국은 초기 성공모델을 만들어 그게 안정되면 유사한 여러 기관을 만들어 성장해왔다. 그것이 압축성장의 기반이 됐고 그 출발점이 최 박사의 KIST 모델"이라며 "과학기술과 더불어 산 최형섭 박사의 역할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2의 최형섭 박사 모델을 재생산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과학기술계와 젊은 과학도들이 최형섭 박사를 롤모델로 삼는 것은 필요하나 시대가 많이 변한 만큼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철학을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그는 "최 박사는 자율성을 강조했다. 물론 그 자율성은 KIST라는 특별한 존재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신뢰적 관계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박정희 대통령 정권이 끝나니 무너졌다"면서 "우리 예산은 과거와 달리 양적으로 늘어나고 과학기술 수준도 향상됐다. 과학기술 명암을 이해하고 지금 시대에 맞는 진정한 자율성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히라사와 료 도쿄대 명예교수가 영상을 통해 마지막 발제를 했다. 그는 최형섭 박사의 일본인 친구 무카이보 다카시 박사(전 도쿄대 총장)의 후배로 매년 최형섭 박사의 기일 그의 묘소를 찾아 참배한다. 

그는 'KIST 육성법'과 김대중 정권 과기정책추진 체제 틀 마련 등을 언급하면서 "최 박사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매년 묘소를 찾아뵙는다. 선생님의 사람으로서 크기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 배우고, 일본에서 과기정책을 사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는지 참다운 것을 추구했는지 선생님들 묘 앞에서 보고하면서 큰 힘을 얻어왔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어진 토론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이어진 토론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 김은영 전 KIST 원장은 "KIST 초대소장으로 최 박사를 모신 것을 KIST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굉장한 긍지"라며 "퇴계 이황이 남긴 여러 자료를 기반으로 토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최 박사가 남긴 저서를 통해 매년 그의 철학을 파고드는 심포지엄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최영락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은 "개발도상국 당시에 펼친 정책들을 보면 탁월한 혜안에 지금도 감탄한다"며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하는 훌륭한 연구자면서 동시에 50년 전 우리나라 과기정책 기본골격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한국과기정책 아버지"라고 말했다.

이석봉 대덕넷 대표는 "최 박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에서 뭘 하고 살아야할지 시대정신을 화두로 가지셨던 분"이라며 "하지만 요즘 과학자들은 최 박사를 모른다. 그가 남긴 책을 비롯해 오늘날을 만든 과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에만 관심 있는 과학자들의 인식을 깨쳐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구종민 KIST 박사는 "출연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서 정부는 대학연구자보다 연구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학생들의 노동자로서의 인식 등 출연연 연구자들은 매년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연구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나쁜 제도들을 하루빨리 개선하는 등 포스트 최형섭 시대에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중심이 되도록 많은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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