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경환 POSTECH 화학과 교수, 스톡홀름대와 공동 연구
물 연구 근본 바꾸는 가설, 실험으로 증명···사이언스지 논문 게재
"가벼운 물, 무거운 물 따로 존재" 학문적 논쟁·비난, 연구로 돌파

김경환 POSTECH(포항공과대) 화학과 교수가 영하 70도에서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로 나뉜다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규명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인한 기자]
김경환 POSTECH(포항공과대) 화학과 교수가 영하 70도에서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로 나뉜다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규명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인한 기자]
물은 생명을 불어넣는 근원이다. 인간은 보름 넘게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이 달린다. 물은 계속 마실 때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은 며칠도 살 수 없다. 우리 몸은 66%가 물로 이뤄져 있고 이 중 10% 이상만 잃어도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지구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겨울철 영하의 온도에서 강 표면이 얼어도 그 밑에선 물이 흘러 생태계가 유지된다. 국내외 연구진이 생명의 기원을 물에서 찾는 이유다.

물은 중요성만큼이나 성질도 독특하다. 4℃에서 가장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액체와는 다른 성질들을 지녀 생명 현상에 기반이 되고 있다. 다만, 물의 특성 연구는 수십 년 동안 가설 제시와 실험적 증명이 지속됐지만 가설을 입증할 실험 결과가 부족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연구진이 물 연구의 근본을 흔드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해 학계에 조명을 받고 있다.

2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 호에 국내 연구진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영하 70℃에서 물이 가벼운 물(LDL·저밀도 액체 상태)과 무거운 물(HDL·고밀도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김경환 POSTECH(포항공과대) 화학과 교수는 앤더스 닐슨(Anders Nilsson) 스웨덴 스톡홀름대 교수와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고압 과냉각 물에서의 액체-액체 전이(LLT) 실험적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영하 70℃ 조건에서 얼지 않는 물을 만들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물의 구조를 들여다본 결과, 가벼운 물(LDL)과 무거운 물(HDL)이 상 전이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액체상태가 2가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진은 물의 변칙적인 특성을 '액체-액체 임계점'(LLCP) 가설을 통해 증명했다. 영하의 극저온 온도에선 물이 가벼운 물(LDL)과 무거운 물(HDL)로 나뉜다는 가설이다. 이를 증명하고자 연구진은 영하 70℃(205K, 절대온도)에서 얼지 않는 물을 만들었고, X선 레이저를 쏘아 펨토초(10-15) 단위에서 구조를 분석했다. 2017년에는 영하 43℃ 조건에서 이를 관측한 바 있다. 
 

물이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 [사진=POSTECH 제공]
◆ 관점의 전환

가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과정은 첩첩산중이었다. 나노초 단위에서 이뤄지는 측정도 난관이었지만, 영하 70℃에서 얼지 않는 물을 구현하는 어려움은 더 했다. 2017년 영하 43℃에서 이뤄진 실험은 물을 계속해서 얼리는 과정을 택했다. 그러나 극저온 온도로 낮아질수록 물을 액체 상태로 구현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기존 관점을 통째로 바꿨다. 물을 얼리는 방식이 아닌, 이미 얼려진 얼음 결정체를 순간 가열해 물을 액체로 만들어 구조를 보기로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얼음 형태를 가열해 물을 들여다본 결과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나노초 시간대에서 이뤄지는 연구 과정에서 4세대 방사광 가속기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연구진은 포항 4세대 가속기에서 극도로 짧은 펄스(100 펨토초 이하) X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물이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물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 학문적 논쟁 넘어 비난 겪어도 '뚝심 연구'

김 교수는 "학회에서 발표하는데 누군가 '이 연구를 믿어선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학술적으로 심한 논쟁과 다툼 끝에 만든 결과라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그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연구 속 '발견'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른 이론을 믿고 계신 분들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연구 주제 자체가 재밌었다"며 "물 연구를 선도하는 분과 국제 공동 연구를 했고,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통해 새로운 실험적 결과를 증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은 생명의 근원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며 "실험에서 물의 특성을 고려할 텐데, 물의 특성이 달라진다면 보다 정확한 연구들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는 '물 연구의 대가' 앤더스 닐슨 스톡홀름대 교수가 함께했다. 뿐만 아니라 POSTECH 화학과 학부생 2명(유선주, 정상민)도 참여했다. 사이언스 논문에 참여 저자로 이름을 올린 유선주 POSTECH 화학과 석사생은 "과학자라는 꿈을 꾸면서 교과서에 남을 만한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며 "이런 의미 있는 연구에 함께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이번 연구 논문은 '고압 과냉각 물에서의 액체-액체 전이의 실험적 관측'(Experimental observation of the liquid-liquid transition in bulk supercooled water under pressure)이다.
 

이번 연구는 스웨덴 스톡홀름대와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규명됐다. 우측 하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환 POSTECH 화학과 교수, 유선주 석사생, 정상민 학부생, 양철희 박사. [사진=김인한 기자]
이번 연구는 스웨덴 스톡홀름대와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규명됐다. 우측 하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환 POSTECH 화학과 교수, 유선주 석사생, 정상민 학부생, 양철희 박사. [사진=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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