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고 종료

고등학교 2학년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3이 되니 공부 좀 해야겠다는 학생들이 부쩍 늘 때. 토요일 오후에도 도서관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꽤 비장한 분위기가 흐를 정도. 그날도 도서관에서 오전을 뿌듯하게 보내고, 친구들과 점심을 하러 학교 앞 중국집에 둘러앉았다. 모두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한 것 같다. 힘 좋게 비비고 먹기 시작하는데 한 친구가 눈짓을 한다. 옆 테이블에 앉은 어른들이 탕수육 포함,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켜 놓고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왜?"

"우린 언제 저런 것 먹어 보냐?”"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에 갔더니 동기 친구가 반긴다.

"짜장면집 기억나나?"

"------?"

그때 내가 말했단다. "옆 사람 음식 좋아 보여 흘끔거리면 우리 짜장면 맛도 날아간다" 고. 그래서 우린 열심히 곱빼기 조용히 먹었다고. 그 후로 이 말이 가끔 생각났단다.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부담스러운 말까지.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내가 유명 대학 교수 된 것을 갸우뚱했어도 자기는 당연하다 생각했단다. 어린 나이에 생각이 깊었다 한다. 고맙고 즐거웠다. 옆에 집사람이 있는데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욱 고마웠다. 역시 대기업 부회장까지 하여서인지 공치사를 품위 속에 다정한 추억으로 넣을 줄 안다.

살다 보면 탕수육 먹는 사람들이 부러울 일이 많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 어떤 분야가 좋을까? 출세, 좋은 수입, 유명해질 수 있는 지름길을 힐끗힐끗 본다. 짜장면을 제대로 먹어야 탕수육 먹을 기회가 생긴다. 힘이 없으면 연습을 할 수 없다. 짬짜면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집중을 잃으면 짜장면도 짬뽕도 없다. 좋은 것 두 개를 합치면 둘이 싸움박질 할 수밖에 없다. 혼란스럽고 괴롭다. 진로 상담을 할 때 이 이야기를 잘 써먹는다. 대학원생들이 논문 주제 정할 때도 잘 통하는 이야기이다. "짜장면에 집중하라!" 우선 앞에 있는 것부터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게 된 것도 짜장면과 관련이 있다면 너무 지나친가? 율리우스 2세 교황이 미켈란젤로를 불러 천정화 이야기를 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피에타, 다비드 조각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미켈란젤로는 누군가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한다고 의심하였다는 설이 있다. 로마 베드로 성당 입구에 있는 피에타, 피렌체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있는 다비드 같은 불후의 대작을 보면 이 의심이 이상하지 않다. (피렌체 광장에 있는 다비드도 못지않다. 복제품이지만.) 모두 엄청난 집중과 완성을 향해 내뿜은 가쁜 숨결의 결정체이다. 대리석이 천재의 축복으로 생명이 되었다. 이런 작품은 가까운 곳에서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완벽하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정화. [사진=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정화. [사진=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좋은 논문이 요약문과 결론이 근사한 것은 물론 도표, 데이터, 그림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연구 보고서, 논문, 저술 등도 저자의 축복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한다. 이런 논문을 읽을 때는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예술작품과 다름이 없다. 천장화를 그릴 수밖에 없게 된 미켈란젤로는 거의 3년 동안 시스틴 성당 생활을 한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다. 몰입! 짬짜면 아니다! 그것만 했다.

구약성서가 천정화의 밑그림. 미켈란젤로는 구약성서를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수없이 드로잉을 하였을 것이다. 남긴 드로잉은 고작 600점밖에 없지만 다행히 천지창조의 중심이 되는 창조주의 스케치가 남아 있어 그의 고뇌를 볼 수 있다. 

다빈치가 거의 6000점의 드로잉을 남긴 것과 비교된다. 왜일까? 그의 괴팍한 성격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완성으로 가는 고뇌의 흔적이 천재의 자존심을 건드리나? 모를 일이다. 아무튼 천정화는 그 자체로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우선 천장을 9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다시 34개로 나눈 다음 약 300명의 성서 속 인물을 등장시킨다.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다. 한가운데 있는 천지창조 그림의 두 손가락이 마주 닿는 표현은 아찔하다. 번개가 때린다. ET가 훔쳐서 성공했다! 돈도 벌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ET. [삽화=진강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ET. [삽화=진강일]
로마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간 천장화는 볼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처음 보았을 때가 80년대 중반이었던가? 프레스코화의 밑바탕이 되는 석회가 오랫동안 쌓인 먼지에 고생하고 있었다. 색은 많이 어두웠다. 당시에는 그것이 원화의 색인 줄 알고 보았고, 때 묻은 색에서 엄숙하고 중후한 느낌을 느끼고 감탄하였다.  

일본 한 방송사에서 지원한 프로그램으로 근 10여년 이 먼지들이 제거되었다. 세수한 그림의 첫 느낌은 좋지 않았다. 너무 색이 가볍게 복원되었다 생각했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어진다.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의 시대에 뉴톤역학을 강의 하면서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오래된 이론인데 깊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표현한 거대한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는 짜장면 먹을 때 탕수육 보지 않는 정도의 철학은 기본이다. 시스틴 성당 천장화 그리면서 투정을 부리고 당시 교황, 추기경과 좀 어렵게 지냈지만 그의 붓은 몰입의 경지 속에서 날아다녔다. 목 디스크나 허리 요추의 통증은 문제가 아니었다. 추기경의 잔소리는 그저 소음이었다. 

천정화 다음에 그린 천지창조의 한구석, 지옥에 그를 그려 넣는 것으로 화가다운 복수를 하였다. 그 자신 껍데기만 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막대기에 달려 있게 그린 것은 참회의 표현인가? 볼 때마다 미켈란젤로가 위대해 보이고 내 가슴은 운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짜장면과 비교한 것은 좀 억지이긴 하다.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위험한 생각일까? 겁날 것 없다. 그러나 짜장면과 미켈란젤로는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 화가가 본업이 아니었더라도 주어지면 몰입하고 최선을 다한 미켈란젤로가 멋지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배를 채워준 메이드인코리아 짜장면 또한 오랜 세월 한 가지 마음으로 몰입하고 최선을 다했다. 과한 비교가 신념으로 둔갑한다.

한동안 바이오 분야가 주목을 받더니 요새는 AI가 대세란다. 거의 모든 연구 분야가 AI 무늬를 가진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꿈이다. 도구를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 인류는 무엇인가 사람을 도와주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기계가 생각하도록 그래서 더욱 편리하도록 하고 싶어 한다. 우려와 기대가 섞여 있다. 편리는 기대를 하게 하고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것은 우려를 부른다. 

너도나도 AI를 내세우고 연구비를 받아간다. 자신이 먹던 짜장면은 팽개치고 모두 AI 밥상으로 달려간다. 누군가 앞에 가짜 토끼를 달리게 하니 사냥개처럼 달린다. 가짜인지 아닌지는 나중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양계장 대학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는 공범이다. 실험실을 출근하듯이 드나드는 아이들, 연구원들이 생각난다. 실험실이 직장이다. 그래서 천장화도 천지창조도 외국에 가서 보아야 하나 보다!

단골로 다니는 중국집이 있다. 가족들이 한다. 사위, 딸까지 함께 일한다. 어느 날 가니 딸이 카운터에 있다.

"오늘은 저희 남편이 주방 일을 하니 짜장면 꼭 드셔보세요!"

"아니 왜 하필 짜장면? 좀 좋은 것 먹으려 했는데?"

"아직 모르시네요! 주방장 솜씨를 보시려면 짜장면을 드셔야해요!"

국민 음식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짜장면이 한국식 중국 요리의 기본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재료는 돼지고기, 파, 양파, 양배추, 전분, 면 등이고 양념으로는 식용유, 춘장, 간장, 설탕이란다. 결국 면과 돼지고기, 춘장이 기본이고 나머지는 양념인 셈이다. 배합과 요리 과정이 문제인데 요리사의 내공 정도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는 이야기이다. 

맛이라는 것은 참 오묘해서 과학적 측정이 불가능하다.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와 양념만을 가지고 최상의 맛을 내는 것이라 요리사 수준이 거침없이 나타난다는 이야기. 

짜장면 속에서 미켈란젤로가 보이는가? 다비드가 태어나는 과정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최상의 맛을 내는 것, 토스카나 카라라에서 가지고 온 대리석 중,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겼더니 다비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연결되나? 어쩌면 이런 순환의 상상이 통찰의 세계로 가는 바퀴인지도 모른다.

담뱃갑 은박지는 이중섭의 짜장면이다. 작은 은박지에 철심 같은 뾰족한 것으로 그림을 그린 것을 은지화라 한다. 제주도 서귀포는 은지화의 요람이다. 작은 그림, 은지화, 미국 MoMA(뉴욕현대미술관)에 당당히 전시되어 있다. 상감청자처럼 색을 입힌다. 가는 철사나 펜으로 자국을 내고 그곳에 물감을 입힌다. 평면의 그림이 엄청난 변환을 한다. 상상의 날개를 달고 작은 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2016년 6월 서울 시립 미술관은 '백년의 신화'로 이중섭 100살 생일 잔치를 하였다. 찌들게 가난하여 아이들과 부인을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은지화를 통하여 매일 가족을 만났다. 그래서 '두 아이'와 '부부'는 특별히 가슴을 저민다. 

은박지는 주변에 지천이다. 그것을 하찮게 보는 우리가 헛것이다. 은지화는 꿈을 꾸게 한다. 서귀포의 바다가 보인다. 조개를 잡고 게를 쫓는 아이들이 보인다. 무너져 가는 초가집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한때는 동경 문화학원의 미남 학생, 동경에서 100세 나이에 이중섭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야마모도 미사코(이남덕)가 보인다. 은지화는 추상이다. 생각의 끝이 없다.
 

이중섭의 '부부', 40  × 28cm. [사진=이중섭미술관]
이중섭의 '부부'. [사진=이중섭미술관]
이중섭의 '두 아이'. [사진=이중섭미술관]
이중섭의 '두 아이'. [사진=이중섭미술관]
추상은 그래서 멋지다. 추상은 대상이 없다. 아니 무한대이다.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세잔의 원추, 구, 원통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표현한 시도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잉태하였고, 결국 추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추상은 생각을 끝없이 순환시키고 그래서 자유롭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들이 구상이면서 추상을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방울 속에 세상 모든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은 조르즈 쇠라가 물방울로 다시 환생하고 김환기의 우주 속에 있는 점으로 보이는 네모 모양의 각기 다른 점 속에 우주가 있다고 '우주'는 이야기한다. 

은지화가 서귀포를 삼킨다. 은지화는 직관을 유도하고 통찰을 통한 생각의 도약을 선사한다. 이것이 인간의 영역이다. AI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그림 속에 있다. 그래서 짜장면이 우주가 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짜장면이 그래서 놀라운 억지이자 시작이다. 짜장면을 먹을 땐 탕수육 생각은 금물이다. 시작을 못 하게 한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감각기관을 총동원하여 천지창조를 그린다. 천지창조의 근본을 그리기 위해 순환의 사고를 동원한다. 성경을 읽고 생각하고 구약의 중심을 꺼내어 든다. 두 개의 손가락이 부딪히는 곳에 천지가 있다. 언젠가는 나도 이 두 개의 손을 찾아내고 싶다. 짜장면이 그 힌트다.

모든 과학에는 짜장면이 있다. 때로는 지배 방정식이 그 역할을 한다. 대학원 시절에 어려운 수업을 듣던 기억이 난다. 질문했다. 용기를 내어서, 

"그 방정식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론 수업이 끝난 후 복도에서 교수님을 종종 쫒아가면서. 

대답은 간단했다. "자꾸 보세요. 이리저리 뜯어보세요." 

어디를 어떻게 뜯어야 하나? 최고가는 대학에 비싼 돈 내고 다니는데 대답이 너무하다. 그러나 알았다. 이리저리 뜯어보는 것이 원근법과 통한다는 것,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고 등등. 그래서 지배 방정식은 추상의 하이라이트이다. 과학기술자들은 그래서 추상으로 교육받았다. 이것을 잊지 말자. 짜장면을 이리저리 뜯어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긴 세월을 돌아 친구가 끄집어낸 추억의 짜장면집, 그곳에서 잊어버린 이야기. "짜장면에 집중하자!"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에서 그것은 잊혀 있었다. 

이것저것 좋아 보이는 것들을 돈이 되면 시켜서 먹었다. 삼켰다.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를 지불하였는가가 가장 확실히 기억이 나는 세월을 상당히 산 것 같다. 이제는 그래서 짜장면을 천천히 입속에 머물게 하면서 먹어야 한다. 남은 세월은 낭비하지 말아야지!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 함께 그 옛날 학교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를 먹고 싶다. 추상이 우리가 배운 지배방정식이라고 썰을 풀어야지! 짜장면 속에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이야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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