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고교시절 부터 코딩 취미···앱 만들어 무료 배포하기도
안저(眼底) 데이터 학습시켜 질환 진단···과기부 장관상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환자의 안저(眼底) 데이터 세트(집합)를 구축하고, 이 데이터를 학습 시켜 녹내장을 선별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만든 공로다. [사진=건양대학교 병원 제공]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환자의 안저(眼底) 데이터 세트(집합)를 구축하고, 이 데이터를 학습 시켜 녹내장을 선별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만든 공로다. [사진=건양대학교 병원 제공]
"김 교수 진료도 힘들텐데 좀 쉬지 그래..."

선배의 걱정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고 쉬는시간 마다 앉은 곳은 컴퓨터 앞. 화면 앞엔 코드가 빼곡했다. 그에게 고등학교때부터 컴퓨터 코딩은 취미이자 일상이었다. 의대 진학 후에도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앱)은 직접 만들어 썼다. 한 번은 어학 공부용 MP3를 만들고 혼자 쓰기 아까워 앱스토어에 무료로 배포했더니 카카오톡, 맥OS 다음으로 다운로드 수가 많았단다. 진료하기도 바쁜 대학병원에서 코딩하는 괴짜 의사, 누구일까.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 교수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환자의 안저(眼底·안구 뒷부분) 데이터 세트(집합)를 구축하고, 이 데이터를 학습 시켜 녹내장을 선별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만든 공로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원내 연구진 30여 명과 만들어낸 작품이다.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3등급 의료기기 인증까지 받았다.  

녹내장은 눈으로 받아들인 빛을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에 이상이 생겨 시야 결손과 시력을 잃는 질환이다. 안과 전문의라고 하더라도 세부 전공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녹내장 전공의가 아닌 이상 질환 식별은 보통 일이 아니다. 녹내장 치료는 지연될 경우 실명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환자의 안저를 촬영하고, 학습된 AI로 녹내장을 식별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든 것이다. 

김 교수는 "녹내장 전문의가 아니라면 질환을 식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의사들이 녹내장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AI가 사전 진단 내지는 예후를 예측할 수 있다면 인류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비인후과 교수임에도 시각 질환에 눈을 돌렸다. 구글 AI 기술 때문이었다. 구글은 안저를 촬영한 12만개 고화질 사진을 AI 모델로 학습시켰다. 학습을 거친 AI 모델은 안과 전문가보다 '당뇨병성 망막증'을 진단하는 능력이 우수했다. AI 흐름을 읽고 있던 그가 녹내장 진단 AI 연구에 드라이브를 건 이유다.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교수 연구진(사진)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협업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 모습. [사진=건양대학교병원 제공]
김종엽 건양대학교병원 교수 연구진(사진)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협업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 모습. [사진=건양대학교병원 제공]
◆ 알고리즘 필살기 지닌 의사, 'AI+의료' 구현

그는 "학창 시절부터 코딩 자체를 즐기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던 중 AI 바람이 불었고, 의료와 IT(정보통신기술)가 융합돼야 시너지가 발휘되는 환경이 열려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 쉬는 시간에 코딩을 하면 괜한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제는 취미와 연구가 통일됐다"며 "상상 이상으로 보람이 크고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이라고 했다. 

건양대병원도 AI에 재능을 지닌 김 교수를 믿고 밀어줬다. 이어 진료 시간을 조정하고 연구에 집중해 성과를 내라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병원의 배려가 없었다면 연구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조직의 배려로 김 교수는 날개를 달았다. 김 교수는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를 개설해 병원에서 만들어지는 의료 데이터를 비식별화하고 외부에 공개했다. 연구, 진료뿐만 아니라 보건복지 정책도 수립 중이다. 보건복지부와 DNA(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중장기 국가전략 및 실행 계획을 만들고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디지털 헬스케어 특별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자체와는 의료 AI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다.

김 교수는 "의사이기 때문에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의 건강을 증진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발견한 현상에 확신이 들더라도 마지막까지 의심을 이어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로 녹내장을 진단하고 실명률을 낮추면 환자도 좋고 사회 간접비용도 줄일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AI 기술이 생각하지 못한 양면성까지 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AI라는 과학 역사의 페이지를 몸으로 뚫고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누군가 만든 이론을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황무지에서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어 설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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