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미국 생활 버리고 귀국 'POSTECH 창업공신'
은퇴 후 미국 생활 중 노환으로 별세

최상일 교수가 지난 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사진=포스텍 제공]
1989년 미국에서 28년간 연구 생활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던 교수가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모국에서의 후학양성'이다.

포항으로 향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최종 목적지는 포스텍(POSTECH). 이곳에서 그는 물리학과 교수진 구성부터 교과과정, 네트워크, 인프라 등의 토대를 만들었다. 학과 전산시스템부터 미래의 계산물리과정 등 세심한 부분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70세의 나이로 은퇴하기 전까지 더 나은 연구환경과 학생들을 위한 마음으로 일했다. 지금의 POSTECH 물리학과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최상일 교수 이야기다.

POSTECH 물리학과 교수로 교수 충원과 학과 진로 확립에 공헌한 최상일 교수가 지난 5일 영면했다. 향년 90세. 은퇴 후 미국에서 지내던 최 교수는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 입원했다 세상을 떠났다.

◆ 한국인 최초 고체물리이론 박사···연구부터 교육철학까지 살핀 과학자

1931년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1953년 서울대에 입학해 1961년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화학과 출신이지만 고체물리이론 분야 한국인 최초 박사학위자다. 1962년 박사후연구원 시절 발표한 Physical Review Letters 논문은 한국인 응집물리이론 학자가 발표한 최초의 논문으로 알려진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지내던 고인은 미국 유학 시절 알고 지내던 김호길 박사(POSTECH 초대 총장)로부터 포스텍 설립 소식을 듣고 미국의 우수 한인 연구자들을 포스텍 교수로 채용할 수 있게 도왔다. 이후 본인도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직을 정리,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해 포스텍에 합류했다.

1989년 고인은 POSTECH 물리학과 2대 주임교수로 부임했다. 주임교수는 다른 대학으로 치면 학과장이다. 미국에서부터 학과설립에 큰 역할을 했기에 주어진 직책이었다. 

고인은 대학의 기초과학연구소장·대학원장·대학교육개발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면서 POSTECH 물리학과의 교과과정을 구축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특히 계산물리 연구환경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워크스테이션과 그래픽스 등 포스텍 물리학과 전산시스템 토대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전국대학원장 협의회 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미국물리학회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여러 활동 중 '대학교육개발센터' 센터장 활동이 눈에 띈다. POSTECH 관계자에 따르면 포스텍은 설립 초기 연구개발중심대학으로 교육보다 연구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였다. 하지만 고인은 연구하기 위해서는 교육에도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데 방점을 두고 1999년 국내 최초로 대학교육개발센터를 직접 설립했다. 현재 여러 대학이 기초, 교양교육을 강조한 것보다 앞선 선택이었다. 고인은 초대 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효율적인 교육방법 개선안을 마련하는데 마지막 심혈을 기울였다. 

최상일 교수가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사진=포스텍 제공]

최 교수 지인들은 후배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진 그를 기억한다. 물리학과 박사자격시험 최우수 학생에게 수여하는 '창림상'기금을 학과에 기부해 학과 대학원생들의 학구열을 고취했고, 포스텍 전체 1학년 학부생을 대상으로 최우수 성적 학생에게 수여하는 '도문상'기금도 대학에 기부했다. 포항공대에서 명강의로 알려진 일반물리학 과목을 담당하며 학생들에게 남다른 애정과 강의에 대한 열정으로 POSTECH 졸업생들로부터 수차례 '베스트 티처 (Best Teacher)' 상을 받기도 했다. 

대중 강연 활동도 활발히 했다. 학부생뿐 아니라 고등학생, POSTECH에 오고자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 및 수많은 과학칼럼, 저서 등을 발간하며 물리학의 역사와 흐름을 시민에게 공유하는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30대 POSTECH에 합류해 고인과 인연을 맺은 김승환 교수는 "포스텍 물리학과의 기틀을 만드신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화하지만 확실한 리더십으로 학과를 이끌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라며 "연구와 교육에 철학을 갖고 더 나은 연구·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평생 일하신 최 교수님의 모습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후배인 민병일 POSTECH 교수도 "2002년 포스텍 정년퇴임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몇 년간 강의를 더하시고 포스텍에도 종종 방문해 후배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며 여생을 보내셨다. 한국 물리학계 개척자 중의 하나이신 최상일 교수님의 별세에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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