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허가현·김민석 KIST 극한소재연구센터 박사
고온없이 간단히 섞어 완성···귀금속 촉매 성능 향상 플랫폼 개발
연구장비 및 공간 공유, 기술 기획-개발-응용 기술사업화 속도

김민석, 허가현 박사는  몇 가지 화학물질을 단순히 섞는 것만으로 2nm의 균일한 입자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촉매는 입자크기가 작을수록 유리하지만 작게 만드는 과정이 꽤 복잡하다. 이런 한계를 두 사람은 함께 뛰어넘었다.[사진=김지영 기자]
김민석, 허가현 박사는  몇 가지 화학물질을 단순히 섞는 것만으로 2nm의 균일한 입자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촉매는 입자크기가 작을수록 유리하지만 작게 만드는 과정이 꽤 복잡하다. 이런 한계를 두 사람은 함께 뛰어넘었다.[사진=김지영 기자]
허가현·김민석 극한소재연구센터 박사에게 그날은 참 묘한 날이었다. 다른 실험을 하다 온도조절에 실패해 만들어진 뿌연 가루가 유난히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보통이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가루를 들고 특수현미경 앞에 앉았다. 현미경을 통해 관찰된 것은 특이한 형상과 거동을 보이는 구조였다. 

"구조가 참 재밌었어요. 뭔가 있다 싶었죠. 촉매 소재로 쓰이는 백금, 팔라듐 등 고가의 귀금속을 섞어봤습니다. 그런데 투명해지더라고요. 그냥 녹아버렸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번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귀금속 촉매의 성능 향상 조건을 갖춘 빽빽한 초소형 나노입자들이 보였습니다. 초미세합금 나노입자를 간단히 섞어서 만들어낸거죠."(김민석 박사)

촉매는 입자 크기가 작을수록 유리하다. 백금이 연료전지 전극 촉매로서 최대 효율을 내는 최적의 크기 2nm(나노미터)로 알려진다. 균일하고 작은 입자를 만들기 위해 높은 온도와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지만 두 연구진은 몇 가지 화학물질을 단순히 섞는 것만으로 2nm의 균일한 입자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상용화를 위해 기업에 이전하고 공동연구도 시작했다.

백금촉매는 주로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촉매로 사용된다.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선진국에서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관련 연구에 매진하는 만큼 친환경 에너지 생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복잡한 공정 단순화, 글로벌 촉매시장 판도 바꾼다

 

김민석 박사는 실수로 만들어진 가루를 통해 초미세합금 나노입자를 만들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사진=김지영 기자]
기존의 나노입자 합성기술은 고른 크기 입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도를 150~200℃로 높이거나 환원제가 고르게 분산되도록 조절을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부분만 입자가 작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상용화를 위한 대량생산에는 더 많은 화학물질을 고루 섞어야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1인분보다 100인분의 볶음밥 간을 맞추기 위해 조미료를 고루 섞는것이 힘든것 처럼 말이다.

허 박사는 "이 같은 까다로운 공정을 잘 제어하는 기업들이 촉매 관련 전 세계 시장을 꽉 잡은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KIST 기술은 복잡한 공정을 단순화시켰다. 나노와이어와 백금이온을 섞는 것만으로 균일한 입자를 만들었다. 두 화학물질이 서로 붙어 입자화되면서 분해되는데 특정 농도 이상이 되면 성장을 멈춰 가능한 일이다.

허가현 박사는 "양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균일한 입자를 만들 수 있다. 백금 외에도 고가의 귀금속 촉매로 쓰이는 팔라듐 등을 섞어도 2nm의 균일한 입자를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술은 지난해 9월 종합화학소재 기업 (주)금양에 이전됐다.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연구진에 따르면 수소전기차량 구동에너지원인 연료전지 스택에서 대표적 전극 촉매로 쓰이는 백금-카본에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택은 고가의 촉매사용으로 수소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제조원가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사업화를 위한 KIST의 행보도 적극적이다. 금양은 KIST 첫 링킹랩(Linking Lab) 입주기업 자격을 얻어 KIST 내부에 입주해 있다. '링킹랩'은 윤석진 KIST 원장이 제시한 모델이다. 기술 이전·사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KIST 연구원과 기업이 KIST 내 공동연구실을 만들어 기획부터 개발·응용까지 전 사업 단계를 함께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금까지 KIST 내부에 외부 연구인력이 함께 들어와 연구장비와 공간을 공유한 적은 없었다.

허가현 박사는 "수소연료전지 시장이 아직 크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2050년 모든 에너지를 수소로 전환하게 되는 만큼 연 수백조 시장이 열릴 것"이라며 "당장 시장은 작지만, 일본 수출규제에서의 설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산 촉매기술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 실험에 목말랐던 계산과학자, 실험과 콜라보해 더 나은 성과 만들다

두 연구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산과학연구센터에 몸담고 있었다. 계산과학은 직접 실험하기보다 실험을 설계하고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허 박사는 실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외부 연구자와 협력 없이는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한 연구결과가 실험실 연구에서도 제대로 구현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김민석 박사와의 만남은 인연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수 박사후과정에 지원한 김민석 박사의 이력서를 보았습니다. 나노입자나 여러 형상의 나노 구조체를 합성해 응용하는 등 실험에 능한 친구였는데 아쉽게도 계산과학연구센터에 지원하지 않았더군요. 우리가 찾는 인재였고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인연을 맺게 됐죠. (웃음)"
 

카본블랙을 살펴보는 연구자들.[사진=KIST 제공]
허 박사는 김 박사를 만나 계산과학을 통해 도출된 연구들을 실제 실험실로 옮겨내기 시작했다. 특히 김 박사는 연구자들이 흔히 다루기 어려운 나노 크기 관찰 특수한 현미경을 활용할 줄 알았는데 이번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실수로 만든 흰 가루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준비가 있어 가능했다.

촉매가 필요 없는 분야는 거의 없다. 허 박사가 촉매연구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기도 하다. 두 연구자는 수소연료전지 관련 백금촉매 상용화 연구를 시작으로 활용영역을 더 넓혀나갈 계획이다. 

김민석 박사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기술에는 금, 수소는 백금, 수소 흡착은 팔라듐이 촉매로 사용된다. 모두 고가의 소재이기 때문에 적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데 우리 기술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소연료전지 구동에 우리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지만 수소생산부터 이산화탄소 감소를 위한 에너지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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