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했던 실체 드러낸 양자기술, 상용화 목전
KIST 출연연 첫 양자연구, 조선업 최초 양자암호통신 시스템 구축 주도
타 출연연과 양자기술 협력 ‘양자 어벤져스’ 탄생

양자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양자컴퓨터가 있다. 오류 가능성이 커 슈퍼컴퓨터를 능가할 수 있느냐를 의심하는 연구자도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데 공감하는 추세다. 사진은 KIST 양자정보연구단 실험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양자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양자컴퓨터가 있다. 오류 가능성이 커 슈퍼컴퓨터를 능가할 수 있느냐를 의심하는 연구자도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데 공감하는 추세다. 사진은 KIST 양자정보연구단 실험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30년 후엔, 30년 후엔···'이라고 외쳤던 양자컴퓨터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IBM 50큐비트 ▲인텔 49큐비트 ▲구글 72큐비트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으며, 중국과학원 산하 이론물리학연구소는 76큐비트 수준을 달성했다고 논문을 게재했다. 양자컴퓨팅기술이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를 뛰어넘으려면 50개 이상의 큐비트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알려진다.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오류 가능성도 커 양자 우위 달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많은 과학자들은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를 목전에 두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장은 "5년 정도 후에는 특정 목적에 쓰이는 초기 형태의 양자컴퓨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이라고 말했다.

슈퍼컴퓨터보다 더 빠른 연산, 절대 뚫리지 않는 암호기술. 그 원천이 되는 '양자기술' 패권을 노리고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양자기술은 수많은 연구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 미국과 중국이 선두에 있지만, 양자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기술이다. 그만큼 복잡하기에 누가 승기를 잡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패권을 잡을 수 있을까. 출연연구소에서 제일 처음으로 양자관련 기술연구를 시작한 KIST 양자정보연구단을 통해 향후 가능성과 전략을 짚어봤다. 

◆  '양자컴퓨팅기술' 美-中 선두에···韓 어떤 길? '다이아몬드' 주목

우리나라는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추진하면서 국가 차원의 양자연구를 시작했다. 2023년까지 약 435억 원을 투자해 양자컴퓨터(5큐비트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황이다.

정부가 추진전략을 세우기 전부터 과학자들은 양자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연구를 시작해왔다. KIST는 2012년 출연연 최초로 양자 전문 연구조직을 세우고 현재 ▲양자통신 ▲양자컴퓨팅 ▲양자 시뮬레이션 ▲양자 센서 등을 연구한다.

양자기술하면 가장 핫한 분야가 양자컴퓨팅 분야다. 현존하는 슈퍼컴퓨터가 몇만 년 걸려 풀 문제를 단 몇 분 몇 초 만에 풀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양자컴퓨터가 실현되면 신소재, 신약개발 등을 단기간에 가능케 해 인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 국내 연구개발 상황은 어떠할까. 양자컴퓨팅기술은 ▲초전도 ▲이온 트랩(덫) ▲다이아몬드 점결합 ▲실리콘 반도체 ▲토폴로지컬 방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양자컴퓨팅기술은 구글과 IBM 등이 사용하는 초전도 큐비트다.

한 단장에 따르면 초전도 큐비트는 반도체 공정으로 집적화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어 수백큐비트를 만드는데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초전도 큐비트는 인접하지 않은 큐비트들간의 얽힘을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 극저온(mK) 상태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큰 냉동고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팅 기술은 여러가지로 나뉜다. 그 중 KIST는 가장 안정적인 고체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스핀 큐비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두 번째 강세인 이온 트랩 방식은 빛과 잘 상호작용하는 장점이 있다. 레이저를 쏴 이온의 들뜬 상태와 바닥 상태 에너지 차를 이용한 트랩을 생성해 이온을 가두는 과정에서 초고진공이 필요하다.

KIST는 가장 안정적인 고체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스핀 큐비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쓰이는 다이아몬드는 인공 합성한 것으로 2밀리미터(mm)*2mm 크기에 두께 500마이크로미터(μm)의 작은 나노기판처럼 생겼다.

다이아몬드 활용 스핀 큐비트는 초전도와 이온 트랩에 비해 앞선 기술은 아니지만, 온도와 진동 등에 예민해 중첩과 얽힘 상태를 잃기 쉬운 두 방식과 달리 안정적 물질 다이아몬드를 활용해 양자의 상태를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상온에서도 동작하고 빛으로도 조절 가능해 대규모 분산형 양자컴퓨터 개발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 단장은 "초전도 양자컴퓨팅기술이 앞서고 있지만 어떤 물리계의 큐비트가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양자는 전략기술이다. 다른 일반적인 기술과 같이 다른 나라가 만들었다고 해서 단순히 사 올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좀 느리더라도 기술을 가진 나라와 가지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양자컴퓨팅 기술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KIST,  선박에 양자암호기술 탑재···양자기술 민간통신 상용화 앞선다

양자컴퓨팅기술은 ▲초전도 ▲이온 트랩(덫) ▲다이아몬드 점결합 ▲실리콘 반도체 ▲토폴로지컬 방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양자컴퓨팅기술은 구글과 IBM 등이 사용하는 초전도 큐비트다.[사진=김지영 기자]
양자컴퓨팅기술은 ▲초전도 ▲이온 트랩(덫) ▲다이아몬드 점결합 ▲실리콘 반도체 ▲토폴로지컬 방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양자컴퓨팅기술은 구글과 IBM 등이 사용하는 초전도 큐비트다.[사진=김지영 기자]
"우리나라 양자암호통신 기술은 상용화 전 단계인 시험검증 단계라 볼 수 있다. 민간통신에서 본격적인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곳은 중국과 한국이 대표적이다."

양자암호통신기술은 KIST를 비롯해 국내 출연연에서 빠르게 추진 중인 기술 중 하나다. KIST,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ETRI가 양자통신 기술을,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양자암호통신 인증 및 검증 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그렇다면 양자암호통신은 뭘까.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컴퓨터 개발로 기존 암호체계가 취약해질 것을 대비해 연구개발 중인 분야다. 빛 알갱이 '광자'를 이용해 정보를 통신하는 기술로 해킹할 수 없어 보안이 뛰어나다고 알려진다. 양자암호통신은 제삼자가 정보탈취를 시도했을 때 이를 사전에 알 수 있어 원천적으로 해킹 위협을 차단할 수 있다.

해킹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내에서 양자암호통신분야에 제일 먼저 뛰어든 곳은 이동통신사다. SKT는 2011년부터 양자암호통신연구를 시작했고 KT도 뒤를 이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KT는 KIST와 손을 잡고 양자통신 응용연구센터를 개소하고 양자암호통신 실용화 연구를 수행 중이다.

그 결과 KIST는 2018년 KT와 공동 연구를 통해 일대다(1:N) 양자암호통신 시험망 구축에 성공한 바 있다. 하나의 서버와 다수의 클라이언트가 동시에 양자 암호키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하나의 장비로 다수 지점의 안정적인 망을 구축해 경제적인 망 구축 가능성을 보였다.

KIST는 그동안 쌓아 올린 연구개발 성과를 기반으로 조선업에 최초로 양자암호통신 시스템을 구축을 추진중이다. KIST는 지난 12월 KT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현대중공업 내 특수선사업부와 경영 본관, 해양공장 간 주요 보안통신인프라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사업을 통해 방산기술과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 더 완벽한 보안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다.

한 단장은 "극한의 미시세계 기술인 양자기술이 현대 산업 중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진 중공업에 적용된다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며 "어떤 산업이든 보안 유지가 중요하다. 특히 현대중공업에서는 보안이 매우 중요한 군함 등 특수선박들을 만들고 있어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적용해 사이버 공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선 외에도 우리나라 원전, 에너지산업 등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주요 시설 에 활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암호기술은 한 번 뚫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안전하게 통신, 금융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더 안전한 암호체계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풀 수 없는 강력한 암호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양자기술 돈만 부어서는 신화 못 만들어···인력 키워야

공감대를 크게 얻지 못해 투자가 지지부진했던 양자기술에 우리나라 정부와 과학기술정책전문가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투자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돈만 붓는다고 신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한 단장은 "이 분야에 많은 인력을 키우는 생태계 조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인력양성을 위해 가장 많은 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기업이 늘어나 관련 장치를 만들고 서비스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KT나 현대중공업 등에 납품된 양자기술 관련 장치는 KIST가 직접 만든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강소기업들이 해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상품을 팔 수 있을 정도의 기반기술은 어느 정도 되었으니 관심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특구도 만드는 등 시범사업을 통한 양자 산업 마중물을 만들어 본격적인 산업 창출 확산의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인력이지만 국내 연구자들은 양자기술 분야 고도화를 위해 협력안을 꾸준히 모색 중이다. 그 일환으로 KIST와 표준연은 지난 3월 MOU를 맺었다.

두 기관은 실질적인 연구 협력을 위해 겸임 직원제도도 도입키로 했다. 관련 연구시설 출입이 수월하도록 양측 연구자에게 객원 연구원 자격을 부여한다. 이와 함께 앞으로 6년간 대전 표준연과 서울, 수원의 KIST에 구축된 장비, 실험공간을 공유하며 공통연구 분야 협업과제를 도출한다.

지식재산권도 공동으로 출원하고 관리한다. 연구 시작부터 결과물 관리까지 두 출연연이 같이 참여하는 것이다. 예산은 연 100억원 내외, 연구인력은 60여 명이 투입될 예정이다. 출연연이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 이처럼 공동으로 다양한 제도를 만드는 일은 드문 일이다. 양 기관 연구자들이 양자기술 어벤져스 팀으로서 국제적으로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나라 양자암호통신 기술은 상용화 전 단계인 시험검증 단계라 볼 수 있다. 민간통신에서 본격적인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곳은 중국과 한국이 대표적이다."[사진=김지영 기자]
"우리나라 양자암호통신 기술은 상용화 전 단계인 시험검증 단계라 볼 수 있다. 민간통신에서 본격적인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곳은 중국과 한국이 대표적이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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