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 전통과 첨단으로 검 제작 '고려전통기술'
모친에게 빌린 200만원 종잣돈으로 사업 시작
배타고 중국행, 검 수입서 직접 제작키로 결심
"인연의 연속, 사회적 기여로 기업 이윤 나누고파"

고려도검의 전통을 첨단기술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어가고 있는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대표.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며 친정에서 빌린 200만원으로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라 대표는 모든 과정들이 준비된 인연처럼 다가왔다며 고려도검의 전통을 잇고 기업의 이윤은 사회적 기여로 환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고려전통기술에서 고증을 통해 만든 검과 라연희 대표.[사진= 길애경 기자]
고려도검의 전통을 첨단기술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어가고 있는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대표.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며 친정에서 빌린 200만원으로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라 대표는 모든 과정들이 준비된 인연처럼 다가왔다며 고려도검의 전통을 잇고 기업의 이윤은 사회적 기여로 환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고려전통기술에서 고증을 통해 만든 검과 라연희 대표.[사진= 길애경 기자]
1990년대 말. 남편은 주식투자로 갖고 있던 자금을 모두 날렸다.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며 미안해 하는 남편에게 "큰 공부했다 치자"는 말로 일단락 짓고(그 뒤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든든한 사업 동반자) 친정에서 200만원을 빌렸다. 아이들은 어렸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하지만 전업주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했다. 운동기구를 떼다 팔았다. 작지만 대박을 쳤다. 친정엄마에게 빌린 200만원을 갚고도 수중에 1200만원이 더 있었다. 홍삼, 옥장판 닥치는(?) 대로 팔았다. 빈털터리로 시작해 23m²(7평) 방, 주차장 막은 가게, 4층 건물로 규모도 커졌다. 그야말로 어머니는 강했다. 한국 검의 전통을 이어가며 사회적 기여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대표의 이야기다.

지난 5일 어린이날. 세종시 전의면 어천길에 위치한 기업 고려전통기술 공장 건물 2층에서 전의 마을 도서관 개관식이 있었다. 원자력 대부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과 그의 수양딸 라연희 대표가 마련했다. 도서관 옆에는 예술인이 공연을 펼치고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돼 있다. 라 대표는 언젠가 하고싶었던 사회적 기여의 첫 걸음이라고 밝혔다. 

◆ 전업주부서 보따리 장사, 사업가로 

"보따리 장사만 하기보다 사업을 구체화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촌이 있던 중국에 가기로 했어요. 사촌은 우리가 돈이 없는 걸 알고 항공권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일부러 배를 선택했죠. 중국의 보따리 장사를 만나고 싶었어요. 청도에 도착해 시장에 갔는데 장식용 검이 널려있더군요. 우리는 검에 대해 아무것도 없는데 생각하며 눈길이 갔어요."

일단 검을 수입하기로 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판매업자로 신고하지 않아 세관에서 제동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판매업 절차를 마치고 수입한 검을 찾았다. 상패 개념으로 광고를 한 덕분인지 군 등에 납품이 이뤄졌다. 

"하지만 검 전문가가 보기에는 허접한(?) 장난감 칼에 불과했어요. 어느날 우리나라 검 전문가로 알려진 이영신 교수(당시 육군사관학교에서 검 수업)께서 검을 사겠다고 했어요. 찾아가니 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 보는것은 어떠냐면서 고문서 등 자료를 주셨어요."

그렇게 한국 검과 인연이 시작됐다. 고려전통기술의 시작은 2001년 고려도검이다. 지금의 회사명은 2019년 이전하며 변경됐다.

라 대표에 의하면 검 수요는 미국과 유럽 시장이 크다. 미국은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검 수입이 이뤄진다. 검 생산은 주로 일본과 중국에서 하고 있다. 일본이 5%, 중국이 80%, 그외 국가가 15%로 시장을 차지한다. 한국은 고려, 조선을 이으며 검 제작 기술이 있지만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라 대표는 "일본의 검은 제품이 섬세하지만 가격 또한 높다. 중국은 가격, 수준이 다 낮았다. 한국의 전통검으로 해볼만 하겠다 싶었다. 검을 제작하기로 했다"면서 "아들을 일본 유명 도검장인에게 연수를 받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일본 도검장인에게 연수 받은 아들
 

고려전통기술은 고려도검의 전통을 잇기위해 문헌을 바탕으로 금형부터 직접 만들어 가며 검을 제작한다.[사진= 길애경 기자]
고려전통기술은 고려도검의 전통을 잇기위해 문헌을 바탕으로 금형부터 직접 만들어 가며 검을 제작한다.[사진= 길애경 기자]
고려전통기술의 현재 직원은 15명정도. 라 대표와 일본도검 장인에게 연수받은 아들, 35년 경력의 이승호 장인 등 축적된 실력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전통과 첨단기술로 고려도검의 표준화 대량생산화를 추구하고 있다.
 
라 대표의 아들은 메카트로닉스공학을 전공했다(이날은 어린이날로 라 대표의 아들을 만날 수 없었다). 고려도검 전통을 잇는다는 모친의 의지에 공감하며 일본 도검장인에게 연수를 받았다. 아들의 일본 연수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일본 도검장인은 아들의 연수 요청을 처음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단다.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장인이 한국에서 열리는 도검 박람회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라 대표는 다시 그를 찾아갔다.

"일본 장인께서 왜 자신에게 배우려 하는가, 너무 어려운 과정인데 버틸 수 있는가 두가지를 물었어요. 우리는 한국의 도검을 재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받아 줄것을 요청했어요. 일본 도검 장인이 승락하시고 일본 도검 장인들 사이에 조센징을 데려와 기술을 전수한다는 비난까지 다 받으시며 아들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조선에서 받은 것을 돌려준다면서요."

라 대표는 "아들이 일본에서 연수를 마치고 회사에 합류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칼보다 우수한 주방칼 제작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도 냈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노력들이 하나 둘 결실로도 나왔다. 드라마 제작팀에서도 고려전통기술의 검을 찾기 시작 한 것.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명량'과 드라마 '도깨비', 최근 종료된 드라마 '달이 뜨는 강' 등 에서 사용된 검, 소품이 고려전통기술의 제품이다. 드라마가 해외에 소개되면서 해외 바이어의 문의도 늘고 있다.

◆ 세계 명품칼 장벽 넘을 무기 
 

고려전통기술은 백동, 구리, 철을 붙여서 항균력과 성능이 우수한 주방칼을 개발했다. 유명 쉐프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내년 해외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고려전통기술은 백동, 구리, 철을 붙여서 항균력과 성능이 우수한 주방칼을 개발했다. 유명 쉐프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내년 해외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고려전통기술의 장비는 대부분 자체 설계하고 의뢰해 만들었다. 도검을 만드는 장비는 물론 도검 자루, 도검 집을 만들기 위한 금형도 자체제작이다. 검날에 무늬를 넣는 상감 등 모든 부분이 시스템화 돼 있다. 전통과 첨단으로 검의 모든것이 이뤄지며 한국 검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라 대표는 "우리가 개발해 특허를 낸 주방칼도 그동안 누구도 하지 못한 작업이다. 백동, 구리, 철을 붙이면서 세균 번식은 막고 성능은 우수한 주방칼을 만들었다. 주방칼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유명 쉐프들에게 인기가 높다. 유럽과 미국 전시를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고려도검과 우리가 개발한 주방칼의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위해 도검 제작을 위한 장비도 직접 설계해 맞췄다. 로봇장비까지 갖췄다"면서 "6월부터 대량생산에 들어갈 것이다. 유럽시장과 미국 시장에 제품을 납품했는데 코로나19로 주춤해졌다. 내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통과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고려도검의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도모한다. 로봇도 자체 설계, 주문해 들여왔다.[사진= 길애경 기자]
전통과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고려도검의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도모한다. 로봇도 자체 설계, 주문해 들여왔다.[사진= 길애경 기자]
◆ 인연의 연속, 사회적 기여로 

"검을 제작하게 된 것도, 산골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마을도서관을 만든 것도 남다른 인연에서 시작됐어요. 아버지(장인순 박사)와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동네 어르신으로 인사만 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자꾸 인연이 겹치면서 수양딸이 되었고 지금은 저희 6남매 모두 아버님으로 따르고 있어요. 친정부모님 묘소도 같이 갈 정도로요."

라 대표는 사업을 해 오면서 특별한 인연들이 반복됐다며 지난 시간을 소회했다. 마을도서관을 개관한 것은 장인순 박사의 평소 의지도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라 대표도 계획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내년에는 대한기술학교 설립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도검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자하는 누구나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각자 기술을 갖고 전통도 계승하며 일자리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라 대표는 "우리나라 전통 기술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혼자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사람이 떠나면 명맥도 중단된다"면서 "우리나라 검은 아름답다. 전쟁에 쓰이기보다 장식용, 소장용으로 사용되며 화려하기도 하다. 한류 드라마가 뜨면서 한국 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담으면서도 표준화하며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끝으로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은 이윤 추구도 하지만 사회적 기여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자연을 빌려 쓰듯이 후손들이 또 그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면서 "고려전통기술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1만3000여평의 공간에 어린이와 어르신이 함께 하는 복지센터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 도서관, 예술공간, 체험 공간 등 모두 개방하고 수익을 나누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종시 전의면 어천길 89-28에 위치한 고려전통기술 생산공장. 건물 2층에는 마을 주민을 위한 도서관도 마련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세종시 전의면 어천길 89-28에 위치한 고려전통기술 생산공장. 건물 2층에는 마을 주민을 위한 도서관도 마련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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