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대한민국 ⑪] 세종과학기지 '남극 하와이' 불릴 정도로 따뜻
매년 사라지는 빙하 4,280억톤, 스웨이츠 빙하 다 녹으면 재앙 온다
"탄소배출 당장 멈춰도 바다 식는데 100년, 남은 시간 별로 없어"

세종과학기지의 겨울과 여름 모습. 극지 연구는 주로 극지의 여름철에 진행돼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다. 하지만 최근 극지의 여름은 이전보다 더 따뜻해졌고 푸른 식물이 많이 자란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극지연]
세종과학기지의 겨울과 여름 모습. 극지 연구는 주로 극지의 여름철에 진행돼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다. 하지만 최근 극지의 여름은 이전보다 더 따뜻해졌고 푸른 식물이 많이 자란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극지연]
"요즘 저희끼리 남극세종과학기지를 '남극의 하와이'라고 부릅니다. 몇 해 전과 차이 날 정도로 남극이 매우 따뜻해지고 있거든요. 남극에 있으면 기후변화가 코앞에 왔구나가 느껴집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이원상 극지연 박사)

눈과 얼음으로 차가워야 하는 극지가 최근 따뜻해진 기후로 맨땅을 드러내고 있다. 연구를 위해 남극의 여름철 극지를 찾는 과학자들은 몇 해 전부터 남극 기온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남극세종과학기지가 '남극의 하와이'라고 불릴 정도로 극지는 따뜻해져 가고 있다.

세종과학기지가 세워진 남극 킹조지섬 바톤반도에서는 과거와 달리 푸른 식물들이 많이 관측되고 있다. 2007년부터 남극을 7번 오가며 남극 생태계를 연구하는 이형석 극지연 생명과학연구본부 박사는 "작년 남극은 확실히 달랐다. 기온도 따뜻했고, 그 전보다 눈도 많이 녹아 노출된 땅도, 식물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좌)2012년에 찍은 남극좀새풀 사진과 (우)2020년 촬영한 남극좀새풀. 같은 남극좀새풀은 아니지만 2020년 남극좀새풀은 이전에 보지 못한 수준으로 풍성하고 개체도 크게 자랐다. 이 지역 기후가 이전에 비해 식물 생장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좌)2012년에 찍은 남극좀새풀 사진과 (우)2020년 촬영한 남극좀새풀. 같은 남극좀새풀은 아니지만 2020년 남극좀새풀은 이전에 보지 못한 수준으로 풍성하고 개체도 크게 자랐다. 이 지역 기후가 이전에 비해 식물 생장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사진=이형석 극지연 박사]
이 박사에 따르면 최근 세종기지로부터 2~3km 떨어진 곳에서 크고 풍성하게 자란 남극좀새풀이 많이 늘었다. 남극좀새풀은 추운 겨울 눈 속에서 새파랗게 남아있다가 여름철 3개월 동안 활발히 생장한다. 지지난해와 달리 지난해 남극좀새풀은 서너 배 넓은 면적에 자라있었다.

이 박사는 "남극좀새풀이 자라는 최적 온도는 15도로 알려진다. 여름철 남극 평균기온은 낮과 밤을 합쳐 4도인데 남극좀새풀 영역이 늘어난 만큼 남극 땅이 15도에 자주 가까워졌다고 해석된다"며  "땅은 해를 계속 받다보니 조금더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이 지역 기후가 이전에 비해 식물 생장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남극이 따뜻해지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식물이 자란다는 보고도 늘었다. 2012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따르면 남극에는 해마다 7만개의 새로운 식물 씨앗이 유입된다. 차가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연구자들이 제거해 대부분 없어지지만 파리목에 속하는 각다귀류나 새포아풀 등이 남극에 적응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박사는 "여름철 잠깐 씨앗이 발아해 크는 경우는 많지만 눈이 덮이면 대부분 자연적으로 죽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음 해에도 꽃이 피고 씨도 만들어지는 등 정착 초기과정의 식물들이 늘고 있다는 보고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극의 여름철 온도상승은 식물 생태계 교란뿐 아니라 병충해까지 확산한다. 이 박사는 " 남극의 어느 한 지역에서는 식물들이 병에 걸리는 이상현상이 발견됐는데, 그 현상이 온도상승 패턴과 유사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따뜻해진 날씨로 미생물,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등 병원성 미생물이 활발히 활동하며 남극 식물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매년 사라지는 빙하 4,280억톤···스웨이츠 빙하 구하지 못하면 재앙 닥친다

NASA(미 항공우주국)발표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7년간 그린란드와 남극에서 인공위성 그레이스호로 빙하를 관측한 결과 매년 428기가톤(4,280억톤)의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 비행기 1만대의 무게를 약 10억톤으로 계산했을 때, 비행기 428만대가 매년 바다로 빠지는 셈이다. 

극지연 과학자들은 녹은 빙붕이 폭포수처럼 바닷물에 빠져들어 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2014년 1월 초 남극 장보고기지 근처에서 세계최초로 관측한 '난센 빙붕' 붕괴 모습이다. 

난센 빙붕은 장보고과학기지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 폭 15km 길이 50km 두께가 200m 되는 얼음덩어리다. 기온이 따뜻해지면 얼음덩어리 위에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둘 만들어졌다가 다시 추운 겨울에 꽁꽁 어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난히 더웠던 2014년 웅덩이들이 점점 커져 하나로 합쳐지더니 바다 위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원상 박사는 "남극 기온이 일주일 이상 영상일 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알려지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붕괴하는 모습은 처음"이라며 "한 번 이런 현상이 시작되면 도미노처럼 많은 빙붕이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빙하와 빙붕 등이 녹아 바다로 들어가면 해수면을 상승시킨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20세기 이후 바다에 빠진 빙하로 해수면은 8인치나 올랐다. 
 

2014년 1월 초 극지연이 남극 장보고기지 근처에서 세계최초로 관측한 '난센 빙붕' 붕괴 모습. 헬기에서 촬영해 영상이 흔들린다.[영상=극지연]
2014년 1월 초 극지연이 남극 장보고기지 근처에서 세계최초로 관측한 '난센 빙붕' 붕괴 모습. 헬기에서 촬영해 영상이 흔들린다.[영상=극지연]
난센빙붕의 물 웅덩이가 녹아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극지연이 포착했다.  [사진=극지연]
난센빙붕의 물 웅덩이가 녹아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극지연이 포착했다.  [사진=극지연]
빙붕, 빙하 등이 녹으면 왜 위험할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얼음덩어리인 빙산과, 남극 대륙과 이어져 있긴 하지만 이미 바다 위에 얼어버린 빙붕은 이미 바다 위에 떠 있어서  해수면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녹더라도 양에 변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빛을 반사해야 할 빙붕, 빙하, 빙산 등이 녹으면서 시커먼 바닷물이 모습을 드러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검은 바다는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하고 더 빠르게 지구 온도를 높인다. 

특히 빙붕은 대륙 위 빙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 해수면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빙붕 아래 따뜻한 해수가 들어가면 빙붕의 두께가 얇아지거나 붕괴되고, 대륙위 빙하가 계속 쏟아져 내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빙붕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 얼마나 많은 따뜻한 물이 매년 빙붕 아래로 흘러 들어갔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예측하기 위한 근거자료가 부족하다. 
 

이원상 박사는 남극을 13번 오가며 빙하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이원상 박사는 남극을 13번 오가며 빙하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멈춘다해도 이미 뜨거워진 바다는 식는데 100년이 걸린다"며 기후변화를 빨리 막지 않으면 안된다고 경고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이에 극지연은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 등 다국적 연구조사팀 '국제 스웨이츠 빙하협력단'을 꾸리고 서남극의 스웨이츠 빙하에서 빙붕 변화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웨이츠빙하는 남극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녹는 것으로 알려져 '운명의 날 빙하'로도 불린다. 

스웨이츠 빙하는 여러 기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기상 상황이 안 좋으면 가기 어려워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스웨이츠 빙하가 붕괴될수록 극지 얼음 후퇴는 점점빨라질 것으로 예상돼 스웨이츠빙하를 지키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국제 스웨이츠 빙하협력단은 스웨이츠 빙하 빙붕에 구멍을 뚫어 무인자동탐사잠수정 등을 통해 물흐름과 염도, 산소, 온도 측정 등 빙붕 아래로 따뜻한 물이 얼마나 흘러들어오는지 장기간 감시한다.

이 박사는 "기후변화는 서서히 오기 때문에 우리는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하면 극지는 2~3배 더 오른다. 빠른 변화가 있고 이것이 곧 우리에게 닥칠 미래의 모습"이라며 "스웨이츠 빙하를 구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재앙이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멈춘다해도 한번 뜨거워진 바다는 식기까지 100년 이상 걸린다. 

이 박사는 "물이 끓으면 분자 간격이 넓어지면서 물이 넘친다. 해수 온도도 마찬가지로 열팽창 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면서 "물이 잡고 있는 잠열은 한번 뜨거워지면 식히기가 어렵다. 탄소배출을 당장 멈춘다 해도 이미 뜨거워진 해수면을 잠재우려면 100년은 필요하다. 지구 온도상승이 계속 누적될수록 해수면 상승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그는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2050년을 맞이한다면 허리케인, 가뭄, 혹한, 자연발화 등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2050년을 맞이한다면 허리케인, 가뭄, 혹한, 자연발화 등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사진=김지영 기자]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2050년을 맞이한다면 허리케인, 가뭄, 혹한, 자연발화 등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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