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고영주 DISTEP(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중앙 중심 인식, 수도권 투자 집중 ↓
균특회계 자율 예산 비중, 자기주도성 ↑

◆ 커지는 질문과 현장성이 부족한 답안지

균형발전 정책을 오래도록 추진했는데 왜 갈수록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은 가속화되는 것일까? 국가연구개발 투자는 30조원까지 늘고 과학기술정책은 계속 발전하는데 왜 지역의 혁신과는 연결이 부족할까? 지역주력산업, 특화산업 육성을 계속해왔는데 과연 대한민국을 끌고 갈 주력 산업, 특화산업이 지역에서 새로 생겨난 것일까? 왜 지역의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하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할까? 도시 재생을 위해 많은 돈을 지방에 투입했는데 왜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몰려들까? 

이러한 질문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균형발전과 지역혁신을 위한 노력 자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나마 중앙정부가 지역을 위해 나름 열심히 추진해온 정책과 사업에는 현장성이 부족했다. 정책과 사업을 중앙부처별로 나뉘어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화에 집중해온 결과 정책과 사업간 연결성이 떨어졌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자체는 중앙부처 주도 국책사업에 매칭 자금을 투입해 수주하는 데만 집중했다. 확보한 사업 혹은 지역의 혁신 자산을 지역혁신으로 연결하는 자생적인 혁신 역량을 키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균형발전 정책에는 과학기술 혁신을 담지 못했고 과학기술정책에는 지역혁신 정책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현장에서 답을 찾고 현장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지 못하고 산업 중심, 중앙중심의 정책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다. 정책 전문가들조차 지역 균형발전을 과학기술 혁신으로 이루고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지역혁신으로 만들어보자는 적극적인 인식이 부족하고 지역이 역량이 없으니 중앙이 지역을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있어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 방향과 방식을 바꾸면 보이는 새로운 길

이제는 중앙중심, 수도권 중심, 대기업 중심의 대한민국 발전 모델과 정책 방향을 지역 중심, 혁신 기업 중심, 원천기술 기반 미래 신산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지역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보자는 정책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선심성, 부분적 지원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주도권과 자율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부처별 방식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방식으로 전환해보자. 공급적이고 단기적인 방식, 전문가 중심의 사업과 프로젝트 양산이 아니라 중장기적 문제해결 방식, 협업적 방식으로 바꿔보자.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균형발전, 혹은 지역 중심 과학기술 기반 국가혁신체계로 나아가보자고 결심하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 걷어내기

방향과 방식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과감하게 없애야 할까? 우선 지역은 역량이 부족하니 중앙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인식, 중앙이 하면 되는데 왜 지역이 굳이 주도적으로 해야 하나 하는 의식을 일단 걷어내 보자. 지역의 관점에서 지역을 바라보면 지역에는 많은 역량과 자산이 축적되어 있다. 통상 지역의 역량 하면 지자체 공무원의 역량만을 생각하거나 지자체 산하 기관의 역량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역 공무원과 지자체 기관의 역량이 이제 스스로 지역을 주도적으로 운영할 만큼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역량과 자산은 지역에 있는 산업체, 대학, 출연연구기관, 공공기관, 시민 커뮤티니, 각종 단체, 지역의 인프라와 자원, 문화와 역사 이 모든 것의 총합이다. 문제는 이러한 역량과 자산이 중앙의 관리에 익숙해 있고 중앙과의 연결로 수직계열화되어 지역의 자산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역 중심으로 지역의 모든 역량과 자산을 모아 지역혁신으로 재구조화하고 그걸 추진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한다면 양상은 달라진다. 

한편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이에 기반한 혁신은 통상 국가나 산업, 특정 분야 중심으로 이루진다. 지역은 이를 활용해 지역혁신을 이룰 가능성과 방식은 인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균형발전을 오랜동안 추진하면서도 과학기술 기반 혁신으로 균형발전을 이루는 시도 자체가 부족하게 된다. 실제 균특회계 10조원 중 과학기술 관련 균형발전에 투입되는 비용은 1조원 남짓이고 다양한 포괄보조금으로 균특회계 예산을 지역에 내려보내지만, 연구개발포괄보조금 제도는 없다. 국가의 연구개발투자가 30조원에 이르고 과학기술정책이 빠르게 발전해왔지만, 지역 연구개발과 이에 기반한 혁신에 투자하는 비중은 1조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지역을 타겟으로 하는 많은 과학기술 관련 국책사업은 별도로 추진되고 있다. 중앙이 지역을 도와주어야 하고 역량이 되는 중앙이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지방이 매칭하는 중앙주도의 국책공모 사업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2년에 이러한 국책사업 규모가 6조원을 넘었고 이 중 40%는 지방 매칭 자금이다. 지방 측면에서 보면 지역의 연구개발 기반 혁신을 위해 사용하는 자금의 70% 이상을 국책사업 수주에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방향과 방식의 실효성이나 현장성이 부족하고 지역혁신으로의 연결성과 내재화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방향과 방식을 바꾸는 우리의 시작은 그래서 중앙이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 과학기술 혁신은 지역 균형발전과 관련이 적다는 의식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 줄이기

첫째는, 지방정부의 매칭을 의무화하고 지역 간 경쟁으로 선정하는 중앙주도의 국책사업을 줄여야 한다. 2022년의 6조원이 넘은 국책사업의 50%만 지역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줘도 1000억원 이상의 지역혁신 자금이 확보된다. 국책사업 확보를 위해 과도하게 매달렸던 수주 경쟁을 줄이고 지역 상황에 맞게 꼭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 5년간 이러한 국책사업을 분석해 지역이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조화하면 재정의 부담 없이 방향과 방식을 바꿀 수 있다. 향후 이러한 대형 국책사업을 심의할 때 지역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인지 면밀하게 검토해 국가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굳이 추진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이면 지역으로 넘겨주는 평가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역량이 부족하면 지역과 중앙의 협력으로 부족한 역량을 보완해 지역의 자생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 될 것이다. 

둘째는, 지방에 타격을 주는 중앙정부의 수도권 투자를 줄여야 한다.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청년을 위한 교통과 정주 환경, 새로운 신도시와 혁신단지 등은 다른 지방과 동등하게 서울과 경기도 지자체의 투자 중심으로 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경우 다른 지방과 지원하는 방식을 맞춰야 할 것이다. 본사가 수도권에 있는 경우 세금을 더 부과하거나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우 세금을 크게 감면해주는 것이 오히려 국가가 지원해 성장해온 수도권의 상황을 보면 형평에 맞는 일이다. 

셋째는, 중앙부처 공무원의 일정 비중을 지역에 파견하여 경험하게 하거나 신입 공무원의 경우 지방 체험을 의무화하거나 승진에 반영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중앙부처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실제 지방에 파견 나와 일해 본 중앙부처 공무원의 인식이 변하거나 지역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를 크게 늘린다면 상황은 빠른 속도로 바뀔 수도 있다. 

◆ 늘리기

첫째, 균형발전 정책과 사업에 필요한 균특회계를 2배 이상으로 키우고 과학기술 혁신과 관련한 예산과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균특회계 중 지역 자율로 쓸 수 있는 예산의 비중이 현재 25%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최소 70%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균형발전위원회 위원과 정책 단위에 과학기술혁신 전문가의 참여를 늘려야 할 것이다. 

둘째, 국가연구개발예산 중 지방 과학기술 진흥과 지역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을 현재 1조원 남짓 5% 수준에서 최소 30% 이상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는 대기업 중심, 대형 산업 중심, 논문과 특허에서 그치는 연구 중심에서 지역 주도 원천기술 기반 미래 신산업 창출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국가 주도, 분야 중심의 국가혁신체계를 지역 중심 국가혁신체계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축을 세우면 길이 열릴 것이다. 

셋째, 지자체의 과학기술 기반 혁신 투자를 늘리고 지역의 대학, 출연(연), 기업의 상호 협력과 융합 노력, 시민참여 혁신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지자체별로 연구개발, 기업지원, 창업지원 등 과학기술 기반 혁신에 투자하는 예산은 2,000억 원에서 7,000억 원 수준이다. 지역에 있는 산학연은 각자 바쁘고 중앙 혹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지역과 관련이 없는 연구, 혹은 연구하지만, 지역혁신으로 연결되지 않는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추격형 시대를 넘어 선도형 기술혁신과 신산업 창출은 이제 분야를 넘는 융합에서, 기술 공급적 관점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연구와 비즈니스 지역 밀집 환경의 통합적 혁신에서 발생한다. 지역에 있지만, 중앙에 수직계열화되어 있는 산학연과 혁신 지원기관을 지역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연결하고 융합하며 지역의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연결성과 자기 주도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넷째, 지역의 경계를 확장하고 지역 주도의 초광역 협력, 글로벌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의 행정조직 기반 지자체 구조는 지자체의 경쟁을 확대하고 협력은 잘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자기 지역에 없는 자산을 확보하고 연결하여 상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지역과 중앙의 협업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저출산으로 인재가 더욱 절실해지는 지금 해외의 고급 인재를 지역에 수혈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해외의 고급인재는 굳이 수도권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지역의 강점을 살리면 수도권보다 더 좋은 해외 고급인재를 유치해 교육, 연구, 취업, 창업, 투자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룰 수 있다. 

◆ 새로 만들기

첫째, 지역 주도의 혁신을 위해서는 지역에 있는 기술, 인적 자원, 인프라, 혁신 자원과 관련한 정보, 지역에서 창출되고 교류되는 각종 정보와 데이터를 공유하고 소통하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혁신이 창출되도록 지능형 개방형 정보인프라가 튼튼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과거 고속도로와 철도, 산업, 통신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듯이 지역의 지능형 개방형 정보인프라를 블록체인,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신기술 기반으로 강력하게 구축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의 과학기술 혁신 투자와 중앙정부의 지자체 과학기술혁신 포괄보조금 제도를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현재 지방자치법에는 연구개발이 행정사무로 들어와 있지 않아 지자체 단체장의 의지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과학기술 기반의 지역혁신에 대한 투자와 방식이 차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을 고쳐 연구개발과 관련 혁신 투자를 행정사무에 포함하면 최소한의 일관성 있는 진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을 고쳐 연구개발을 행정사무에 포함하자고 하면 기존 다른 분야에 투자되는 예산을 줄여야 하는 이슈가 생길 수도 있어 중앙정부가 연구개발 포괄보조금 형태나 블록펀딩 형태의 지원을 통해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동시적 노력을 통합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별로 과학기술 기반 지역혁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투자를 늘리면서 체계적인 기획, 투자, 관리, 확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자체 산하 싱크탱크 구축과 수평적 네트워크 확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싱크탱크와 관련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지역별 싱크탱크에 해당 지역의 산학연관민이 함께 참여하여 기존 관련 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경우 중앙에서 직접적인 예산 지원과 지역에 있는 중앙 관할 및 지원 기관에서의 인적 자원, 혁신 인프라를 연계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해서 중앙에서의 지원이 다양하게 체계적이고 일관성있게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새로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넷째, 지역에 중앙정부가 투자하여 구축한 다양한 혁신 자원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특구, 산업단지, 혁신도시, 지역혁신플랫폼, 실증단지 등 중앙부처의 지원 혹은 지방정부와의 협업으로 발전해온 지역의 자산을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혁신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 주도 혁신체계로 구축해야 한다. 부처별 지역 투자와 지자체의 지역 투자 자산과 인프라가 협업적 구조를 가질 수 있는 체계의 모델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 

◆ 지역 현장 기반 답을 만들며 미래로 나아가자

방향과 방식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자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우선 단기 성과 위주의 빨리빨리 문화를 시계열적으로 늘려 축적과 혁신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기술혁신과 기술혁신 기반 경제의 본질이다.

최근의 기술패권주의와 기술혁신의 양상은 더 빠르게 융합과 새로운 창출의 과제를 한국 경제와 사회에 던지고 있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 국가 중심, 대기업 중심으로 선진국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며 나름의 혁신 모델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혁신 모델로는 더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이제는 다른 방향과 방식을 통한 새로운 혁신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50년 동안 우리가 해온 노력과 축적된 역량으로 우리는 새로운 지역 중심 국가혁신체계에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내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지역에서 바둥거리며 뛰고 있는 한 작은 목소리가 다른 지역과 중앙에 전달되어 희망의 작은 불씨가 타오르기를 기대해본다.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사진= 대덕넷]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사진= 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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