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클라우스 폰 클리칭 전 獨막스플랑크 연구소장
"순간 예산 올린다고 성과 나오지 않아···장기적 안정에 집중"
"긍정적 자세 중요, 본인 연구에 대한 애정·열정 갖길"

폰 클리칭 전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장이 지난달 17일 표준연 창립 47주년을 맞아 연구원을 방문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폰 클리칭 전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장이 지난달 17일 표준연 창립 47주년을 맞아 연구원을 방문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본 한국의 기초과학은 '단기성' 그 자체였다. 예산뿐만 아니라 관점 자체도 단기에 머물러 있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를 따라 한국도 IBS(기초과학연구원)를 설립,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내외부적 요소로 기초과학이 휘둘리고 있다는 고언이다. 

클라우스 폰 클리칭 전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기초과학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중요한 건 장기적인 안정성이다. 단기적 지원보단 장기적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 갑자기 인력 혹은 예산을 감축했다가 증원한다 해서 결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변화가 발생하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정수 양자 홀 효과' 발견으로 198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물리학자다. 정수 양자 홀 효과란 홀 저항이 자기장 세기에 따라 어떠한 특정한 값들만을 규칙적으로 나타낸다는 원리다. 그간 홀 저항값은 동일한 재료로 크기와 길이를 같게 해 만든 도선들이라도 조금씩 값이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클리칭 전 소장은 이 같은 상식을 벗어나 홀 저항값이 여러 번에 걸친 특정 구간에선 일정 값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한국 과학기술계와 소통해왔다. 클리칭 전 소장은 "한국의 과학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며 "특히 기초과학 분야는 길지 않은 역사에 비해 기술력이 우수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 기초과학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이다. 미래 20년은 아무도 모른다.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본인의 연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클리칭 교수는 지난달 17일 표준연 창립 47주년을 맞아 연구원을 방문, 특별강연에 나섰다. 그는 2014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아래는 이날 강연 후 가진 클리칭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Q. 현재 표준연 명예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인연이 어떻게 닿았나.

- 표준연 방문만 이번이 4번째다. 노벨상 수상 후 4개월 뒤 한 컨퍼런스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의 과학자가 내 연구를 언급하더라. 표준연 연구원이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연구원 또한 현재 제자로 가르치고 있다.

내가 발견한 연구결과는 표준과학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다. 현재 한국 표준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현지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고, 젊었을 때도 독일 표준연과 비슷한 곳에서 연구했었다. 분야가 같기에 자연스럽게 관계가 맺어졌다. 

Q. 노벨상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을 거 같다. 연구성과에 대해 설명해달라. 

- 난 내 연구를 설명할 때 속도에 비교한다. 일상에서 자동차, 비행기 등 속도가 다 다른데 빛에도 속도가 있다. 내가 발견한 건 이 속도가 항상 동일하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발견은 전기저항에 관한 것이다. 전기와 전류가 있으면 저항이 발생하는데 이건 전선 소재, 길이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근데 내가 발견한 건 저항이 전기, 전선 소재에 무관하게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점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이 부분 중요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쓰는 국제기본단위가 7개 있다. 때문에 오늘날 이런 기초 현상은 전 지구적으로 동일하게 발생, 측정 가능하다는 게 핵심이다. 

Q. 노벨상은 과학자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 아닌가. 그다음 목표 설정이 쉽지 않았을 거 같다. 

-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나서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노벨상은 과학자들에게 가장 높은 명예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세상으로 인해 내가 변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스스로에게 내가 남보다 나은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전과 동일하게 하자고 되뇌었다.

노벨상 타면 사람들이 '쟤는 좀 특별하다, 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난 우연히 어떠한 시점에, 공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운 좋게 수상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걸 알고 있진 않다. 근데 사람들은 노벨상 수상자라고 하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분야에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알고 있는 건 맞겠지만, 다른 분야는 비슷할 뿐이다.

노벨상 영향도 있긴 하다. 수상자들이 지식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로비스트로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에 좀 더 쉽게 발언하고 로비할 수 있다. 그래서 수상자들이 무언가를 전파하는 데에 있어 큰 책임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난 젊은 과학자들을 많이 지원하고 있고, 기초과학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과학적 지식들을 젊은 세대에 전하는 교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현지에 내 이름으로 된 상이 있는데, 학생들을 지원하는 교사들을 위한 상이다. 아이들을 향한 열정적인 교사와 부모들의 지원이 중요하고, 이게 바로 과학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조언해주는 역할이 돼야 한다.

Q.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가 100명이 넘는다. 비결이 있나.

- 문화 차이인 거 같다. 다행히 독일은 과학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제품 개발을 위해 지원하는 반면 독일은 과학적 업적에 대해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다. 

대중들의 성원도 있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걸 지향한다. 때문에 우리도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도 하고 과학지식의 가치를 알려준다. 단순히 이게 제품을 위한 것들은 아니다. 

독일은 대중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이 마련돼 있다. 독일에선 동네 시장에서도 과학축제를 한다. 대전도 한국의 과학도시로서 이런 행사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우린 어른보단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은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 관심과 호기심을 그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유지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투자도 많이 하고 있다.  

Q. 한국의 기초과학계는 어떠한가.

- 대부분의 국가에선 기초연구보단 응용연구에 중점을 둔다. 산업계에 관심이 더 많고 시장 제품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분야에선 연구소 구축 등 어려움이 많다.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 데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만 생각, 장기적 관점으로 보기가 어렵다.

한국을 보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독일, 일본과 비슷하게 연구소를 짓고 있다. 기초과학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장기적인 안정성이다. 변화가 발생하면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로 지원되는 많은 금액보다 장기적 안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떠한 정치인이 나에게 10배 더 많은 자금을 원하냐고 물어보면 아니라 하겠다. 그렇다고 연구결과가 10배 상승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중단 없이 지속적인 연구가 더 중요하다. 연구가 중단되면 과학계에 큰 피해가 간다. 참고로 막스플랑크는 2030년까지 매년 연구비를 증대,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Q.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극복 방법이 따로 있나.

- 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내 연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노벨상을 받았던 연구를 진행할 때도 난 직책이 없는 과학자였다. 그럼에도 난 뭐든 잘, 열심히 하면 기회는 많겠다고 생각했다. 은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 자녀를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면 미래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배들에게도 항상 문제를 바라보기보단 밝은 면을 보라고 조언한다.

Q. 후배 과학자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 외국으로 나가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봐라.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라. 연구영역에 있어서도 다른 분야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이는 곧 내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끔 도와준다. 경험은 다른 분야와 융합됐을 때 심화, 특화될 수 있기에 다른 분야에 관심 갖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난 내 가족과 타지를 가면 그들 (국가가) 지닌 문제를 본다. 근데 여행 끝나면 긍정적인 것들만 남는다. 이것들이 결국 미래로 간다.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내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불확실성을 감소해라. 
 
클리칭 교수는 지난달 17일 표준연 창립 47주년을 맞아 연구원을 방문, 특별강연에 나섰다. 그는 2014년부터 표준연 명예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표준연 제공]
클리칭 교수는 지난달 17일 표준연 창립 47주년을 맞아 연구원을 방문, 특별강연에 나섰다. 그는 2014년부터 표준연 명예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표준연 제공]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