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X학회]①백원필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 학회장
원자력안전 전공, 후쿠시마 사태 하루 6시간씩 전화 대응
"후폭풍 있었지만···누군간 해야하는 일, 마음속 부채 있었다"
"국민과의 신뢰로 싱크탱크, 목소리 내는 과학자 많아지길"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눈부신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중 과학기술계 학회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과학적인 타당성을 공개하고 검증했습니다. 연구성과 발표의 장뿐만 아니라 연구자 간 교류, 국민 소통에도 앞장섰습니다. 대덕넷(HelloDD)은 신년을 맞이해 '과학기술X학회' 기획보도를 시작합니다. 각자의 역량을 빌드업하고 있는 과학기술계 학회의 역사와 역할을 조명하기 위함입니다. 향후 각 분야 학회장의 릴레이 인터뷰가 보도될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
"텔레비전으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누가 봐도 수소가스 폭발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때까진 우리도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후쿠시마 원전은 비등경수로인데, 당시 국내에 비등경수로가 없었을뿐더러 이건 설계방식도 다양하거든요. 인터넷도 지금처럼 막 발달되진 않았던 시절이잖아요. 전화는 쏟아지고···. 도서관에서 있는 자료 없는 자료 긁어모아가며 사고를 분석했죠. 학계, 연구계, 정치계, 언론할 거 없이 3월 11일부터 일주일간 하루에 6시간씩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인만큼 KAIST 원자력공학 박사, 그것도 안전·관리를 전공한 백 박사는 이들에게 사고 실마리를 알려줄 적임자였다. 사고 발생 후 17일이 지난 3월 28일, 원자력연은 첫 후쿠시마 원전사고 중간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이후 그는 한국원자력학회가 구성한 후쿠시마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보고서 작업을 주도, 사건 원인과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팀원들과 함께 일본 정부 수탁과제로 후쿠시마 사고 시 원자로 용기가 뚫리는 상황을 실험적으로 모의, NHK 월드에 두 차례 방영하기도 했다.
백 박사는 현재 원자력연 기획평가위원 겸 지난해 9월 1일 자로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월 초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학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책 집필하며···'진실' 알리기 앞장 서
과정이 쉽진 않았다. 중간에 편집자가 바뀌기도 하고 출판사와의 시행착오도 있었다. 정치적 문제도 피할 수 없었다. 책이 나오기 8개월 전인 2021년 4월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공개되며 한국의 강력한 반대여론도 한 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책이 나가니···. 부담이 없진 않았죠.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일이잖아요. 정치권은 사건을 정치적으로만 보고 언론은 정확한 정보를 주기보단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거 같더라고요. 제가 원자력안전을 전공하기도 했고. 후쿠시마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선 마음속으로 부채가 있었어요. 한국 원자력 안전 전문가들이 독자적으로 정리하자는 책임감이죠."
'오염수 해양 방류가 생태계에 미칠 방사선학적 영향은 매우 작다.'
당시 정권에 반대되는 책이 대중에 공개되자 그 여파가 상당했다. 격려도 많았지만 막무가내식의 공격과 비난도 거셌다. 후폭풍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백 학회장은 "과학자로서 할 말은 해야죠"라며 빙그레 웃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원자력의 탈(脫) 정치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백 학회장은 2021년도 9월 학회 수석부회장에 취임한 후 원자력 관련 학회 공동의 국가원자력정책제안서 작성을 주도, 11월 초 당시 대통령 후보진영에 전달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성과도 없다는 생각에서 했다고 한다.
"제가 정치적이지 않고 과학적이라고 믿어주는 분들이 나름 계셨어요. 그분들의 격려도 있었고요. 한편으론 원자력이 이대로 가면 붕괴될텐데, 원자력인으로서 뭔가는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무감도 있었습니다.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차분하게 접근하는 것. 학회장을 해야겠다고 맘먹은 이유예요."
◆ 54년 역사 '원자력학회'
백 학회장의 임기는 1년이다. 무언가를 하기엔 길지 않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과의 소통에 방점을 두고 대중친화적인 원자력을 구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백 학회장은 "학회는 기본적으로 전문가 모임"이라며 "학회 역할이 다양하게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원자력 관련 학회는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기술 기반은 물론 국민의 신뢰도 튼튼히 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평생 과학기술계에 몸담은 그인 만큼, 과기계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자는 격려였다. 향후 원자력계 미래를 걱정하는 선배 과학자로서의 진심이 담겼다.
"원자력계의 현재 상황에 대해 우리들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필요할 땐 용감하게 나서고 주장했어야 했는데, 쉽게 가려고만 한 건 아닌지···. 제 자신을 포함해 많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줘야죠. 과학자잖아요. 과학자로서 과학적인 태도로 그들을 이해시켜 줘야죠."
끝으로 그는 개인적인 바람도 덧붙였다. 백 학회장은 "끝까지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며 "구체적으로 그게 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연구원으로서 할 일은 남았다고 생각한다. 책도 한 두권 더 쓰고 싶고 전문가로서 소통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원자력에 대해 위험한만큼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원자력이 국민지지를 받는 더 튼튼한 기술이 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 백원필 학회장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서울대 원자핵공학 학사와 KAIST 대학원 핵공학 석사, 원자력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학부 1학년이던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하며 국내 원자력 붐이 일었다. 그는 신(新) 분야에서 스스로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 2학년에 진학하며 원자력공학과를 택했다. 2001년 2월부터 원자력연에 입사해 원자력 안전 연구를 주도했다. 특히 2007년 세계적인 대형 연구시설인 '아틀라스(ATLAS)'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 아틀라스는 실제 발전소와 같은 조건에서 방사선 위험 없이 안전성을 검증하는 열수력 종합효과 실험 시설이다. 2009년 우리 원전 모델인 APR1400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2019년 미국 규제기관(US NRC) 표준설계인가 등에 기여하고, 국내 원자력 안전연구분야를 세계 선두그룹으로 견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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