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 소관 출연연 중 항우연·지질자원연만 증원
늘어나는 R&D예산, 증원요청 절반도 수용 안돼
비정규직 신규채용 절차 복잡해 인력 확보 어려워
부서간 TO 뺏기로 출연연 내 내홍 우려

올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대부분 신규 연구자 채용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 혹은 이직으로 생긴 정규직 인력은 채용하지만 그 외 신규인력 확보계획은 없다. 본지 확인결과 KIST, ETRI,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 출연연 상당수 신규증원계획은 0명이었다. 

연구회에 따르면 올해 신규 TO가 인정된 출연연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단 두 곳이다. 항우연은 올해 과학기술계 거대 사업인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 사업' 추진을 이유로 5명 증원이 인정됐다. KPS 사업은 22년부터 35년까지 14년 간 총 3조7234억5000만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지질자원연은 심(深)해저자원의 개발 등을 위한 물리탐사연구선 '탐해3호'를 건조 중이다. 탐해3호는 6926톤급으로 오는 6월 진수식 후 시운전을 거쳐 4월경 공식 취항한다. 탐해2호 보다 3배 이상 커 인력증원 4명이 인정됐다.  

◆ 증원 '0'이유?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영향

출연연 인력지원은 기획재정부에서 중재한다. 출연연에서 정규직 기준 인력증원 요구를 기획재정부에 제안하면, 내년도 예산 검토 등 인건비를 상정해 심의해 결정한다. 올해 출연연 대부분 인건비는 동결됐다.

인건비 동결 이유는 지난해 말 기재부가 최종 확정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라인에는 경상경비를 절감 및 삭감하고 공공기관 정원을 44.9만 명 → 43.8만 명으로 감소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기타공공기관 중 출연연은 정원 감소에서 제외됐지만 인력 증원 폭을 최소화했다. 출연연은 매년 한 기관 당 많게는 수십 명씩 새롭게 인력을 증원해왔다.

연구회 관계자는 "출연연 인력증원을 요구했지만 공공기관 혁신방안과 엮이면서 예년에 비해 많이 감소한 상황"이라며 "출연연에서도 해야 할 연구가 많은데 인력을 뽑을 수 없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 과학기술 중요하다면서···연구 누가하나

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에서 제출한  인력증원 요구(연구인력+행정인력)는 매년 절반도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의 경우 1248명 증원 요구중 약 8%인 99명만 반영됐다.[자료=연구회]
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에서 제출한  인력증원 요구(연구인력+행정인력)는 매년 절반도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의 경우 1248명 증원 요구중 약 8%인 99명만 반영됐다.[자료=연구회]
출연연 인력은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이전까지 꾸준히 인력을 증원했지만 사실상 연구원에서 요구하는 만큼 반영 안됐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에서 제출한  인력증원 요구(연구인력+행정인력)는 매년 절반도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의 경우 1248명 증원 요구중 약 8%인 99명만 반영됐다. 2018년부터 출연연이 요구한 정규인력이 많이 줄었는데, 이는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후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정규직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인력증원 부족으로 혼란을 겪는 것은 연구현장이다. 과거에는 증원이 반영되지 않더라도 출연연이 비정규직 연구원을 자체 공고해 채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과제를 수주했을 경우 과제가 늘어난 만큼 연구할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2018년 5월 31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채용 사전심사제운영방안'이 도입되면서 [비정규직 신규채용을 위한 출연연 사전심사→연구회 심의위원회 심의-→과기부 전달] 등 과정이 복잡해졌다. 

출연연 관계자는 "과제는 매년 수주해 늘어나는데, 그만큼 인력이 확보가 안 된다"며 "비정규직을 전혀 못 뽑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가 복잡해 꺼려진다. 그냥 있는 인력을 갈아서 연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력부족에 비정규직 고용이 쉽지 않다보니 연구자들이 택하는 것이 위탁연구다. 정책관련 연구를 하는 A 박사는 위탁 연구비율이 3배는 늘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연구 인력이 부족해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끌어안았지만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더라. 어쩔 수 없이 공동연구나 위탁연구 비율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며  "연구자들의 리소스가 외부로 나가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연구의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국책연구기관의 경쟁력이 점점 쇠퇴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자도 "A~Z까지 출연연이 연구했다면 지금은 주요부품은 다 맡겨야하는 셈인데 당장은 효율적일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연구는 깊이 있게 장기간 해야 나오는데 그런 분위기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방안은 인수직(포닥, 학생연구원, 인턴 등) 의지다. 인수직 TO도 정해져있지만 최대한 확보해 연구하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다. 출연연의 한 과학자는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어쩔수 없더라. 하지만 인턴은 수개월만 머무르고, 학생연구자도 필드에서 같이 일할 역량이 부족해 어려움이 크다"며 "연구 인력에 있어서 유연성이 필요한데 지금은 연구원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재원요청이 장기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내홍도 우려된다. C기관의 경우 올해 과학기술 역할강화에 따른 신규 조직을 출범했지만 재원요청이 받아지지 않아 타 부서의 퇴직TO를 끌어다 인력을 채웠다. 이해관계가 제대로 이뤄져 분란은 없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연구소 내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ISTEP이 발간한 2022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 보고서 자료[자료=KISTEP]
KISTEP이 발간한 2022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 보고서 자료[자료=KISTEP]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대비 R&D 투자비율이 높다. 정부 R&D 예산은 매년 증가추세로 올해는 처음으로 30조원에 진입했다. 출연연 예산도 매년 증가추세다. KISTEP이 지난해 5월 발간한 '2022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도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은 전년대비 3.7% 증가한 3조 4242억 원으로 나타났다. 예산 증가가 주춤한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증감을 보였다.

예산증가에서도 알 수 있듯, 많은 정부가 과학기술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 정부 역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과학기술이라며 과학기술 강국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인재 선발에 제한을 두며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미래설계 기조와 반대패턴을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최근 공공기관 지정해제 된 4대 과학기술원과 같이 출연연도 지정해제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연연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기재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연구기관으로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지원으로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출연연 경쟁력은 많이 뒤쳐졌다. 있는 인력마저 빠져나가려는 상황인데 이들이라도 지켜야하지 않겠냐"며 "연구소의 미래는 사람에 있다. 정년, 임금피크제, 기타공공기관 해제 등 묵은 이슈가 많지만 우선 출연연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많은 인재들이 모일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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