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지만 정보를 저장하는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다. 정보를 처리하는 고부가가치 비메모리는 개인용컴퓨터(PC)와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물량의 90%를 수입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설계전문 기업을 지원하고 테크노파크를 조성하기로 했다. 미국에 이어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기술 수준이 세계 2위인 대만의 반도체 산업 현장을 정부.학계 조사팀과 함께 다녀왔다.

타이페이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진 신주(新竹)시.작은 농업도시였던 이곳이 지금은 대만 반도체와 첨단산업의 메카로 우뚝 섰다. 이곳에 서울 여의도의 두배가 넘는 1백83만평의 테크노파크인 신주 과학공업원이 있다. 대만 사람들은 이곳을 21세기 실리콘 아일랜드로 키우는 중심지로 부른다.

과학공업원 안에 들어가면 TSMC,UMC,윈본드 등 대만의 내로라라는 반도체 회사 본사와 공장이 즐비하다. 대만반도체협회의 우소밍(吳素敏)씨는 이곳에 대만 반도체 기업의 70%가 몰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에 입주한 반도체 업체의 매출액은 1백13억달러.대만의 전체 반도체 매출액(1백40억달러)의 80%가 여기서 나왔다. 이곳은 대만 정부가 반도체와 첨단 기업의 공장·주거단지와 공원·여가 공간·대학·국립 연구소와 지원 행정기관까지 모은 산업단지.2백91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는데 반도체 업체가 1백15개,PC와 정보통신(IT)업체가 1백여개다.

부품부터 시스템 제조업체까지 한곳에 모여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 공업원관리국의 후안 뤼씨는 “대학 두곳과 국립 연구원이 있어 인력과 기술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고 행정원이 수출입 및 투자·정보를 지원하므로 기업으로선 최적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공업원 안쪽은 조성 공사가 끝났지만,고속도로에서 신주로 들어서는 입구와 주변지역에선 전자와 테크라는 간판을 내건 크고 작은 공장의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대만 반도체 주식회사가 뛰고 있다=세계 1 ·2위의 반도체 수탁가공(파운드리)기업인 TSMC사와 UMC사는 모두 대만 국립 연구소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에서 분사한 회사다. 연구원이 6천명에 이르는 공업기술연구원의 목표는 상업화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기업 만들기.과학공업원 안에 있는 36개 기업의 모태가 이 연구소다.
대만 정부는 지주회사처럼, ▶기업을 만들고 ▶공업원을 만들어 기업에게 공장 부지를 영구 임대하고 ▶투자를 알선하는 등 사업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에 직접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공업원관리국측은 대만 정부가 공업원내 기업에 투자한 자본이 전체의 4%라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대만의 미래 산업에 대한 청사진을 ‘실리콘 아일랜드’‘과학과 기술의 섬’이라고 부를 정도로 반도체 산업 드라이브 정책을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다.신주 과학공업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추난과 퉁루오 지역에 위성 공업원을 짓고 있다. 타이완 남단인 타이난지역에도 1백93만평 규모의 과학공업원 조성공사를 하고 있다.
매크로닉스 ·모젤 ·TSMC ·UMC 등 8개 반도체 업체가 타이난 공업원 안에 새로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용 기업 대출은 실세금리보다 1∼2%포인트 낮게 하고,반도체용 시설재와 원재료는 무관세로 지원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가 강하다=대만반도체협회(TSIA)는 반도체 디자인 산업의 신장을 지난해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디자인 하우스로 불리는 이들 업체는 지난해 12개가 새로 생겨 모두 1백27개 업체인데 매출이 19억7천만달러로 98년보다 58.2% 증가했다.세계시장 점유율도 19.6%로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TSIA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76.8%가 비메모리를,19.7%가 메모리,3.5%가 아나로그 설계를 하고 있다. 국가반도체계통설계중심(CIC)의 리첸이(李鎭宜)박사는 “대만의 설계업체는 공식 통계보다 3배 정도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디자인 하우스에 견학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경북대 함성호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 설계업체들은 64메가D램을 자체 기술로 설계해 로열티없이 D램을 제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강한 것은,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문화 ▶제조공장 없어도 제조만 전담하는 파운드리 산업의 발달 ▶영세 디자인 하우스의 시제품을 정부 전문기관이 만들어주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잘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87년 설립이후 미국 등 각국의 디자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제조해왔다. 이제는 시스템 업체가 원하는 반도체의 개념만 알려주면 설계까지 직접 해 생산하는 맞춤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회사 리앙몽송(梁孟松)수석임원은 “반도체 산업은 설비투자가 큰 부담인데 파운드리 업체 때문에 설비투자 없이 누구나 반도체 사업을 하게 됐다”며 “그래서 세계적으로 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가 많이 생겨났고 우리는 일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일감이 많으므로 투자도 공격적이다. 올해 8인치 웨이퍼 라인을 새로 가동했고, 내년에는 12인치 양산 라인을 착공할 계획이다. 대만 업체는 한국이 주력하는 D램 분야에서도 무섭게 따라오고 있다. 윈본드·모젤비텔릭 ·프로모스 등을 중심으로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이 15.7%를 기록했다.

◇실무를 가르치는 대학=신주에 있는 국립 칭화대(淸華大)는 반도체와 반도체 설계 관련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전기공학 부문만 따로 단과대학으로 운영한다. 교수 42명에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각각 4백여명이다. 이 대학의 22개 연구분야 중 11개,60개 실험실 중 28개 실험실이 반도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한 실험실에서 6명의 학생이 플레시 메모리를 설계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면 기본적인 반도체 설계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대학은 강조했다. 이곳에서 학생들이 설계한 반도체 도면을 CIC가 가져가 제품을 만든다. 이곳에서 학생들이 만든 디자인대로 실리콘 웨이퍼에 반도체를 구워주면 학생들은 이 반도체를 가져다가 작동한 뒤 미진한 부문을 보완해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대만에는 62개 대학교와 14개 전문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를 두고 있다. 칭화대의 후앙폰산(葉鳳生)교수는 “반도체가 미래산업을 주도할 학문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반도체학과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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