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연-서울대, 80년 넘은 라만분광학 응용 문제점 돌파구 마련
'정량적 재현성 문제' 해결…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30일자 게재

"우리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헤어져." 1990년대 후반, 6개월 째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실험실에서 '나노라만' 신호를 얻는데 매달렸던 서영덕 한국화학연구원 나노바이오융합연구센터장이 당시 아내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 정도로 라만검색기술에 매달려왔던 그는 남좌민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와 함께 공조해 80년 넘은 라만분광학 응용의 문제점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성공해 냈다. 이들이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해 낸 기술은 '나노간극-라만프로브 기반 초고감도 라만검색기술'.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논문인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30일자 새벽 온라인판에 '1nm의 나노간극이 내부에 위치하도록 DNA로 조절된 라만프로브로부터 나오는 균일하고 정량적 재현성이 뛰어난 표면증강 라만신호'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이번 성과는 1930년 노벨상 수상 이후 엄청난 응용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상용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라만분광학 신호의 '정량적 재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원천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온라인판 속보 논문은 학술적 중요도와 시급성을 고려해 매달 3~4편씩만 선별적으로 채택된 논문에 한하여 우선 공개되는 주요 논문이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 이미지. ⓒ2011 HelloDD.com

라만신호는 광자와 생체분자의 충돌 전후 에너지 차이를 가르킨다. 당구공과 당구공이 서로 부딪히면 충돌 전후의 에너지가 변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탄성충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구공과 진흙공이 충돌하면 진흙공에 에너지의 일부가 흡수돼 충돌 전후의 에너지가 서로 차이가 난다. 이를 '비탄성충돌'이라고 한다.

생체물질에 레이저를 쏘면 내부에서 생체분자와 레이저의 광자가 부딪히는 비탄성충돌이 일어난다. 이때 생체분자는 진흙공, 광자는 당구공에 해당하는데 충돌 후 생체분자가 레이저의 에너지 일부를 흡수한다. 생체분자의 구조에 따라 충돌 전후의 레이저 에너지가 조금 달라지는데 이 차이를 측정하면 광자가 어떤 생체분자와 부딪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라만신호는 몸 안에 있는 생체분자를 자세하게 분석하는데 쓰인다. 표면 증강 라만 신호는 1922년 인도의 라만경에 의해 발견됐지만, 매우 약하고 재현하기 어려운 신호의 세기로 인해, 그동안 실제 상용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표면증강 라만 효과'란 금이나 은 표면에 분자가 흡착되면 빛을 쪼였을 때 비탄성 산란되는 빛의 세기가 1억배 이상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공동연구팀은 단분자 수준의 라만 신호를 증폭함으로써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영덕 박사에 따르면 이번 연구 성과는 '정량적 재현성' 문제를 증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기존 방식은 마치 공기알들을 바닥에 던져서 그 중 두 개의 공기알이 우연히 서로 맞닿게 놓이는 방식의 확률게임적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결과 재현성과 정량성이 크게 떨어지고 결과 해석의 신뢰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컸다. 서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는 라만 염료가 부착된 DNA를 금 나노입자에 연결시키고 그 위에 금 껍질을 입히면서 금 입자와 금 껍질 사이에 초미세 1nm 간극 형성을 유도했다"며 "이때 특정한 DNA 염기서열을 이용해 초미세 나노간극을 형성하며 여기서 형성된 나노간극은 금 나노입자 알맹이와 금 나노껍질 사이에 라만프로브 내부에 균일하게 형성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각각의 나노 입자를 라만 나노경을 이용한 검색기술을 이용, 대면적으로 약 200여 개의 나노간극-라만프로브 단일 입자들을 검색하고 통계적으로 수치를 도축해 단분자 수준의 라만신호의 정량적 재현성을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연구 성과들이 우연한 경우에 발견되는 것처럼, 이번 성과 역시 우연한 기회를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 서 박사는 "사실 실험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발견했다. 2009년에는 금 알맹이에 은 껍질로 시도했었다. 이번에는 그냥 금 껍질을 입혀보자하는 데에서 출발했는데, 결과가 좋았다"며 "그 결과를 발전시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이미 국제 특허를 다 걸어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팀에 따르면 이러한 '초고감도 라만검색기술'이 살아있는 세포에 대한 세포기반검색(Cell-based Assay) 등 신약후보물질 검색(Screening)분야에서 핵심원천기술로 활용돼 신약개발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생체에 대한 체내 이미징, 나노바이오광센서, 체외진단 등의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같은 신개념 '라만기반 신약후보물질 검색 기술(Raman-based Drug-Screeing Technology)'이 보편화 되면, 앞으로 난치병 환자들이 더 빠르고 저렴하게 신약을 투여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 박사는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신약개발 시 들어가는 비용과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연구진이 질병 진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풀이 -나노 : nano, 10억분의 1미터 -나노프로브 : 주로 1-100 나노미터 사이의 직경을 가진 입자에 검지대상 물질(주로, 생체 분자)을 특이적으로 검지 할 수 있는 다양한 표면 처리를 해 준 프로브 (probe) -플라즈모닉스 : 영어로 Plasmonics. 최근 물리·공학분야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분야로서 금속의 자유전하에 의한 표류현상에 근거하며, 특히 표면플라즈몬이 레이저와 공명현상을 이루어 라만신호의 증폭을 야기시킨다. -라만 산란 : 물질에 일정한 주파수의 빛을 조사(照射)한 경우, 분자 고유 진동이나 회전 에너지 또는 결정의 격자(格子) 진동 에너지만큼 달라진 주파수의 빛이 산란되는 현상. 빛이 어떤 매질을 통과할 때 빛의 일부가 진행 방향에서 이탈해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현상을 산란(scattering)이라고 하며, 산란된 빛은 원래의 에너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원래 빛의 에너지보다 작거나 많은 에너지를 가진 경우도 있다. 산란된 빛 중 원래의 에너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산란되는 과정을 레일리 산란 (Rayleigh scattering), 에너지를 잃거나 얻으면서 산란되는 과정을 라만 산란이라고 하며, 이 산란광은 물질의 고유 특성으로 분자의 분자 구조를 추론할 수 있다. 라만산란신호로부터 얻어지는 분야의 고유진동수로부터 분자의 화학적 정체(identity)나 상태를 알 수 있다. -임팩트 팩터 : 과학저널의 국제적 영향력 지수로 10정도면 분야 최고 수준의 저널이고 20이 넘는 저널은 관련 분야는 물론 인접분야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저널이라고 할 수 있음. -표면증강 라만 산란 : 금·은 표면의 표면플라즈몬과 여기 레이저(Exciation Laser)와의 공명에 의해 라만신호가 약 백만배에서 1조배정도 이상 증폭되는 현상 -나노라만 : 나노소재를 하나 하나의 단일 입자 단위나 나노미터 단위의 위치정확도로 관찰하면서 분광학적 라만신호를 검출할 수 있는 신기술. -원자간력 현미경 (Atomic Force Microscope, AFM) : 주사 프로브 현미경 (Scanning Probe Microscope, SPM)의 한 종류이다. 이름대로, 실험시료와 초미세 탐침의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 검출하여 이미지를 얻는다. -세포기반검색 (Cell-based assay) : 세포기반분석이란 살아있는 세포(Living Cell: 정상세포, 암세포, 줄기세포, 병원균 포함)의 특성 및 생명현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기술임. 살아있는 세포를 기반으로, 가장 실제 상황에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음. 인위적으로 조성된 '시험관 약효 평가 방법(in vitro drug screening)'과 대별하여 '살아있는 세포 수준에서 drug의 약효 평가 방법(cell-based drug screening)'과 이를 이용한 target 중심연구가 현재 신약개발 핵심 방법론으로 부각되고 있음. 참고로 단일세포분석 (Single-Cell Analysis)기술은 세포를 집합 단위로서가 아니라 각각 개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로서 2007년 MIT 10대 유망기술에 선정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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