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관 두연산업 대표, 금형업종 36년 산증인
"공부못하면 기술배워? 금형이야말로 머리 나쁘면 못해"

"컴퓨터라는 게 처음 도입됐을 때였습니다. PC로 슥슥 하더니 설계 도면이 나오더라고요. 그 장면을 본 순간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학원에 등록했죠.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렇게 하다가는 평생 못 배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설계를 하는데 꼭 필요한 기계 장비를 아는 선배한테 줘버렸어요. 이젠 죽으나 사나 컴퓨터로 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발등에 불떨어졌던 거죠. 그런 무모함 덕분에 이전보다 품질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어요."

이진관 두연산업 대표는 배움을 게을리 했던 자신의 나태함을 고가의 장비와 맞바꾸는 결단 덕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두연산업은 당시 남보다 앞선 배움 덕분에 지금껏 지역에서 인정받는 금형·판금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현재 노이즈 차단용 쉴드 케이스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데 이쪽 방면에서는 국내 최고로 손꼽힌다. 최근들어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쪽으로 주문량이 많이 넘어가고 있긴 하지만, LCD 모니터 브라켓에서부터 정밀전자부품까지 안 다루는 것이 없어 만능 기업으로도 불린다. 세상에서는 흔히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말한다. 이 대표도 그런 케이스였다. 어린 시절 이것 저것 머리 굴리기 싫어 일찌기 공부를 때려치웠다. 당시 그의 머리 속에 책을 열심히 읽어 박사가 된다거나 회사에 취직해 유능한 직원으로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러자 부모님은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했고 스스로도 두말없이 눈을 돌렸다. 이 대표는 그 당시만 해도 "머리 나쁘고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자리에 올라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국가가 발전이 된다고 자인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쪽 산업이야 말로 머리가 나쁘면 할 수 없는 산업이다. 학습의 필요성을 해마다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무실 한 켠에 걸려있는 '반드시 한다, 될때까지 한다'라는 사훈 역시 내용은 같다. 될 때까지 배우고 또 배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금형이나 판금을 위한 설계도는 전문가가 아니면 설계도를 들여다 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유저(user)들을 위해 3D로 설계도를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설계도 작성의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늘 그렇듯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래, 해보자. 까짓거. 배우고 배우면 안되는 게 없는 판에." 3D 설계 기술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뒤로부터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을 때 출근하기 시작했다. 설계 기술을 익히기 위한 이 대표의 독학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치열하다는 점이다. 일단 관련 동영상을 다운받았다. 그 다음은? 그냥 닥치는 대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직접 이리저리 조작도 해보고 시연도 해본다. 시행착오의 연속 속에서 상당 기간을 보내자 그제서야 그의 머리 속에 3D 기술이 잡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을 장악할 때마다 회사로서는 또 한 번의 도약의 기회가 찾아온다. 이 대표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보고 적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발생하기 때문에 늘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 "금형이 무너지면 국가 기반 산업이 붕괴된다"

▲금형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이 대표.
  ⓒ2011 HelloDD.com

피라미드를 그려보자. 밑둥이 넓어야 안정감있는 피라미드가 완성된다. 국가의 동력이 되는 산업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기반이 되는 기본이 탄탄해야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금형은 국가 산업 조직에서 제일 밑둥에 해당되는 기본 산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금형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피라미드 구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금형없이 만들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조그마한 전자제품부터 자동차, 비행기 등에 금형이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전체적인 틀이 금형에서 나온다. 그 곳에서부터 제품의 질이 결정된다"며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금형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필요가 없는데 투자를 할리가 없다. 그럴수록 앞으로 열릴 시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투자로 금형 산업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금형 산업 진출로 야기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제일 우려되는 점은 인재 독식 부분이다. 그는 이 대목에 관해 "대기업에서 금형 산업을 시작하니까 블랙홀처럼 인력을 뽑아갈 것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기업의 금형 투자로인해 관련 인재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라며 의외로 쿨한 반응을 보인다.

이 대표는 좀 더 넓게 보자고 말한다. 금형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또한 금형에 대한 학과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인재를 다 품을 수는 없다. 한계는 있다. 넘치면 중소기업으로 올 수 밖에 없다. 기껏해야 몇 년"이라며 "눈을 어떻게 돌리냐에 따라서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자유경쟁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 속에서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진단한다.

◆ "지역 금형 산업 정말 어려워…몇몇 기업때문에 한통속 오해도"

▲두연산업 작업장 모습. ⓒ2011 HelloDD.com

"기술자들의 생각은 솔직하고 순진한 편입니다. 판매금액이 100원이라면 어떻게 해서 그 금액이 도출됐는지로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그 금액에 판매를 합니다. 그러나 경영 생각하자면 그렇지 않죠.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느끼는 효용가치에 따라 가격을 산정하죠. 100원에 파는 기술자들과 효용가치를 매겨 2000원에 판매하는 경영인들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금형 시장은 생래적인 기술자들과 생래적인 경영자들이 혼재하다 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자연히 소비자 신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적정한 금액을 제시하기 위한 논리를 나름대로 찾긴하지만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집가면 다르고, 저 집가면 더 싼 금액에 나오니 신뢰를 주기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는 "신뢰가 자꾸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일들이 한 두 번씩 생겨버리면 주변 지역 기업들이 다 죽을 수 밖에 없다. '저 지역 기업들은 저래'라는 편견이 생겨버리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사명감을 갖고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되려 피해를 보기 쉬운 금형 시장의 고충이 들여다 보이는 이야기다. 중소기업의 연구인력 부족 역시 지역 금형 산업을 위축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대기업에서 손을 대야만 최첨단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이다. 이 대표는 "만약 삼성에서 금형으로 나올 수 없는 제품을 금형으로 만들어냈다면 그 흐름에 따라 중소기업에서도 연구에 몰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의 금형 산업 투자로 중소기업의 수준도 상당히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3D업종이라는 오명 벗고 싶다"…2D로의 전향 꿈꾸는 소박한 그의 바람

▲이 대표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식구들. ⓒ2011 HelloDD.com

현재 그에게 제일 골치아픈 고민은 바로 인력 부분이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3D의 금형산업에 오려는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감성 디자인 시대로 넘어오면서 직장의 환경 역시 취업 결정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도 인력 수혈의 걸림돌로 이야기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표는 "면접을 오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연봉이 얼마인가'다. 그런 다음 천천히 주변 환경을 살펴본다. 자신들이 어떤 근무환경에서 일을 해야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일에 대한 열정이나 도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며 "요즘 사람 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3D업종으로 여겨지는 금형 산업의 현실을 바꿔보고 싶다는 그는 요즘 남들이 기피하는 3D업종으로 신화를 이뤄갈 수 있다는 역설적인 꿈을 꾸고 있다. "환경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더러운 환경부터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옷도 깨끗이 입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Dirty 부분만 없애면 3D에서 2D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부분부터 개선해 나간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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