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④]"LG, 최고리더의 뚝심지원…리튬전지 매출 4조 예상"
삼성, 펠로우십·자랑스런 삼성인상…연구원 사기 진작 중시
SK, 연구자 기질에 따른 실험실 제공

리튬전지, 3DTV,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 반도체, 자동차, 첨단 드릴쉽 등.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제품들이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처음부터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60년대 한국민은 1인당 연간소득 80달러로 제대로 제품을 만들 기업도, 기술력도 없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기술을 베끼고 따라하며 기술력을 키워나가야 했다.

이 때 국가 차원에서 기술개발의 선두에 섰던 것이 정부가 출자한 각종 연구소들이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치르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더 이상 기술 원조를 받는 나라가 될 수 없었고 모방도 점차 힘들어졌다.

국내 기업들이 선진국들의 기술을 바짝 따라 붙으며 그들의 견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에서도 방향 전환이 필요해졌다. 그동안 해오던 추격형에서 벗어나 탈추격형, 창조형 기술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세계 시장에서는 기술 변화와 사업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단순히 발빠른 대응을 넘어 선도적인 기술이 요구됐다. 그러나 과거 기술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출연연이 그 연구 내용이나 속도 면에서 더 이상 기업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기업들은 해외로부터의 기술 이전이나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를 의지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민간기업 연구소들은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등 지속적인 지원과 연구환경 조성으로 연구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소위 대박의 성과물들이 쏟아졌다. 특히 LG의 리튬전지는 그룹 총수가 10년간 믿고 지원하면서 최고 기술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이 PBS 제도에 얽매여 과제 수주를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동안 민간연의 연구원들은 연구에 집중하면서 잇따라 기술을 개발했으며 사업화에도 성공했다. 민간연이 큰 연구 주제를 정하고 함께 연구에 참여하며 굵직한 결과를 낼 때 출연연은 각자의 과제에만 매달리며 이렇다할 성과도 내놓지 못했던 것.

물론 정부출연연구소와 민간연구소(이하 민간연)는 성격이 다르다. 민간연 관계자들 역시 출연연과 민간연은 시작부터 다르다고 강조한다. 민간연의 연구성과는 당장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고 곧 회사의 사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간연의 연구원들은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구조조정 수순에 들어가는 등 심적 압박도 적지 않다.

민간연 관계자들은 "출연연은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지만 민간연은 연구결과가 바로 제품으로 이어지고 회사의 매출로 이어진다. 당연히 연구에 대한 고민부터 다르다"고 시장 지향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민간연의 연구 성격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나 지원제도가 있지만 그런 조건들이 연구에 몰입하게 하기보다는, 살아남느냐 죽느냐 치열한 경쟁마인드의 연구자세가 먼저"라며 "각종 보상은 그 뒤에 따라온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연인 LG와 삼성, SK 연구소 등은 어떻게 연구소를 이끌어가고 있을까.

◆LG 대박 연구성과 창출 배경?…회사 존폐 위협론에도 그룹 총수 '무한 신뢰'

LG에서 개발한 리튬 전지는 선두주자였던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는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CEO 구본무 회장의 뚝심있는 지원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튬전지는 1960년대 일본에서 기술이 제안되고 1991년 소니가 개발에 성공하면서 각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LG는 구본무 회장이 1992년 유럽출장을 다녀오면서 처음 접했고 연구가 시작됐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LG화학에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뛰어든 것은 1995년이다. 그러나 기술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선진기업들이 손을 들면서 임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진기업들도 포기하는 마당에 후발업체에서 성공하기는 더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임원들의 반대 의견 속에서도 CEO의 지원으로 리튬전지 연구는 계속됐고 1998년 소형전지 양산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품질 등에서 일본보다 떨어지고 앞으로도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임원들의 지적과 함께 연구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구본무 회장이 임원들을 다독이고 연구원들을 독려하면서 연구 분야도 중대형 전지로 확대했다. 2001년 마침내 세계 최초로 2200mAh(미리암페어)급 노트북용 원통형 리튬전지 양산에 성공한다. 이어 2600mAh급 전지도 일본에 앞서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하며 국내·외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LG에서 개발한 노트북용 리튬전지가 애플로부터 리콜조치를 당하게 되면서다. 당시 회사의 대외 신인도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0억 원에 달했다. 임원진들이 다시 리튬전지 연구는 회사의 존폐를 위협한다며 반대했다.

구본무 회장이 다시 나섰다. 연구에 참여하며 고생한 연구원 전원에게 해외여행을 보내주며 격려하고 성공을 장담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개발 제품은 일본에서 개발한 니켈수소 전지에 비해 50% 이상 높은 출력과 에너지를 내면서 마침내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9년 미국의 GM사로부터 전기자동차용 리튬전지 공급을 요청받으면서 구 회장의 장담은 마침내 현실이 됐다. 1998년 기술 개발 이후 10년만의 성과다.

이후 친환경자동차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자동차의 상용화가 가시화되면서 LG의 리튬전지사업도 급물살을 타게된다. 미국의 이튼(Eaton), 포드(Ford)에서도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들어갈 리튬전지 공급을 요청해왔다. LG에서 개발한 리튬전지가 일본 업체를 따돌리고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위치에 올라서는 순간이다.

LG 관계자는 "GM에 공급하는 규모만 1조5000억원에 이른다. 다른 계약 건까지 포함하면 2015년에는 4조원 매출도 가능하리라 예상 된다"고 말했다. LG의 대박 성과는 리더가 시장의 가능성을 읽고 연구원들을 신뢰하며 지속적인 지원을 했기에 가능했다. 회사 관계자는 "리튬전지 개발 시기 두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구본무 회장이 뚝심있게 투자하고 기다려주며 밀어줬다"면서 "리더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연구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기에 가능했다"고 결론지었다.

LG는 연구원들의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연구위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연구에 오랫동안 참여한 과학자에게 부여하는 직책이다. 임원과 부장의 사이의 직책으로 이들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혜택은 임원들과 동등하며 정년도 보장한다. 또 연구비, 주차장 등 세심하게 배려한다. 물론 평가도 이뤄진다. 연구위원들에 대한 평가는 3년마다 이뤄지며 매출에 따라 성과급도 책정된다.

LG 관계자는 "연구만 하던 연구원이 임원으로 임명되고 관리자로 갑자기 전환되니 연구도 안되고 관리도 안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그래서 부장과 임원급 사이의 직책인 연구위원제를 도입하게 됐다"고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종합기술원, 각종 제도 있지만 사명의식이 먼저

스마트폰의 절대 강자로 꼽히고 있는 애플과 삼성의 글로벌 특허 전쟁이 연일 치열하다. 제품이 갖고 있는 기술 하나하나에 특허가 걸려 있을 정도로 누가 기술을 선점하고 있는지 등 신경전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어떻게 세계 굴지의 경쟁사들과 기술전쟁에 임하고 있을까. 이 연구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연구원들의 연구 열정을 높이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펠로우제도, 자랑스런 삼성인상 등 다양한 제도들이다.

무엇보다 '자랑스런 삼성인상 제도'는 삼성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다. 이는 공적상, 디자인상, 기술상, 특별상 4개부문으로 나눠 지급한다. 디자인상은 창의적 제안으로 디자인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린 임직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지난해에는 스마트폰 환경에 최적화된 갤러시 S 디자인 개발을 주도한 직원이 수상했다. 기술상 역시 갤럭시 S를 개발, 모바일 시장에서 글로벌 리더의 위치를 확고히 한 2명이 받았다.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자에게는 1직급 특별승격과 함께 1억 원의 상금이 각각 주어진다. 재직 중 2회 이상 수상자로 선발될 경우 '삼성 명예의 전당'에 추대될 수 있는 후보자격도 주어진다.

또 2002년부터 세계 수준의 기술 인력에게 부여하는 최고 명예직인 '삼성 펠로우(fellow) 제도'를 마련해 연구 인력이 연구개발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대학의 석좌교수와 같은 임원급 대우를 하고 연구과제 선정, 연구비 사용 등 자율권을 부여한다. 펠로우에게는 1년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비 10억 원을 별도로 지급하며, 이외에도 스톡옵션, 삼성 주식 등의 지원으로 최고의 대우를 한다. 현재까지 10명 정도의 펠로우가 배출됐다. 이들은 연구소장이 될 수도 있고 연구담당 임원으로 승진할 수도 있다.

삼성에는 기술개발에 따른 다양한 지원제도도 마련돼 있다. 우선 국내·외에 등록된 특허에 따라 차등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SCI급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거나 장관급 이상의 상을 수상하면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지원제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제도로 연구 환경을 만들기 보다는 궁극의 목표인 사업화, 사명의식으로 움직인다고 보는 게 맞다. 민간연구소는 사업을 위한 연구로 경쟁력에서 밀리면 바로 도태된다. 사업화 마인드와 프로젝트 베이스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연구원들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그는 "갤럭시는 국내가 아닌 세계 최고의 제품인 아이폰 등과 경쟁한다. 그런 경쟁에서 밀리면 글로벌 무대에서 생존하기 어렵고 회사의 존망이 달려 있다. 출연연이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한다면 기업은 치열하게 사업화를 위한 연구를 한다"면서 "당연히 성과가 더 많을 수 밖에 없고 그러면서 각종 인센티브도 지원받게 된다. 즉 민간기업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먼저고 그 다음 상이 따라온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민간연은 살아남느냐 죽느냐일 정도로 치열하다. 연구 개발이 경쟁사보다 늦으면 바로 회사 전체가 휘청인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기업보다 먼저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그것도 더 나은 제품으로 성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는 "태생적으로 민간연은 출연연과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국책연구소가 오히려 각종 인센티브나 지원이 많다고 본다. 민간연의 치열함을 어떻게 출연연과 비교하겠는가"고 반문했다.

◆SK연구소, '도전 창의 긍정' 프로젝트로 소통과 신뢰 탄탄

SK는 연구원들이 연구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소통을 가장 중시 한다. 매월 1회씩 '아이스크림& 런타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날짜를 미리 공지해 참석 희망자를 중심으로 원장이 직접 회사의 현황과 변화상황, 외부 인사 방문 결과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또 그 자리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회사와 연구원간의 신뢰를 높인다. 올해부터는 연구원들의 창의력과 연구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도전 창의 긍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연구원 개인의 성향과 업무 방식이 다름을 인정해 각 개인에 맞는 연구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자료실을 북카페로 변화시키면서 연구원들의 이용도가 높아지고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며 아이디어 창출이 늘어남에 따라 연구실에도 변화를 주자는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조용하고 정비된 환경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마구 펼쳐놓고 시끌벅적한 상태에서 연구에 몰입하는 등 기질이 제각각이다. 이들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연구실에서 연구하게 한다면 보지 않아도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구에 집중하지 못할 게 뻔하다는 것.

SK에서는 연구원별 기질을 고려해 연구 공간을 제공한다. 또 각 부서간 원활한 소통과 융합연구를 독려하기 위해 야외 곳곳에 카페를 마련, 언제 어디서나 서로의 연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젊은 연구원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연령과 경력에 상관없이 리더로서 연구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정부출연기관의 직책에 따른 고정된 연구 분위기와 비교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플랙시블(flexible) 타임제도 도입됐다. 늦게까지 연구하는 연구원의 특성상 출퇴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정, 자신의 연구 스타일에 따라 근무가 가능하다. 연구원들은 오전 7시~10시 사이에 출근하고 8시간을 근무하면 된다. 출퇴근 시간은 각 팀별, 연구소별로 적정하게 조절하도록 해 연구의 집중도를 높였다.

SK관계자는 "민간연은 연구성과가 기업의 수익에 직결되기 때문에 연구원들의 연구 집중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원보다 더 중요한건 구성원간의 소통과 신뢰다. 신뢰를 기반으로 할 때 성과도 제대로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신뢰를 우선 순위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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