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⑦]성과 가로막는 장애물로 PBS 꼽아…'인건비' 문제 심각
'국책연구기관의 본질 다시 고찰해야 한다' 의견에 한 목소리

"웃기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저는 연구원 평가가 너무 안 좋아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어요. 한 가지 연구 주제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매겨지더라고요. 어느 순간 보니까 같이 연구하는 학생도 1명 밖에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불평은 안했어요. 그냥 연구해 나갔습니다. '두고보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만약 안 됐으면 책임지고 나가야 했었겠죠. 다행히 성과가 나서 이렇게 연구를 계속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때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 심정이었어요."

얼마 전 대박 성과를 내 언론의 집중 조명까지 받았던 K 박사 역시 PBS 때문에 쫓겨날 뻔 했던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상황이 정반대로 역전된 것은 역시 대박 성과 때문이었다. 큰 성과가 나니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전화해서는 인사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PBS 제도를 개선하고, 처음부터 과학자들에게 신뢰를 보냈다면 얼마든지 좋은 성과를 많이 이뤄낼 수 있었을 거라는 그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난다.

K 박사의 뼈아픈 지적은 계속된다. "처음부터 비교가 안 되는 제도를 만들어서 공정한 양, 같은 잣대를 들이밀어 평가를 하고, 그 결과로 출연연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계속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수 성과를 터뜨린 이른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대표 과학자들에게도 PBS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그들 역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숱한 갈등의 세월을 거쳐왔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PBS가 있었다.

"성과 낸 과학자라고 특별히 다를 게 있겠습니까. 출연연에서 일하는 과학자인 이상 PBS를 피해갈 수는 없죠. 흔히 말하잖아요. 성공한 사람에게 따라오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이라고 할까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일어선 사람들이죠. 그런데 우리에게 수많은 난관은 바로 PBS였죠. 상당 부분은 거치지 않아도 될 난관이라는 말이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가지 연구에만 몰두해 결실을 본 P 박사. 그러나 그는 사실 PBS의 혜택을 받은 과학자였다.

실장 중심 체제로 움직이던 틀에 박힌 생활이었는데 PBS로 인해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일을 안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을 때였다. 실장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관료화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정부에서 PBS를 시행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상대적이지만 실장 중심 연구 시스템이 계속 진행되자 밑에서 연구하던 젊은 연구원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실장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움츠려 있던 젊은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정부의 의도가 PBS에 반영됐었다. P 박사가 바로 그 혜택을 본 젊은 과학자 중 하나였다. PBS가 시행되고 나서는 흥이났다. 직접 과제를 따러 다녔다. 기회가 오지 않아 시도조차 못했던 때보다는 즐거웠다.

숨죽여 일했던 젊은 연구자들에게 PBS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자 시험대였다. "물론 초기에 힘들었죠. 그러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극이 됐거든요. 무엇이든 자극이 있어야 그 이상되는 결과가 나옵니다. 또한 당시의 분위기에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환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 일 안하는 사람 이렇게 분별이 생겨서 좋았어요.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부터 갖가지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구 과제 결과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볼멘 소리를 들어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대학과 비교해 보면 돈이 적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겁니까?. 결과만 놓고 볼 때 질적인 면에서 조금 차이가 나네요." 결국은 인건비 차이였다. 대학과의 인건비 차이가 왜 이렇게 많이 나냐고 물을 때면 울화통이 터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과제를 따러 가도 예산에서 벌써 대학과 차이가 많이 난다. 대박 성과를 낸 과학자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당시 과제할 때는 엄청 힘들었다"며 "PBS로 인해 대학과 기업 등 전체 연구자들과의 경쟁이 당연시됐다.

그런데 그렇게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인건비에 대한 제약을 받는 연구기관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뿐이다. 그러나 운용하는 항목이 서로 다른 기관들이 동일한 과제 예산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를 받는다. 제도만을 신경쓰다 오히려 PBS에 발이 묶여버린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인건비 그거 정말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이라는 게 뭡니까.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만든 기관 아닙니까. 그 안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한테 '당신들 월급은 직접 벌어서 써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어느 정도 경쟁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국가 기관의 연구원들이 자기 살기 위해 죽자 살자 과제에 덤벼드는 꼴은 보기에 너무 흉할 뿐더러 안타깝습니다." 연구비가 끊겨 연구하던 학생들을 집에 돌려 보낸 적도 있었다. 학생들의 희생만을 강요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P 박사는 그럴 때가 가장 속이 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슬픔을 삭힐 시간도 없었다. 바로 또다른 제안서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그래야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모든 평가가 인건비 중심으로 진행됐고, 하기 싫은 연구도 살기 위해 해야했다. 연구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제도였다.

"순수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많이 틀어졌죠. 제가 생각하기에 PBS가 IMF 위기와 만나면서 기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당시 외환위기로 피해를 본 과학자들이 많았잖아요.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타격이 컸어요. 과학자들의 감원이 남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죠. 그런 상황이 PBS랑 결합되면서 악화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이 소외되고 비본질이 우선시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돼버린거죠. 외부의 요인도 있겠지만 출연연 안에서도 암처럼 성장 해있던 다른 요소가 더 큰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복잡하게 꼬였죠."

그에게 제일 가슴 아픈 일은 반칙을 쓰면서까지 과제를 따려고 하는 일부 과학자들이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행태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로비는 기승을 부리게 됐고, 연구의 미래성이나 우수성보다는 돈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와 친밀하게 지내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됐다. 결국 과학자들이 정작 연구 현장에서 내몰리게 된 것이었다. K 박사는 "방향 수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 때도,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며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왜 과학기술계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고 있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포장 속에 가려져 있는 진짜 원흉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줄을 쥐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그 중심에 있다.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하는 기재부의 속셈이 과학자들에게는 뻔히 보인다"며 "출연연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가만히 있어도 자신들에게 과학자들이 굽신굽신하니까 그걸 놓치고 싶겠는가. 돈줄에 얽힌 먹이사슬을 파헤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PBS의 대안은 무엇일까.

P 박사는 "인건비를 보장해주는 게 제일 우선이다. 점진적으로 늘려간다고는 하는데 80%까지는 안정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며 "100%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됐을 때의 폐해 역시 생각해야 한다. 20%의 경쟁으로 과학자들에게 좋은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 박사는 "어떤 방식이 됐든 약간의 경쟁 요인은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별성과 분별성은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평등해지면 내부에서부터 불만이 생긴다"며 "중요한 것은 출연연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상투적인 말이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계의 방향을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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