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 독자개발 9년만에 시제기 완성…조종사 목숨 건 처녀비행
'최초 국산항공기' 기록에 인니·터키·페루로 수출 신기록도 세워

바람은 차갑지만 하늘은 청명했다. 멀리 펼쳐진 겨울산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1991년 12월12일.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였을 그날, 허허벌판 비행장에 선 국방과학연구소(소장 백홍열·이하 ADD) 연구원들에게는 불에 덴 자국처럼 평생 잊지 못할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국산항공기 개발이 터무니없는 일처럼 여겨지던 1983년 탐색개발을 시작해 꼭 9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KT-1 시제1호기가 처녀비행을 위해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밤새 잠을 못 이룬 연구원들이 닦고 또 닦은 비행기 동체가 아침햇살에 반짝거렸다.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정부와 군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시험조종사로 선발된 공군장교 이진호 소령은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처녀비행을 목전에 두고도 담담하게 인사말을 전했다. "ADD 연구원 여러분, 이젠 즐기십시오. 제가 그 수고를 위로해드리겠습니다. KT-1 파이팅!" 연구원들은 뜨거워지는 눈두덩을 누르며 비행전 마지막 점검에 나섰다. 10시 10분. 미끄러지듯 활주로를 달리던 KT-1이 마침내 힘찬 엔진음과 함께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쳤다. 땅에서는 "만세!" 소리가 터져나왔다.

ADD 연구원들의 회고를 통해 재구성한 21년전 오늘, KT-1 시험비행 날의 모습이다. 이날 시험비행에 성공한 KT-1은 한국 최초의 순수 독자개발 항공기로 기록되고 있다. 단군 이래 처음이다.

◆비행장 한켠 빌리고 버스 개조해 시작한 연구개발에서 방산수출 맏형 되기까지
 

▲활주로에 도열한 KT-1. 100여대가 공군에 인도돼 초보조종사의 기본훈련기로 사용되고 있다.   ⓒ2012 HelloDD.com

KT-1 개발사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이대열 ADD 책임연구원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KT-1이 우리 공군에서도 잘 사용하고 해외에서도 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니 연구개발진의 한 사람으로 감개무량할 뿐"이라고 말한다. 2

0년전 살떨리는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KT-1은 우수한 성능을 증명하듯 이제 우리나라 방산수출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1년 인도네시아 공군에 17대가 납품된 데 이어 2009년에는 터키 공군과 총 40대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또 올해 11월 페루와 체결한 20억 달러 규모의 공급계약에 따라 2016년까지 모두 20대의 KT-1이 제공될 예정이다.

KT-1의 연구개발은 1983년 4명의 연구인력이 국산항공기 개발가능성 조사에 착수한 이래 2000년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17년여의 개발 기간 동안 연구현장을 거쳐간 ADD와 방산업체 기술진만 186명에 이른다.

이 연구원은 처음 조사를 시작했던 1983년을 기억하며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연구였다. 그렇지만 사업책임자인 강위훈 박사와 우리 공군사업담당 부서원들은 90년대에 분명히 국산 항공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때가 되면 기필코 우리 손으로 비행기를 개발하리라며 암중모색을 거듭했다"고 말한다.

결국 그때는 왔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노후한 T-37 훈련기의 도태를 앞둔 한국 공군은 차기 훈련기 사업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외국에서 구매할 것인지 국내에서 자체개발할 것인지 논란이 일었다. 그때까지 몇 가지 부품을 만들어본 것에 불과했던 국내의 일천한 항공기 기술수준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 연구원은 "일찌기 항공기 수요를 염두에 두고 탐색개발 과정을 시작했던 게 주효했다"며 "결국 우리나라가 훈련기를 독자개발하자는 결정에 ADD의 사전 가능성 조사가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군용항공기 개발은 일반적으로 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토대로 시제기를 만든다. KT-1 개발 초기는 항공기 실험과 관련한 인프라가 전혀 없는 불모지 상황이었다. 비행시험을 위한 계측 및 분석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도 많은 사전준비와 경험이 요구되고 있었다. 당시 항공기 개발에 나선 연구원들의 현실을 좀더 살펴보면, 연구원들은 당장에 비행기를 넣어둘 격납고는 물론 기거할 사무실도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초기 연구를 진행했다. 비행자료 계측에 필요한 장비는 일반 버스를 구해다 탑재했다.

연구원들은 첫 시험비행이 성공한 뒤에도 한참 후인 1994년에야 비행장에 독립된 연구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정부·군과 합의한 사업종료 시점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법은 강행군뿐. 연구원들은 집에 갈 생각도 못한 채 '월화수목금금금'과 밤샘을 이어갔다.

◆떨어지고 날아가고 추락하고…최초 국산항공기 개발의 아찔한 순간들
 

▲KT-1은 인도네시아, 터키 수출에 이어 페루 공군과도 20대 공급계약이 체결됐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공군에서 운용되고 있는 KT-1B의 비행 장면.   ⓒ2012 HelloDD.com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개발인 만큼 아찔한 순간도, 실소를 자아내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실물 크기의 비행기 모형(mock-up)을 만들면서는 협력업체가 보내온 부품들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연구원들이 톱으로 잘라가며 설계도면에 맞추는 일도 있었다. 또 국내에 비행기류 등을 실험할 풍동실험실이 없어 외국에 축소모형을 들고 나가야 했다. 더한 일은 풍속을 높이자 가지고 간 모형의 부품들이 와장창 떨어져나간 것이다. 국내 연구진들은 외국 풍동실험실 관계자들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벌개져야 했다.

가장 큰 사고는 KT-1에 '웅비(雄飛)'라는 새이름이 붙고 명명식 행사를 준비하며 벌어졌다. 시험기 1호가 해외에서 구매한 사출좌석의 오작동으로 비행중 조종석 뚜껑(캐노피)가 날아가면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조종사들은 다행히 안전하게 탈출했지만 자칫 개발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을 큰 사건이었다.

이 책임연구원이 기억하는 또 한번의 아찔한 순간은 1995년 무렵의 일이다. 그는 "숀 로버트라는 유명한 시험비행 전문가가 KT-1을 몰아본 뒤 언급한 한마디가 개발사업 전체를 위기로 빠뜨릴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비행기야(It's funny airplane)"라는 말이었는데 이 말 속에는 초보조종사들이 비행기를 조종하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내포돼 있었다. 예정된 개발과정 종료시점까지는 4개월이 남은 상황. 이 연구원 등은 단시간 내에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일명 '스컹크팀'을 구성해 밤낮으로 오류수정에 나선 끝에 또 한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때 연구에서 KT-1의 최대강점 중 하나인 '스핀비행' 특성이 추가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도 마련됐다. 스핀비행 특성은 항공기가 뒤집어진 상태로 비행하다가 다시 원상태를 회복하는 기능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KT-1만이 시현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숱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한 KT-1은 그 결과 동급 항공기 중 세계 최고의 성능을 인정받으며 한국 공군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공군 조종사 양성에 사용되고 있다. KT-1은 최초 임무가 훈련기인 만큼, 초보 조종사의 비행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됐다. 동급 기종 중 최초로 100% 컴퓨터 설계가 적용됐고, 최고의 회전성능과 낮은 실속속도를 갖고 있다. 또한 편대비행, 야간비행, 계기비행을 비롯 저중고도 항법비행과 여러 가지 기동비행 성능이 탁월해 약간의 성능개량을 거쳐 경무장이 가능한 전술항공통제기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 연구원은 "항공기 자체개발은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게 되면 이어서 계속해 새로운 형태의 비행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KT-1을 씨앗으로 T-50 고등훈련기가 개발된 데 이어 이제 순수 국산전투기를 볼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나로호 발사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KT-1 개발이 시도될 때도 지금 나로호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며 "리스크와 시행착오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연구개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성공에 이를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국방과학연구소의 특성상 연구자들의 노고와 성과는 가려지기 쉽지만 대신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큰 자부심을 상으로 받았다"며 "황무지에서 고생했던 그들의 경험이 지금 우리 항공산업 요소요소에서 발전의 씨앗이 되고 있는 만큼 나로호 역시 지금의 어려움이 장차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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