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곽재원 한양대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과총 부회장)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일주일간의 러시아, 베트남 순방외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 9월4일~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박 대통령의 다자 외교무대 공식 데뷔라는 역사성 못지않게 새로운 경제협력의 단서를 제공했다.

9월6일 같은 날 있었던 박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메르켈 총리의 정상회담-. 이 두 건의 정상회담은 뚜렷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우선 이들 정상은 같은 연배 (박 대통령 52년생, 시진핑 주석 53년생, 메르켈 총리 54년생)의 같은 이공계 출신 (박 대통령 전자공학, 시진핑 주석 화학공학, 메르켈 총리 물리화학) 으로서 세계의 가장 역동적인 경제 국가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세 나라는 지금 정치·경제 등 전반에 걸쳐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고, 중국은 EU를 빼고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독일의 최대 수출국이었던 미국이 2011년 중국으로 바뀌었다. 한국에 있어 독일은 5대 교역국이다. 세계 2위 경제국가 중국, 4위 독일, 11위 한국의 3국 교역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첨단제품에서 일반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교역품목도 넓어지고 있다. 아직은 경쟁품목보다는 보완품목들이 많아 세 나라의 무역마찰은 적은 편이다. 여기에는 서로 배울 게 많은 독특한 경제·산업구조도 한 몫 한다.

박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중소기업과 신재생 에너지 분야 협력 등 창조경제에 대한 대외협력기반을 확대하기로 했는데, 메르켈 총리의 초청으로 내년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이 성사되면 양국 간 협력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는 22일 총선을 앞둔 메르켈 총리는 승리가 확실시 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이 올해 미국을 제쳐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수출국으로의 부상을 꿈꾸고 있다.

주석 취임 후 첫 국제회의에 나온 시진핑 주석은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에서 ‘뉴턴 역학’의 3법칙을 인용하며 중국과 독일관계 발전에 대한 강한 기대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화사 통신에 의하면 시진핑 주석은 협력의 ‘관성’을 유지하여 고위급 교류를 계속하면서, 실무협력에서 ‘가속도’를 붙여 무역마찰 등 ‘반작용’을 줄여 나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공계의 명문 칭화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시 주석이 물리학자 출신의 메르켈 총리와 이과의 공통항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중국은 EU와 태양광 제품과 전기통신분야에서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

두 번째는 세 정상이 경제정책의 중심에 과학기술정책을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의 창의력과 과학기술, ICT가 기반이 되어 운영되는 경제체계를 창조경제라 정의하고 이를 끌고 갈 컨트롤 타워로 미래 창조부를 신설했다.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13~2017년)은 창조경제의 백두대간인 셈이다. 대통령의 창조경제 의지는 이번 G20의 선도발언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학원방문 등을 통해 현실적이고 종합적인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과학기술임을 누누이 강조하며 과학기술을 통해 중국의 꿈을 실현하자고 한다. 국가 12차 5개년 과학기술발전 계획’(2011~2015년) 의 중간에 출범한 시진핑 주석은 ‘과학기술진보법’(2008년 개정)에 명시된 과학기술투자의 증가율은 국가재정수입의 증가율을 상회한다', '국내총생산(GDP)에 점하는 연구개발비의 비율에 대해서도 이에 따라 인상 한다'는 규정을 더욱 확고히 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GDP는  4배가 늘며 일본을 능가했다. 연구개발비는 같은 기간에 7배가 됐다. 시 주석은 최근 과학기술이 경제적 기여도를 한층 높여야 한다며 과학기술정책을 ‘과학기술이노베이션정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대학의 질적 향상, 인재양성, 일자리 창출, 벤처 창업, 정부 부서간 칸막이 제거, 횡단적 연구 등 정책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 주석이 미국과 기후변화, 군사교류, 셰일가스 분야에서 협력하면서 새 로운 대국관계 정립에 나서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시 주석과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번 G20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

지난 2005년 첫 여성이며 첫 동독출신으로 정상에 오른 메르켈 총리는 다음해 독일연방정부의 연구개발과 이노베이션을 위한 포괄적 전략인 ‘하이테크 전략’을 마련, 통일 독일의 사실상의 과학기술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08년에는 연방과 주정부의 교육서미트를 열어 2015년까지 GDP의 10%를 교육과 연구에 투입하기로 정했다. 메르켈 총리는 2010년 하이테크 전략을 수정한 ‘하이테크 2020’을 책정, 독일이 금후 힘을 쏟을 분야를 발표했다. 중점분야는 ‘기후 및 에너지’ , ‘건강 및 영양’ , ‘교통 및 수송’, ‘안전’,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으로 집약했다.

이에 더해  메르켈 총리는 ‘ 퀄리피케이션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는 독일이 장래에도 꾸준히 산업을 유지하고, 고용증대를 위해서는 인재의 능력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초해 교육과 연구에 대한 투자를 합쳐 GDP 10%로 한다는 2008년 결의를 재삼 확인한 것이다. 특징은 교육에 7%, 연구에 3%를 투입하는 수치목표를 정한 것이다. 이 목표는 이미 9.5%를 넘어서며 올해 연구개발투자 3% 달성을 바라보고 있다. 이 덕분에 지난 2005년~2011년 사이에 걸쳐 연구개발 관련 분야에서 9만2천명의 고용이 생겨났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학계와 산업계가 조성한 프로그램 ‘2020-이노베이션을 위한 파트너십’이라는 컨소시엄을 통해 지역 격차 해소에 나섰다. 통일은 되었지만 서부독일은 주로 대기업에 의한 산업연구에 막대한 민간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반해 동부독일은 과학적 노하우와 기술전문가들이 풍부함에도 많은 거점과 소규모 구조로 분산돼 제 역량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산업계 700개사를 포함한 1천개가 넘는 파트너기관(이중 900개 파트너기관이 동부독일)이 참여하여 동부독일과 서부독일 기관간의 전략적 협력을 추진 중이다. 메르켈 총리는 과학적 전문분야, 이업종 기술 및 산업 분야, 시장 등의 경계를 극복하려는 이 프로그램에 2019년까지 약 7천억원을 투입할 생각이다.

세 번째는 이들의 경험적 공감대가 그것이다. 박 대통령은 70년대 과학기술입국의 경제 부강책과  새마을 운동의 사회 혁신책을 실천하면서 전 과정을 지켜봤다. 시진핑 주석은 문화대혁명기에 7년간의 하방 생활을 하면서 피폐한 농촌을 보며 실사구시의 생산성 향상 운동에 몰입했다. 이른바  지방의 과학화운동이었다. 10대말에서 20대 초반의 하방은 그를 극단적 이념을 싫어하는 체질로 만들었고, 상하이 서기 (2007년)를 거치며 시장경제를 체득하게 된다. 2000년 저장성 간부 시절부터 시 주석이 공을 들여온 대만관계는 이제 경제협력을 넘어 경제통합을 얘기할 정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1989년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해 독일재통일 조약이 발효되는 과정을 물리학자로서 지켜보다 곧바로 정치에 입문한 메르켈 총리는 통일전후의 과학기술의 역할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6개월 후에 서독과 동독 과학자 대표가 만난 ‘사이언스 서미트’에서 정치통합에 앞서 과학통합을 선언하고, 통일 후의 독일의 비전을 제시한 역사를 중시한다.

통일 후 그는 대학과 연구소의 대대적인 개편, 연구체제 개혁, 지역 과학기술진흥계획, 기술기능교육 강화, 환경정책, 신재생에너지 및 바이오 정책 등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됐다. 2005년 총리에 오르면서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시각은 강력한 실현으로 이어져 왔다. 오는 22일 총선에서 그가 승리한다면 독일의 안정은 물론, EU 내에서 완벽한 지도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의 약 20% (GDP비중)를 쥔 한·중·독 3개국은 세게 산업경제 리더십의 원천이다. 박근혜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메르켈 총리는 G20에서 단연 주목됐다. 그렇다면 과학기술로 좋은 상생관계를 가진 이들 정상이 국제 경제무대에서 함께 펼치는 윈-윈-윈의 리더십도 가능하지 않을까. 서울(S)-베이징(B)-베를린(B) 을 잇는 이른바 ‘SBB 창조경제협력 라인’을 생각해 본다. 
  <곽재원 한양대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 과총 부회장>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