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 봄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올려다 보이는 느티나무의 새잎들은 연록의 생명빛으로 나에게 삶이란 참 아름답다고 말해주곤 한다. ⓒ2013 HelloDD.com
이 봄에도 어김없이 느티나무에는 여린 갈색빛의 어린 잎들이 돋아 나고, 이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록빛 잎으로 변해 가면서 봄의 깊이를 더해간다. 느티나무는 봄뿐만 아니라 여름과 가을에도 아름다운 나무이지만 특히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가 더욱 아름답다. 이 즈음 느티나무의 새잎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의 피사체 중 하나가 된다. 봄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올려다 보이는 연록의 생명빛은 나에게 삶이란 참 아름답다고 말해주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엔 느티나무의 봄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젊은 나무뿐만 아니라 오래된 나무도 매년 봄이 되면 변함없이 여리면서도 생명의 빛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사랑스러운 새잎들을 다시 피워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기 때문이다. 감탄과 함께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신비로움이 부러웠다. 아마 이제 내가 인생의 제 2막을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이 봄에도 어김없이 느티나무에는 여린 갈색빛의 어린 잎들이 돋아 나고, 이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록빛 잎으로 변하여 가면서 봄의 깊이를 더해간다. ⓒ2013 HelloDD.com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다. 오래된 시골 마을에 가면 마을 어귀에 고목이 되어 넉넉한 자태로서 있는 느티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나무들은 대부분 이백 살은 족히 넘은 경우가 많다.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살아있는 고목의 나이를 추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잘라서 나이테를 볼 수 없으니 줄기에 작은 구멍을 내어 나무의 속을 뽑아내어 나이테를 세는 생장추라는 기구를 사용하는데, 오래된 고목의 경우 속이 썩어 있거나 비어 있어 이 방법이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럴 경우 주변에 있는 같은 수종의 비교적 젊은 나무들의 나이를 조사하여 나이테의 변화 정도를 추정하고 이를 근거로 썩었거나 비어 있는 부분을 유추하여 나이를 어림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 느티나무는 봄뿐만 아니라 여름과 가을에도 아름다운 나무이지만 특히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가 더욱 아름답다. ⓒ2013 HelloDD.com
이 밖에도 평균적으로 일년에 굵어지는 정도를 감안하여 나무의 굵기를 통해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나무가 자라는 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날 수 있어 부정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추정한 나이로 1천년 넘게 산 나무가 우리나라에 60여 그루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느티나무가 25그루라고 하니 정말 장수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나무다. ‘오수의 개’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무가 바로 느티나무다.

▲ 젊은 나무뿐만 아니라 오래된 나무도 매년 봄이 되면 변함없이 여리면서도 생명의 빛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사랑스러운 새잎들을 다시 피워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2013 HelloDD.com
신라시대에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영천리에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아마 개를 무척 사랑해서 늘 대리고 다녔던 것 같다. 하루는 이웃마을에 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 풀밭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들에 불이 나서 불길이 점점 가까이 다가 오고 있었다. 아마 주인을 깨우려 짖기도 하고 옷을 물고 흔들어도 보았겠지만 만취한 주인이 일어나지 않자, 개는 가까운 냇물에 가서 몸을 적셔 주인 주위의 풀밭에 뒹굴면서 불이 주인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수십 번을 이렇게 하는 중에 주인이 깨어나 보니 개는 탈진하여 쓰러지고 자신은 개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인은 개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묻어주고 그 무덤에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나무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그 후에 그 나무 지팡이가 살아나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오수(獒樹 : 개나무)라 부르고 이 마을을 오수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나무가 느티나무이다.

▲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다. 오래된 시골 마을에 가면 마을 어귀에 고목이 되어 넉넉한 자태로서 있는 느티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대전 성북동에도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봄빛으로 단장을 하고 마을 입구에 서서 마을에 오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2013 HelloDD.com
이 이야기는 고려시대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에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뒷부분에 나오는 느티나무 이야기는 식물학적으로나 현재 그 마을에 있는 나무의 추정 나이 등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느티나무는 꺾꽂이가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랴. 느티나무는 이렇게 마음 따뜻한 스토리를 가진 나무라는 것이 나는 좋다.

우리 동네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비록 수백 년이 된 거목은 아닐지라도 봄이면 연록빛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여름이면 푸르른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며, 가을이면 노랗고 붉은 빛으로 치장하여 한 해의 말미를 곱게 장식해 주는 느티나무들이 가까이 있음을 좋아한다.

▲ 우리 동네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비록 수백 년이 된 거목은 아닐지라도 봄이면 연록빛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여름이면 푸르른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며, 가을이면 노랗고 붉은 빛으로 치장하여 한 해의 말미를 곱게 장식해 주는 느티나무들이 가까이 있음을 좋아한다. ⓒ2013 HelloDD.com
나는 이 나무들이 우리가 떠난 뒤에도 수 백 년을 더 살아 대덕연구단지가 아름드리의 느티나무 숲 속에 자리한 전통과 최첨단 과학기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네가 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이 안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해 주기를 원한다. 또한 봄이 되면 사랑스러운 생명의 새잎을 내어, 나에게 말해주었듯이 우리 후손 중 누군가에게도 “삶이란 참 아름답다”고 말해주기를 소망해 본다.

느티나무/김필연

해 아래 눈 부신 너, 느티나무여
네게서 더 찬란한 해를 보노라

달 아래 수려한 너, 느티나무여
네게서 더 사랑스런 별을 세노라

봄이라 움 트는 잎새 연초록물 흐르고
여름이라 맑은 밤 은하에 별이 진다

가을 물든 저녁놀 단풍되어 떨어지면
첫 눈 같은 설렘이 겨울되어 다가서면

아아 기억 속에 새 한 마리 나래 벋어 가노라

 

▲ 나는 이 나무들이 우리가 떠난 뒤에도 수 백 년을 더 살아 대덕연구단지가 아름드리의 느티나무 숲 속에 자리한 전통과 최첨단 과학기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네가 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이 안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해 주기를 원한다. 또한 봄이 되면 사랑스러운 생명의 새잎을 내어, 나에게 말해주었듯이 우리 후손 중 누군가에게도 “삶이란 참 아름답다”고 말해주기를 소망해 본다.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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