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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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HelloDD.com |
끝날 것 같지 않게 세차게 몰아붙이던 여름 무더위가 갑자기 누그러지면서 아침 저녁으로는 오히려 쌀쌀한 계절이 되었다. "정말 이게 다야?"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싱겁게 끝마무리를 하는 여름이 쿨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뭔가 뒤끝이 있을 것 같은 불안감도 있다. 하지만 계절은 이미 여름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지점에 와 있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만일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사물을 보면서 정말 모두 똑같이 인식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글쎄" 하며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사진은 무엇으로 찍는가? 물론 카메라일 것이다.
뇌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카메라의 원리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먼저 눈을 통하여 들어온 빛을 망막에서 감지하고 이 신호가 시신경을 통하여 뇌의 시상이라는 곳을 지나 대뇌의 뒷부분에 위치한 시각령으로 전달되면 신호를 재구성함으로써 비로소 색과 밝기를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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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다. 디지털 카메라의 화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는 렌즈와 사용하는 감광소자, 그리고 신호처리를 위한 알고리즘을 들을 수 있다. 요즈음은 1000만 화소 이상의 감광소자를 사용하는 카메라들이 많아져 이전의 필름카메라와 거의 화질의 차이를 느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눈의 망막은 화소 수가 얼마나 될까? 우리 눈에는 빛의 강약을 감지하는 간상세포라는 것과 색을 구분하는 원추세포라는 것이 있고 이 세포들이 각각 시신경과 연결되어 있다. 한 쪽 눈에서 뇌와 연결된 시신경의 수가 대략 100만 개 정도가 된다고 하니 화소 수로만 보면 우리 눈은 대략 100만 화소짜리 초기 디지털 카메라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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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이 화소 수가 적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거칠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 뇌 속에 있는 화상처리 알고리즘이 지극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즉 뇌에서 화소와 화소 사이를 주변의 정보를 이용하여 절묘하게 메워 주기 때문이다. 사물의 형상과 움직임은 뇌의 또 다른 부위에서 인식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결국 사물로부터 오는 빛은 눈으로 감지하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형상을 구성하고 인지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경험이나 관점에 따라 같은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상당히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듯 좋은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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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피사체 중에 강아지풀이 있다. 그런데 강아지풀은 역광으로 바라보면 더 아름다운 풀이다. 나는 강아지풀을 보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 풀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사진은 관점의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동일한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여름이 뒤돌아서 떠나려 하고 있다. 무덥고 힘들었던 여름이었지만 막상 떠나가는 여름의 뒷모습에선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진다. 늦여름의 뒷모습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면 지난 여름도 힘들기만 한 게 아니었다. 들판에는 여름이 키워준 벼 이삭이 익어가고 그 위에 떨어지는 햇살은 이제 한결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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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늦여름 햇살에 고운 날개를 접고 해바라기를 즐기는 표범나비 역시 여름 내내 번식을 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시골 집 돌담 너머 백일홍도 백일 동안을 함께 했던 여름을 아쉬움 속에 배웅한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여름 동안 간간히 꽃을 피워내던 산수국도 이제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꽃잎 위에 맺힌 물방울 속으로 스며드는 늦여름 햇살이 유난히 영롱하다.
늦여름/정석희
8월의 돌담 사이
웃음으로 반기는 봉숭아
어여삐 드러낸 뽀오얀 젖가슴은
연분홍 그리움으로
신접살림 피웠다.
엊그제 성화이던 폭염은
솔바람 타고 숨었나
갓 구워낸 옥수수 내음
가을을 손짓 한다.
한 풀 고개 숙인 여름은
강아지풀 앞세우는데
처녀가슴 덩달아 익어가는 날
사나이 마음은 들판을 앞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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