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
피사의 사탑.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저의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은 사람의 몸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가르쳐 주지 않고, 오직 옛날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만 외우게 합니다. 저는 의학보다는 수학이 더 재미있습니다. 오스틸로 리치 교수님께서도 저에게 수학을 공부해 보라고 하셨어요. 아버지, 저는 수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1583년 10월 30일. 갈릴레오 올림.'

16세기 이탈리아에서도 자녀들을 의대에 보내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위의 편지를 보면 갈릴레오도 부모님의 희망과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 듯 하다.  갈릴레오가 이때 부친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었으면 후대 사람들은 아마 갈릴레오를 지금처럼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천문학을 연구해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고 이일로 해서 종교재판을 받은 후 많은 고문을 당하면서 결국 지동설의 주장을 포기했다. 

이로부터 360년 지난 후인 1992년 로마 교황청은 갈릴레이의 재판이 잘못된 것을 인정했다. 세계적인 천문학자가 된 갈릴레오는 피사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대학을 다녔고 후에 피사대학 교수가 되어 물리학을 가르쳤다.  지난 1월 이탈리아에 여행가서 갈릴레오가 태어나 젊은 시절까지 드나들며 많은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웠을 피사의 사탑을 방문했다.

어릴 적에 교과서를 통해서 본 피사의 사탑이 계속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어 위험하다는 소식을 해외토픽으로 볼 때마다 무너지기 전에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에 갈 기회는 오지 않았다.  피사의 사탑과 필자와의 인연은 대학 3학년 때인 1973년부터 시작됐다.

피사의 사탑이 계속 기울어져서 위험하게 되자 피사시는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게 하는 아이디어를 국제적으로 공모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공모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10만 달러(약 1억 원)라는 우수작 상금도 컸지만 서울의 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좋은 아이디어 같다고 조언해주셔서 몇 달간 준비해 15 페이지짜리 제안서를 피사대학에 제출했다.

물론 나의 아이디어가 선택되지는 않았지만 국제적인 아이디어 공모에 참여한 것은 좋은 도전이고 추억이었다. 이러한 추억 때문인지 더욱 더 피사의 탑을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드디어 버스가 피사 시내로 들어와서 대성당 근처의 주차장에 섰고 걸어서 20분 정도 가니 피사의 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높이 55m의 탑은 정말 눈으로 보기에도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 피사에서 자랐던 갈릴레오도 이 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많은 상상을 했을 것이다. 갈릴레오가 훌륭한 천문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기울어져서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신비스러운 피사의 사탑근처에서 살았던 것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탑이 기울어졌을까? 언제 넘어질까? 또한 오르내리면서 무엇인가 여기에서 실험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어렸을 때 단풍나무에서 빙그르 돌면서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가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집에 있던 깊은 우물에 단풍나무 씨를 주어다 종일 떨어뜨리며 단풍나무 씨가 돌면서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집주인에게 혼난 적이 생각난다.

스티브 잡스가 어린 시절에 실리콘밸리에서 살아서 주변에 있는 나사(NASA) 에임스센터의 초대형 컴퓨터 등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신기한 것들을 볼 기회가 많았던 것도 후에 애플을 설립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스티브 잡스가 물리학과를 다니다 말았지만 그는 과학자나 기술자는 아니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업가에 더 가까울 것이다.

대전은 과학의 도시답게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것이 참 많다. 특별한 과학지식을 청소년들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청소년들에게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상상력을 기르고, 미래의 꿈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도전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고 꿈을 찾는데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볼 것이 많은 대전의 연구 단지를 청소년들의 천국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많은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채연석 박사는

채연석 박사는 200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수장을 지낸 바 있으며, 2005년 KSR-Ⅲ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연구원에서 전문연구위원과 UST 교수로 활동 중 입니다.

채 박사는 로켓 박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우주소년단 부총재로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우주시대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또  '채연석의 로켓과 우주개발'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글로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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