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분야 세계적 석학 김정상 美 듀크대 교수 표준연 방문
노벨상 근접 과학자 평가…"국가표준기관·대학 협력이 관건"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김정상 미 듀크대 교수.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김정상 미 듀크대 교수.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양자컴퓨터, 반드시 된다고 믿는다."

김정상 美 듀크대 교수는 자신있게 말했다. 물론 단서도 달았다. "과학적으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것을 과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느냐,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로 사용하게 되느냐죠. 여기서부터는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김 교수가 지난 16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강대임)을 방문했다. 양자컴퓨터 연구개발(R&D) 현황과 미래 전망을 논의하고, 한국에서의 양자컴퓨터 R&D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표준연을 방문해 박승남 박사(기반표준본부장), 유대혁 박사(시간센터장), 정연욱 박사(양자측정센터)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김 교수와 유 박사, 정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 동기다. 몸담고 있는 곳이 다르고, 연구분야도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양자물리학을 기반으로 R&D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입자가속기처럼 되느냐 컴퓨터처럼 되느냐  

김 교수는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 과학자 가운데 노벨상에 근접한 인물로 자주 거론된다.

1999년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양자정보처리기술의 핵심장치인 '단일광자 빔 발생장치(single-photon turnstile device)'를 개발해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 장치는 작은 구멍으로 물분자가 하나씩 빠져 나가게 하는 물총처럼 광자를 하나씩 규칙적으로 만들어내는 광원으로 이 장치 개발은 관련 학계가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였다.

양자통신, 혹은 양자컴퓨터 실현을 위한 연구를 개척한 김 교수는 이후 미 벨연구소에 합류해 '미세 전자기계장치(MEMS)' 기술에 쓰이는 세계 최초의 대형 전광스위치를 개발하는데 일조했다. 또 루슨트테크놀로지사의 '람다라우터 전광스위치' 상용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현재 김 교수는 무선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양자정보네트워크, 양자컴퓨터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상 교수와 양자컴퓨터의 연구개발 현황과 미래를 토론하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과학자들. <사진=김형석 기자>
김정상 교수와 양자컴퓨터의 연구개발 현황과 미래를 토론하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과학자들. <사진=김형석 기자>

김 교수는 입자가속기와 컴퓨터를 사례로 들며 양자컴퓨터의 미래를 설명했다. 모두 1940년대부터 초기 연구가 진행됐고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입자가속기는 연구자들만 사용하는 기술로 제한되면서 여전히 특정 분야에서만 사용된다. 불행하게도 크기를 줄이지도 못했다. 반면 컴퓨터는 연구자나 특정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 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용자가 확대됐다. 지금은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진화했다.

"양자컴퓨터의 미래도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입자가속기와 컴퓨터도 초기에는 과학적·이론적으로만 구현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어떤 운명을 맞을 지 아무도 알 수 없었죠. 하지만 입자가속기는 여전히 과학적 R&D에만 사용되고, 컴퓨터는 사람들의 생활로 들어왔습니다. 양자컴퓨터의 운명 역시 실현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누가 사용하고, 어떤 분야에서 필요로 하느냐가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양자물리학에서 노벨상 수상자 대거 배출한 이유는?

또 하나의 문제는 양자컴퓨터 R&D에 대한 지원과 연구인프라다. 양자컴퓨터 분야는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비결은 국가연구기관과 대학과의 협력이다. 실제 미국은 표준기술연구소(NIST)와 콜로라도대가 협동으로 만든 '실험천체물리학합동연구소(JILA)'에서 양자컴퓨터 등 양자물리학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JILA는 1962년에 설립된 후 양자물리학 분야에서만 4명의 노벨상을 배출했다.

NIST는 매릴렌드대와 'JQI(Joint Quantum Institute)'도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양자컴퓨터등 양자를 이용한 정보처리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김 교수는 21세기 미래를 바꿀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 양자 분야에서 후발주자에 속하는 한국이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가연구기관, 특히 양자 분야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표준연구기관과 대학의 협력을 강조했다.

"인적·기술적 협력이 양자컴퓨터 연구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연구기관이나 대학 독자적으로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는데는 여러가지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죠. 미국이 어떻게 양자컴퓨터 분야 연구를 활성화하고 노벨상까지 배출했는지를 눈여겨 살펴봐야 합니다."

이러한 출연연과 대학의 협력은 그야말로 윈-윈(Win Win)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미국내에서도 중상위권에 머물던 콜로라도대가 양자물리학 분야에서는 미국은 물론 세계 최정상을 자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양자역학과 양자정보이론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흔히 양자를 이용하면 세상의 모든 암호를 풀 수 있고, 반대로 아무도 풀 수 없는 암호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한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전자기반 컴퓨터의 성능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1000비트(bit)의 양자컴퓨터를 만들면 이론적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숫자를 헤아릴 수 있다.

물론 양자컴퓨터는 아직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미국처럼 국가와 대학이 이 연구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김 교수 역시 "언제가 (양자컴퓨터가)실현된다고 믿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정상 미 듀크대 교수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양자컴퓨터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김정상 미 듀크대 교수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양자컴퓨터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표준연 일부 연구과정서 양자컴퓨터 난제 해결 실마리 발견 

국내에서는 일부 대학 랩에서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고 있지만 이 분야를 단독 프로젝트로 수행하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없다.

양자컴퓨터의 완전한 실현까지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 단일양자 수준의 측정제어기술 확보는 양자컴퓨터가 완성되기까지 풀어야할 대표적인 숙제다. 표준연 양자측정센터 정연욱 박사팀의 경우 초전도 현상을 이용해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정 박사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한다기 보다는 핵심요소인 큐비트의 측정제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래 연구주제는 '잡음온도계' 개발이었다. 그런데 잡음온도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을 초전도 양자컴퓨터에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또 한 분야는 유대혁 박사팀의 원자시계. 유 박사팀은 올해 초 1억년에 1초 오차를 갖는 '이터븀 원자 광격자 시계'를 개발했다. 레이저 냉각기술로 이터븀 원자를 격자상태의 구조로 고정시킨 후 고성능 레이저 기술을 통해 같은 값은 레이저 주파수를 쏘이는 일련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인데, 이 과정에서 얻은 기술 역시 양자컴퓨터에 응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결국 양자컴퓨터의 원리상 이러한 초전도와 원자시계 분야에서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며 "현재 표준연의 R&D 수준과 국내 대학의 인적 자원이 결합해 공동연구를 진행한다면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도 앞으로 훌륭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교수는 이날 박사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 표준연의 첨단 연구시설과 실험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 표준연은 김 교수와 연구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자컴퓨터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연구원들이 광격자 시계에서 원자 진동수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양자측정센터 연구진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연구원들이 광격자 시계에서 원자 진동수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양자측정센터 연구진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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