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히라사와 동경대 명예교수의 고언
"초기 단계부터 미션오리엔티드 연구하는 것이 중요"

"R&D혁신?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느 국가나 혁신을 위한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과학계는 쯔쿠바연구학원도시를 반면교사 삼아라."

일본 과학기술 정책연구의 대부 히라사와 료(平澤 泠) 일본 동경대학교 명예교수의 고언이다.

대전현충원에 안치된 故 최형섭 장관을 참배하기 위해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히라사와 교수는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의 총괄정책연구주임을 역임했으며,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 탄생에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그는 현충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故 최형섭 장관과의 인연을 기리며 한국 과학기술 정책 전반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을 던졌다. 히라사와 교수는 쯔쿠바의 정체된 이유를 '민간 산업과의 연계 부족'이라고 정의하며 한국 과학계, 특히 대덕특구가 쯔쿠바를 반면교사 삼아 발전해 나가길 기원했다.

◆ 다음은 히라사와 교수와의 일문일답

▲ 매년 故 최형섭 장관을 참배하기 위해 현장을 찾는다. 최 장관과의 인연은.

→ 최형섭 장관과는 80년대 후반부터 알기 시작했다. 포항제철 관련해서 자문을 받기 원한 그의 초청으로 부산항에 도착한 뒤, 포항으로 이동해 그를 만났다. 나의 지도교수였던 무카이보 다카시 교수님도 최 장관과 각종 회의에서 만나서 잘 알던 사이였다. 한일간 과학기술교류회를 1~10회 진행했는데 지도교수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나와 최 장관이 각각 한·일 양측 대표를 맡았다. 1회때 제주도에서 진행했는데, 태풍이 거세 무산될 위기였다. 최 장관이 한사람이라도 오면 하자고 해서 각자 어렵게 모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 측에서는 한덕수 상공회의소 의장이 참석해 기술협력을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 바꾸자고 말했고, 나는 이에 동의해 공생적 협력 추진으로 변경하게 된 일이 추억에 남는다. 

→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한국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자문했는데, GDP 대비 R&D 투자 목표를 5%로 설정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이후 2013년 이명박 정권 때 4.3%를 기록했다.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일본에서는 그러한 수치를 상상할 수 없다.

히라사와 료 동경대 명예교수. <사진=강민구 기자>
히라사와 료 동경대 명예교수. <사진=강민구 기자>
▲ 현재 일본 과학기술 정책 흐름의 방향은.

→ 3년 전부터 아베 정권이 집권하면서 과학기술 정책도 많이 바뀌었다. 경제성장, 금융 완화, 연구개발 중심 등의 정책적 전환이 이뤄졌다. 특히,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중 과학기술혁신종합전략이 수립돼 진행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혁신을 목표로 과학기술종합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 아베 수상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과학기술 정책을 스피드 있게 추진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 만하다. 매년 예산 1000억원을 투입해 SIP(strategy innovation policy, 전략혁신정책)과 IP(Impact, 영향 사업)으로 구분해 한 테마당 50억씩 총 10개 테마에 대해 투자한다. 개인적으로는 단기적 경제효과 창출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 녹색, 생명, 지진재해 3가지와 지역자원활용, 인프라 구축 등 5개 타이틀로 진행된다. 지진·재해, 지역자원활용 관련 분야는 성과가 미미하다고 생각해 올해부터는 ICT 중심의 초스마트 사회산업과 생산성이 높은 농업(TPP, Rural Engineering 등)으로 전환해 추진하고 있다.

→ 대학이나 연구원의 성과가 91년 이후 계속 안좋아지고 있다.  일본 대학의 성과(논문 게재 등)도 95년 이후부터 25년동안 점점 하락 추세에 있다. 일본 문부성에서 발표했지만 다들 인정하기 싫어하는 분위기다. 연구과학기술학회에서 이야기 했는데, 내년부터 시작하는 5기 기본계획에 수정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 일체를 주장하지만, 개인적으로 연구와 교육은 분리할 필요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제조업 부활 등 일본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 산업계에서는 25년의 버블 이후 경영자 마인드가 내부지향적에서 이제 외부환경을 염두하면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영자들이 불황을 염두에 두고 이를 대비해 움직인다. 또한, CEO들이 아베정권의 정책도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잘 받아들여서 일본경제의 신뢰가 많이 회복되고 있다.

▲ 한국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한국만의 방식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세우는 것 같다. 처음부터 목표를 세우고 수치를 매년 바꿔가면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STEPI나 KISTEP 등이 주도적으로 기본계획의 수치를 수정하면서 접근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식 방식으로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특이하다. 목표를 크게 잡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정해 가면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 한국 과학계에 고언을 던진다면?

→ 쯔쿠바 연구학원도시도 예전에는 활력이 넘쳤다. 이전에는 전체 쯔쿠바를 이끌 리더가 중심으로 잡고 움직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쯔쿠바는 민간연구원과의 협력에 실패하는 등 민간 산업과의 교류가 부족했다. 현재 쯔쿠바는 조용하고, 정체된 분위기다. 한국 과학계는 쯔쿠바를 반면교사로 삼아 발전해 나가야 한다.

▲ 세종시 조성이 본격화 되고 있고, STEPI 등 과학정책 기관도 내려왔다.

→ 세종시에 집중이라는 것에서 볼때 새로운 통합 시스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세종정부청사를 둘러볼 예정이다. 또한, 신동, 둔곡 등 과학벨트에도 관심이 많다. 새로운 집중 정책이 돋보인다.

▲ 최근 한국 정부에서는 R&D혁신안 도입 등 변화를 모색중이다. 

→ 쉽지 않은 문제다.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본의 연구원들도 대학교수로 옮기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논문게재를 위한 학술적 연구를 많이한다. 재조정과 혁신을 위한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

→ 최고 연구원들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션 오리엔티드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사이고 선생의 연구는 기초단계부터 미션 오리엔티드 된 연구를 했다. 다만, 연구자의 아이디어와 사업화 가능성을 고려해 장·단기 지원을 구분하고 사회적 수용성과 비용 절감 등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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