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미래부 통해 자료요청, 기간엄수 압박에 인력 충원까지
"10년 전이나 똑같은 자료만 요청하는 국회의원들"
연구 이제 시작했는데 경제성과 따지는 질문 요청

"국회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 전화, 이메일, 팩스  등으로 국감 자료 요청이 이뤄진다. 의정시스템으로 자료 요청이 올라오면 해당 기관에 바로 문자가 오고 의정시스템 홈페이지에 미답변 수가 빨간 글씨로 선명하게 뜬다. 기한 내에 답변하지 않으면 패널티(?)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일 제껴두고 자료준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올해는 20대 국회 첫 국감으로 기본적인 것부터 시시콜콜 자료 요청에 업무가 마비된 상태다."(출연연 A 관계자)

"10여년만에 국감지원 부서로 복귀했다. 국감시즌이 되면서 과학기술만큼 국회도 뭔가 달라졌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변함이 없다. 여전히 똑같은 질문, 똑같은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그동안 정리된 자료만 봐도 흐름을 알 수 있을텐데 자료 요청의 용도를 모르겠다. 제대로 다 보기는 하는지 의문이다."(출연연 B 관계자)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출연기관의 감사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실의 자료요청 행태에 연구현장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직 국정감사 공식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9월말 또는 10월초에 진행됐던 예년 일정에 따라 각 국회의원의 보좌관과 비서관들은 이미 6월부터 자료 확보에 들어갔다.

동시에 해당 출연연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하 연구회),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의 관련 부서에서는 미방위 의원실의 자료 요청에 기존 업무를 제껴두고 울며 겨자먹기식의 국감자료 준비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 국감 자료 요청과 제출 절차는?

국감자료 요청과 제출은 어떤 절차로 이뤄질까.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국회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이하 의정시스템)이다. 전자정부 구현을 목적으로 국회의원들이 행정부나 공공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17대 국회(2004년 5월 30일부터 2008년 5월 29일까지)시기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자료를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이들 방식은 고전에 해당될 정도로 거의 없다. 해당 국회의원실의 보좌관이 문의차 전화했다가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을 뿐이다.

의정시스템은 국정감사, 예결산 등 국회 업무 수행시 활용된다. 주로 국감과 정기국회 시기에 자료 요청이 집중되지만 국감시기에는 3~4개월간 자료요청이 집중된다. 

국회의원실에서는 출연연의 현황 기본자료부터 연구, 사업, 기관장 차량 운행일지, 경비 사용 내역 목록 등 시시콜콜한 자료까지 의정시스템을 통해 요청하게 된다. 요청 목록이 의정시스템에 올라오면 해당 기관의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자료요청 건이 있음을 알리는 문자가 보내진다.

출연연의 담당자는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의정시스템에 접속, 요청 내용을 확인한다. 이후 관련 부서에 자료요청 항목과 기일을 통보하고 자료가 취합되면 이메일을 통해 해당 의원실에 보내는 방식이다.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는 이유는 큰 용량의 경우 의정시스템에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하루 평균 20건 정도를 처리한다고 밝혔다. 6월부터 3개월간만 계산해도 한 출연연에서 적게는 1200건, 많게는 1800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요청하는 자료들이 국감시 제대로 활용될지 의문이 드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어떤 의원실에서는 따로따로 요청하기 귀찮아 앞으로 쓸지 안쓸지도 모르는 자료를 몽땅 요청한다"며 "모든 의원실에서 그런 생각으로 자료를 요청한다고 생각해 봐라. 연구현장은 그야말로 업무마비가 오는 게 당연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출연연의 관계자는 "자료 요청 마감일을 보면 정말 웃음도 안나온다. 오늘 요청했는데 오늘 오후까지, 아니면 내일까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부담스러울때면 전화해서 일정을 조율하기도 하는데 아무일도 못하고 자료만 준비하는게 다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자정부 표방에도 자료 요청 항목은 변함없어

요청자료는 거의 변함이 없다. 최첨단의 과학기술 발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회의원실의 자료 요청은 인원현황, 출장현황, 국정감사지적조치결과, 내부감사현황, 징계 등 변함이 없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또 사업화 기술이전 특허, 중소기업 지원, 기관장 연봉부터 기관장 출장 현황까지 비용적인 부분이 대다수다. 정부의 과기정책이 제대로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거나 알아보려는 자료요청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매년 반복되지만 해당 출연연에서는 불만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정시스템에 올라오면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묵시적인 의무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마감기일까지 촉박해 밤샘은 기본, 주말도 반납하며 자료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10년전에도 지원업무를 했었는데 올해 다시와서 보니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 공부하는 국회의원은 없고 보좌관이나 비서관 역시 여전히 보지도 않을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과학계의 변화를 이끌 자료가 아니라 해당 의원이 어떻게 하면 주목받을 수 있는가하는 쪽의 자료요청만 쇄도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그는 이어 "각 의원실 보좌관이 요청하는 자료를 보면 비슷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기간, 항목을 달리해 같은 자료를 재사용할 수 없다"면서 "차라리 기관 현황은 미방위 행정실에서 취합해 요청하면 좋겠다. 한 번하면 될 일을 스물네번(미방위 소속 의원 수)이나 하게 만든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 연구회로 출연연 자료 요청 쇄도하면서 콩볶는 수준

올해부터는 미래부와 연구회로 자료를 요청하는 국회의원도 많아졌다.

국회의원실에서 출연연마다 자료를 요청해 취합하던 기존 방식대신 연구회에 자료를 요청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각 출연연의 인원현황, 예산 등 해당 출연연에 요청할 경우 더 빨리 자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연구회에 요청하는 상황이다.

연구회 관계자는 "19대 국회에서는 연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인지 자료요청이 거의 없었는데 20대 국회로 넘어오면서 보좌관들 중 몇몇이 연구회에 자료를 요청하면서 지금은 거의 모든 의원실에서 연구회로 자료를 요청한다"며 "20대 국회 시작이라 초선의원들도 많아 자료 요청 내용이 정말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관계자는 "연구회에서는 요청내용을 출연연에 전달해 자료를 받아야 하는데 마감기일이 짧아 자료를 취합하고 통계까지 거의 콩볶는 수준이다. 최근 인력보강을 요청했다"면서 "어떤 기관은 파일 용량이 9기가나 돼 이메일로 보내지 못하고 USB를 우편으로 보냈다"며 과도한 자료요청을 지적했다.

국정감사 준비로 연구자 역시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가 다수다. 미방위 소속 의원마다 관심사가 달라 미세먼지, 인공지능, 씽크홀 등 각분야 연구나 사업진행부터 결과 자료를 요청하기도한다. 관련 자료 준비는 연구에 직접 참여한 연구자의 몫이다. 연구시작부터 진행까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의 연구과정 자료를 의정시스템의 입맛에 맞춰 작성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연구활동을 중단하고 자료 준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연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으나 자료 요청 취지가 불편하다"면서 "어떤 의원실에서는 이제 사업이 막바지에 들어섰는데 경제성과를 지표로 뽑아줄것을 요청한다. 이런 요청을 보면 감사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구현장을 개선하기 위한 질문은 거의 없다. PBS, 임금피크제 등에 따른 연구현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연구현장 출신 의원들도 이런 부분은 외면한다"면서 "의원끼리 누가 자료를 많이 요청하는지 시합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쪽 의원실, 내일은 저쪽 의원실에서 비슷한 질문을 해 오는데 정말 아무일도 못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과학계 한 인사는 "연구현장의 본업인 연구활동의 사기를 꺽는 국회의 묻지마식 자료요청을 중단해야 한다"며 "국감의 초점은 연구환경 개선과 발전을 위해 국회와 국민 목소리가 한데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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