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노연구 기둥' 급서···제자들 "代 잇겠다" 각오

신중훈 KAIST 물리학과 교수 별세···30일 강릉 출장복귀중 오토바이 전복 사고
과학계, 고인 사망에 애도···"신 교수같은 과학자 기르려면 10년 기다려야"
고인의 추도식 모습.<사진=대덕넷>고인의 추도식 모습.<사진=대덕넷>

"우리의 자랑이었으며, 사랑했던 동료 신중훈 교수님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KAIST인들은 신 교수님의 꿈과 열정이 헛되지 않도록 정진하겠습니다."

3일 오전 7시 30분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1층 로비. 대한민국 나노 과학기술 연구의 기둥을 떠나 보내며 과학기술인들은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인 운구가 지나가는 연구실과 실험실엔 제자들과 동료들이 나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강성모 KAIST 총장과 제자, 이순칠 KAIST 자연과학대학장의 추도사가 이어진 환송식에서는 슬픈 흐느낌과 고인을 안타깝게 보내는 숙연함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환송식이 끝난 뒤 운구는 장지 충남 예산으로 떠났다. 

지난 30일 오후 불의의 교통사고로 영면한 신중훈 KAIST 물리학과 교수. 이날 오후 4시께 고인은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오던 택시가 중앙선을 침범, 충돌해 사고를 당했다. 향년 48세.

故 신중훈 KAIST 교수.<사진=KAIST 제공>故 신중훈 KAIST 교수.<사진=KAIST 제공>
지난 1989년 하버드대에서 물리학 학사, 1994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석·박사 통합학위를 받은 故 신중훈 교수는 지난 1996년 9월 당시 최연소 27세5개월의 나이에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된 바 있다. 

고인은 실리콘 포토닉스, 실리콘 나노결정 구조 등을 연구하면서 생체 모방 반사형 디스플레이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등 세계 나노연구의 대표 연구주자로 평가받아 왔다. 올해 KAIST 부임 20주년을 맞은 고인은 30여명의 석사와 박사를 배출했다.

임용 이후 연구개발 실적이 뛰어나 200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올해의 젊은과학자상'에 이어 2005년 '한국공학상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를 통해 '펠로우십 어워드'(2005), 대통령 표창(2006), KAIST 공적상(2009), KAIST 연구상(2011)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서는 고인이 젊은 과학자 대표로 나서 "월드컵이 있는 해를 맞아 축구 뿐 아니라 과학기술을 통해서도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과학계의 희망을 설파하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은 비통함을 애써 누르며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조문객들은 차분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에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 학생은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평생 롤 모델로 삼고 싶은 교수님이셨는데 다시는 뵐수 없게 돼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미망인 홍영은 대덕특구학부모교육기부단장과 슬하의 대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이 상주로서 갑작스러운 비보에도 꿋꿋하게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의 부친 신평재 前 교보증권·교보생명 대표이사는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아들이었는데"라며 울먹였다. 조카인 고인을 위해 조문객들을 함께 맞은 정광화 前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과 정규수 ADD 박사 부부도 침통한 심정으로 고인을 그리워 했다.

KAIST 물리학과와 나노기술대학원 관계자 등으로 빈소가 북적였다.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기리는 모습이었다.

나노팹 초대소장을 역임했던 이희철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고인이 나노팹 유치 당시에도 헌신적으로 도와줬던 기억이 난다"면서 "늘 막내 동생같이 편안하게 느껴지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해 애통하다"고 심정을 밝혔다.

양동열 KAIST 명예교수는 "KAIST 나노과학기술원 학장을 역임하는 등 나노 연구 분야의 촉망받는 연구자를 잃어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한창 연구에 매진해 국가 나노 미래기술을 이끌 젊은 기둥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김윤수 KAIST 물리학과 행정팀장은 "올해가 고인이 교수로 임명된지 20주년을 맞는 해로 지인들을 집으로 직접 초대해 파티를 열겠다고 준비하시던 기억이 난다"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교수님이셨는데 갑작스러운 비보로 행정팀을 비롯한 주변 관계자 모두가 허망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희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KAIST 물리학과 출신으로 교수님이 부임했던 첫해 강연을 들었었다"라면서 "고인에게 편하게 형처럼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훗날 캘리포니아공대 진학에 도움을 받고 교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동기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도 "고인은 지난 8년 동안 나노과학기술대학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원리와 원칙을 준수했던 리더였다. 특히 해외신진우수연구자유치, 대중교육활동 등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회고하며 "정년 후 영년직보다 원동기 면허를 취득하고 싶어할 정도로 오토바이를 좋아하셨는데 이렇게 사고가 나서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KAIST 물리학과 학과장 대리를 맡고 있는 김은성 교수는 "개인적으로 고인은 후배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끌어줬고, 연구 경험을 나눠준 든든한 선배였다"라면서 "과학계 큰 별이었던 고인의 비보로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신중훈 교수는 천재성 교수였다"며 "대한민국이 이정도 과학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10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고인을 추도했다. 


빈소에 마련된 근조 화환.<사진=강민구 기자>빈소에 마련된 근조 화환.<사진=강민구 기자>

아래는 강성모 KAIST 총장의 추도사 전문.
 
추도사 (追悼辭)


우리는 이제
우리의 자랑이었으며, 사랑했던 동료
신중훈 교수님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아직도 3일전 비보에 놀란
쓰리고 황망한 가슴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이 슬픔과 안타까움은 
잊혀질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 교수님은
부모님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 홍영은 사모님,
따님 규리와 아드님 홍규,
그 외의 가족분들,  
지도를 받아온 제자들,
국내외 동료 선후배들의 추억과 그리움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신 교수님은 늘 정직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아내와 두 자녀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가장이었으며,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형처럼, 아우처럼, 친구처럼 
격이 없고,
동시에 항상 정의롭고,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신 교수님의 교육과 연구
그리고 학문을 향한 꿈과 열정은
KAIST인들의 귀감이었고,
동료 선후배들에게 베푼
그의 깊은 우정은
KAIST인들의 가슴을 항상 따뜻하게 했습니다.

신중훈 교수님!
견디기 힘든 슬픔을 뒤로 하고,
이제 당신을 놓아드리려고 합니다.

교수님도 너무 갑작스런 이별의
슬픔과 회한을 내려 놓으시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KAIST인들도 신 교수님의
꿈과 열정이 헛되지 않도록
열과 성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모님, 따님 규리, 아드님 홍규가
이 큰 슬픔을 이겨내고,
굳건히 생활할 수 있도록
항상 지켜 봐 주시리라 믿습니다.

KAIST도
가족분들이 큰 슬픔을 이겨내고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KAIST 총장 강 성 모
 
 
김요셉, 강민구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독자의견
로그인 독자분들의 소중한 의견은 과학과 국민을 잇는 밑거름이 됩니다
0/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