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연, 12일 국회서 '기초 연구의 위기, 해결책은 없는가' 포럼 개최
"탑다운 과제 줄이고 바텀업 과제 늘러야" 공감대 형성

과실연이 12일 국회에서 오픈포럼을 개최했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위기의 기초연구, 해결책은 없는가'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
과실연이 12일 국회에서 오픈포럼을 개최했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위기의 기초연구, 해결책은 없는가'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
"가장 활발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는 신진연구자들이 바텀업(bottom-up) 연구를 위해 받을 수 있는 과제 수준은 5000만원 정도다. 인건비, 간접비 다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연구비가 있어야 하니 결국 탑다운(top-down) 연구를 하게 되는데 난 이 모습을 하청받는다고 표현하고 싶다. 하청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톱다운 방식 연구과제가 너무 많다. 바텀업과제를 늘려 연구자들이 본인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송지준 KAIST 교수)
 
"학교에서 따로 연구비를 주지 않으니 대학 교수들은 맨땅에 헤딩하듯 연구비를 따러 여기저기 기웃거려야 한다. 나는 운이 좋게 연구비 선정이 됐지만 만약 여기서 떨어졌다면? 지도교수님께 손을 벌리거나 대형 연구과제를 딴 다른 선배들의 과제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구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내가 가장 많이 아는 분야, 아이디어도 많은 분야는 결국 손을 놓고 연구비 따라 움직여야하는 상황에서 세계 연구자들과 승부가 가능하리라 보는지 묻고 싶다."(오경수 중앙대 교수)
 
평가시스템에 내몰린 연구자들, 연구비를 위해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를 포기해야하는 상황, 일부 응용연구까지 기초연구로 싸잡아가는 관행, 과학을 경제발전의 목적으로만 보는 후진국적인 마인드. 기초연구자들은 기초연구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 이 같은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기초과학의 본질이 창의성인만큼 기초연구자들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자 주도 방식 연구를 배분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과 신상진 새누리당의원, 변재일 더불어당 의원,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초 연구의 위기, 해결책은 없는가'를 주제로 제105회 오픈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박기영 순천대 교수에 따르면 대학의 기초연구비는 2015년 정부연구개발비 18조9000억 원의 5.5%에 불과하다. 그 중 연구자 중심의 자유공모과제는 1조원 규모로 연구과제를 따기 위해 연구자들 모두가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는 "개인 기초연구비로 5000만원도 안 되는 과제를 받으면 우선 간접비로 대학에 20%를 납부하고 연구보조원인 학생들에게 인건비 지급, 소모품 구입 후 남은 연구비로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실력 좋고 운 좋은 소수 연구자들이 1억 이상의 과제를 따내기도 하지만 연구비 부족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더 좋은 연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절망하는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기초연구자들이 연구역량을 지속 발전시켜 기술 선진국 수준으로 연구역량을 쌓아가기 위한 방안으로 "성장동력 육성 등 정부기획의 주문형 연구사업(탑다운)과 풀뿌리 연구자인 연구자 중심 연구사업(바텀업)의 적절한 배분 등 연구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산업계와 과학기술계 및 사회적인 합의를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대학의 기초연구비 지원규모는 수년째 정체된 것에 반해 연구자가 크게 늘어나 정부연구비 규모에 따른 연구자들의 좌절감이 증폭되고 있는 만큼 보다 많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방향의 보편성과 우수한 개인 연구자를 집중 지원하는 수월성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석한 참석자들 대부분 탑다운 연구를 줄이고 바텀업 연구과제를 늘려야한다는데 공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토론에 참석한 참석자들 대부분 탑다운 연구를 줄이고 바텀업 연구과제를 늘려야한다는데 공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 오세정 국회의원은 "기초연구에 탑다운 형식이 너무 많다. 이는 기초연구 본질인 창의성과 자율성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기초연구비를 당장 늘리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탑다운 지정과제를 줄이고 바텀업 과제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일 서울대 교수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평가할지를 고민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대학교수들은 40~50%의 연구비를 학교로부터 지원받는다. 반면 한국의 대학은 연구비를 외부에서 경쟁을 통해 가져오다보니 당연히 연구비를 주는 기관의 평가시스템에 의존해 논문이 되는 연구, 정부 생각에 부합하는 연구밖에 할 수 없다.
 
그는 "논문수, 산학협력, 기술이전숫자, 특허수 등 정량적인 숫자만 평가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기초연구비를 아무리 늘려도 소용없다"며 "퍼스트무버로 가기 위해 탑다운 과제를 줄이고 평가방식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지준 KAIST 교수도 "기초연구비가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연구자들이 실제 연구할 수 있는 연구비가 없다는 게 문제"라며 "정부가 한정된 국가 R&D 기초연구비를 가능한 한 많은 연구자에게 배분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연구과제의 80%가 5000만원 수준이다. 적어도 한 과제 앞에 1억 이상이 있어야 가능한 만큼 대형과제 탑다운이 아닌 1억 이상 바텀업 과제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오경수 중앙대 교수 역시 "서울대, KAIST, 포스텍을 제외하고 다른 대학에서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연구비는 없다"며 "당장 언제 지원이 끊길지 모른 연구자들과 어느 학생이, 어느 연구원이 일을 하고 싶겠는가. 연구자들의 질적인 연구를 위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기반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측에서 참석한 이진규 미래부 기초원천정책관은 "미래부와 교육부가 자율공모형 기초연구예산을 늘릴 계획으로 내년 1600억원, 2018년 4000억원으로 늘릴 것"이라며 "민간이 기초연구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만큼 민간 기초재원 움직임에 우리도 가속화시켜 투자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본부장은 교수에게 연구업적을 요구하는 대학의 모습 개선과 사회가 요구하는 연구에 대한 교수들의 관심 확대, 사회가 요구하는 분야를 제대로 발굴해 바텀업하는 연구문화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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