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호 KINS 연구원, 2주에 한 번 창덕궁 안내 해설 진행
"돈벌이 아닌 사회공헌 재능기부 원해···깊이 공부할 계획"

토요일 오후 3시 25분. 해설에 참여할 사람에게 안내방송을 하는 조승호 연구원의 모습. <사진=한효정 기자>
토요일 오후 3시 25분. 해설에 참여할 사람에게 안내방송을 하는 조승호 연구원의 모습. <사진=한효정 기자>
"곧 이어 창덕궁 안내 해설을 시작하려 합니다. 해설을 들으실 분들은 안내판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궁을 안내해드릴 궁궐지킴이 조승호입니다. 저는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새벽 6시 25분 버스를 타고 울진에서 올라왔습니다. 모두 궁에 오셨으니 오늘만큼은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가 되어 궁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창덕궁 안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해설사 앞으로 모여든다. 창덕궁 문화유산 해설사 조승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원장 성게용) 연구원이 계량한복을 차려입고 마이크를 들었다. 새벽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조 연구원은 인사를 하며 KINS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어느새 모인 사람들은 60여명. 창덕궁 궁궐지킴이로 문화해설을 하고 있는 조 연구원은 KINS 방재센터(울진)에서 근무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창덕궁 해설을 해온지 3년이 넘었다. 궁궐지킴이에 나선 과학자. 낯선 조합이지만 조 연구원은 "이 봉사가 매우 좋다"고 말했다. 

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화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그는 이제 궁궐지킴이 봉사를 은퇴 후의 인생으로까지 계획하고 있다. 

조승호 연구원은 2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창덕궁 안내 해설을 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조승호 연구원은 2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창덕궁 안내 해설을 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 "봉사란 자기 돈 내서 하는 일···깊게 공부해 이 일 계속하고파"
    
"평소 은퇴 후에 어떤 사회공헌을 할 지 고민했어요. 돈벌이 말고 재능기부를 말이죠."

은퇴를 3년 앞두고 있는 조 연구원은 2013년 '은퇴'를 주제로 열린 직장 내 교육에서 궁궐지킴이 숲 해설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강사의 추천으로 지금 이곳에 서게 됐다. 현재 창덕궁 궁궐지킴이 중에는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궁 안내 봉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은퇴자도 여러 명이다.

창덕궁 내 입구 근처에는 궁궐지킴이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작은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 <사진=한효정 기자>
창덕궁 내 입구 근처에는 궁궐지킴이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작은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 <사진=한효정 기자>
조 연구원은 "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갖고 사람들에게 전각, 나무, 다리, 물 등에 대한 상징을 알려주는 것이 보람된다"고 말했다. 직업의 특성상 외국 출장을 자주 나가는 그는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의미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조 연구원의 해설을 들은 사람들은 고마움에 인사를 하거나 커피를 주기도 한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궁궐지킴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그의 봉사를 더 즐겁게 만든다. 그는 "이곳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어서 여기 오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잊게 되고 마음이 치유된다"며 "이 생활이 좋아서 멀리서도 기쁨 마음으로 오게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봉사를 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1박을 하게 된다. 조 연구원은 "숙박비, 차비, 식비를 포함해 15만원 정도를 쓰는데 아까운 생각은 없다. 봉사란 원래 자기 돈 내서 하는 일이지 않느냐"라고 봉사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비싸지만 생활한복을 직접 구매한 것도 봉사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그는 봉사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창덕궁에 대한 애정 또한 크다. 
조 연구원은 "14만평의 궁에 9만평의 후원이 있는 창덕궁은 여러 궁들 중 가장 자연친화적인 궁이에요. 건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서 배치됐어요.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창덕궁에 머무르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라며 창덕궁을 소개했다.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100명의 방문객들에게 넓은 궁을 소개하는 것이 처음에는 그에게 쉽지 않았다. 조 연구원은 3개월간 이론교육을 거쳐 그 후 6개월 동안은 현장실습을 받았다. 현장실습에서는 선배들의 해설을 통해 노하우를 익히고 자신의 해설에 조언을 받는 과정을 거친다.
  
그는 "지금은 일과 봉사를 함께하고 있지만, 은퇴 후에도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며 "문화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깊은 지식을 갖춰 방문객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 조 연구원의 소통하는 창덕궁 해설···KINS 홍보대사 자처하기도

아이들이 조승호 연구원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아이들이 조승호 연구원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다들 어디서 오셨나요? 저보다 멀리서 오신 분 계세요?"

조 연구원은 해설을 시작하기 전 항상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볼펜들을 꺼냈다. KINS 홍보팀에서 받아온 안전기술원 기념품이다. 그가 "오늘 설명을 잘 듣고 대답을 하시는 분들께 선물로 드리겠다"고 말하자 아이들이 앞으로 모였다. 그는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KINS 홍보대사가 됐다. 

창덕궁을 소개하는 모습. 한 손에는 자세한 참고사진들을 모아놓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다. 이 사진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며 이해를 돕는다. <사진=한효정 기자>
창덕궁을 소개하는 모습. 한 손에는 자세한 참고사진들을 모아놓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다. 이 사진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며 이해를 돕는다. <사진=한효정 기자>
조 연구원은 궁 내부 해설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창덕궁에 대한 배경지식, 궁의 문과 지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한 방문객이 "말을 타고 오면 어느 문으로 들어왔나요?"라는 질문을 하자 그는 "궁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답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람들이 대화에 집중하며 조 연구원의 주위로 서서히 모여든다.

조 연구원을 필두로 방문객들이 궁을 가로지르니 다른 방문객들도 이들을 쳐다보고 행렬에 합류하기도 했다.

첫 번째 설명이 시작된 금천교에서 어도를 지나 인정전, 성정각, 대조전, 중궁전, 낙선재, 희정당에 이르기까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각 건물에 숨겨진 재밌는 이야기와 질문으로 듣는 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한다. 

사람들은 "아~ 이 자리가 승정원이었어? 드라마에 나왔잖아"라며 주변을 이리저리 살핀다. 

인정전에 있는 신구 문물의 조화, 유일하게 선정전이 파란색 지붕을 가진 이유, 대조전의 의미, 잡상들의 의미, 왕비의 역할, 벽의 무늬, 헌종의 사랑이야기까지 듣다보니 예정된 해설 시간인 1시간을 넘겼다.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설명에 집중한다. 

조 연구원은 "창덕궁에는 봄·가을·겨울, 1년에 최소 3번 오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 문화재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면 좋겠다"고 말하며 해설을 마무리했다.

창덕궁에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네 번 안내 해설이 진행된다. 궁궐지킴이 봉사자들은 주말에만 해설을 담당하며 조 연구원은 2주에 한 번씩 주말해설을 맡는다. 이번주 토요일(12월 3일), 창덕궁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후원 특별관람은 인기가 좋아 표가 일찍 매진된단다.

조 연구원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사진=한효정 기자>
조 연구원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사진=한효정 기자>

어느새 모인 사람들은 70여명. 비가 올 것 같다는 우려와는 달리 날씨는 맑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분위기 역시 좋았다. <사진=한효정 기자>
어느새 모인 사람들은 70여명. 비가 올 것 같다는 우려와는 달리 날씨는 맑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분위기 역시 좋았다. <사진=한효정 기자>

해설을 마친 후, 한 방문객이 조승호 연구원에게 다가와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해설을 마친 후, 한 방문객이 조승호 연구원에게 다가와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조 연구원은 "창덕궁에는 봄·가을·겨울, 1년에 최소 3번 오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 문화재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면 좋겠다"고 말하며 해설을 마무리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조 연구원은 "창덕궁에는 봄·가을·겨울, 1년에 최소 3번 오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 문화재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면 좋겠다"고 말하며 해설을 마무리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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